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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황폐화되어 가는 내 고향의 산하

작성년도 : 2004년 71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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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되어 가는 내 고향의 산하
- 최동철
 
 
나는 지금도 때때로 지방출장의 길에 오를 때면 차창 밖에서 흘러가는 푸른 숲 우거진 산을 바라보면서 멀리 휴전선너머에 있는 내 고향의 벌거벗은 산을 생각하곤 한다.
나는 우리 나라의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북한을 탈출하기 전에는 6년간을 온성군 창평지구에 있는 4.25 담배농장 노동자로서 일했었다. 내가 살던 창평지구의 산들은 불과 5-6년사이에 벌거숭이산으로 변해 버렸다.
1990년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4.25 담배농장이 조직되고 군인들과 다른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이 담배건조로 건설과 담배온실(비닐하우스) 건설에 동원되었다. 담배온실과 건조로 건설에 필요한 목재는 자체해결 즉 산에 있는 나무를 찍어서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즉 당에서 담배씨앗 파종전까지 온실을 지어서 파종을 보장하라고 하면 그 명령은 자연보호보다 당연히 "중요"한 것이며 건설을 위해 나무를 찍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 산으로 들어가 가까운 곳에서부터, 곧고 길고 굵은 이깔나무부터 골라가면서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찍어낸 숱한 나무들은 각목과 판자로 변하여 담배온실과 담배건조로 건설자재로 들어갔다.
온실은 약 3개월간을 사용하고 비닐박막과 목재를 해체하여 보관하는데 2-3년을 계속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겨울만 되면 땔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이것저것 가져가다 보니 새해 농사철이면 온실자재가 엄청 모자라게 된다.
하는 수 없이 또 숱한 사람들이 산으로, 산으로 나무 찍으러 떠나가고 나무제재기가 쉴새없이 돌아가며 각목과 판자를 밀어냈다.
이렇게 2년이 지나가니 주변 산의 이깔나무가 없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나무마저도 없어지고 소나무까지 없어지자 이번에는 심은지 몇 년밖에 안 되는 애숭이 이깔나무까지 마구 찍어서 담배온실의 석가래로 그냥 이용하였다.
나무가 없는 산의 모습-나무그루터기만이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있는, 잡초만이 있는 벌거벗은 산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불과 몇 년사이에 내가 살던 창평지구의 산림이 무자비하게 황폐화되었다.
이렇게 산림을 도륙낸 대가로 만들어진 담배는 "최고사령관의 은덕""백승"이라는 담배로 인민군 군인들에게 공급되었다.
게다가 1980년대말부터 시작된 뙈기밭 바람에 더구나 산림이 없어져 갔다. 그때부터 북한에서는 식량난이 시작되어 식량배급이 몇 달씩 밀리고 게다가 배급량도 그 무슨 "애국미", "절약미"요 하면서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각종 생필품-, 신발, 내의, 비누도 급격히 부족하게 되어 식량과 물물 거래 형식으로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자 농촌지역 주민들은 너도나도 뙈기밭을 개간하게 되었으며 개울뚝이나 언덕받이 등은 이미 개간되고 그 다음으로 산기슭을 개간하는데 이르게 되었다.
산불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 농장원들은 밭에서 일을 하면서 앞산에서 타래 치는 불길과 검을 연기를 보면서도 불을 끄러 가지 않곤 했다. 왜냐하면 작업반장이나 분조장의 불끄기에 가라는 작업지시가 없고 또 작업반장이나 분조장들은 사람들이 불끄기에 동원되면 그만큼 농사일이 늦춰질까봐 선뜻 지시를 내리지 않고 해서 불끄기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산불은 저절로 타다가 더 불태월 것이 없어 꺼지는 정도였다. 산불이 지나간 산림속에 들어가면 시커멓게 불에 탄 나무들과 땅바닥에서 풀석풀석 일어나는 재먼지 때문에 옷과 살이 다 새카맣게 되어 그야말로 흑인으로 변해 버린다.
처참하게 불타버린 산림, 해마다 푸른빛을 잃어 가는 산을 볼때면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이것은 비단 내가 살던 함북도 온성군 창평지구의 비극만이 아니다.
휴전선너머 저 북한땅의 수없이 만은 산들이 벌거숭이산으로 변했다. 다락밭을 개간하여 경작지로 쓸데 대한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수많은 산들을 벗겨내고 층층이 다락밭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100여만의 군인들이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지어먹고 방을 덥히면서 전쟁준비를 하고있으며 농장들에서 해마다 랭상모판 만들기에 나무를 찍어 쓰다보니 역시 죽어날 것이 그저 나무뿐인 것이다.
산마다 나무가 없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사태가 안 날리 만무하다. 지난해부터 올해에 이르는 폭우로 인한 재해는 천재(天災)가 아닌 바로 인재(人災)인 것이다. 이 인재에 대한 책임은 다름 아닌 김일성, 김정일 정권이 져야할 것이다.
내고향 온성은 우리 나라의 최북단을 유유히 감돌아 흐르는 두만강을 끼고 있는 곳이다. 나는 남한에 와서 "두만강 푸른 물에"라는 노래가사를 들을 때마다 시뿌연 흙탕물로 변해버린 두만강이 떠오르곤 한다.
예전에는 노래에도 있듯이 푸르던 두만강이 시뿌옇게 변해버린 것은 무엇 때문인가. 두만강 상류에는 북한 최대의 무산광산이 자리잡고 있다. 무산광산에서는 캐낸 광석을 선광할 때 사용한 물을 침전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만강에 흘러 보내고 있다.
침전설비에 투자하여 맑은 퇴수를 강에 흘러 보내는 것보다 투자를 적게 하고 그대로 강에 흘러 보내는 쉬운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 무산에서부터 라진까지 두만강 푸른 물이 그야말로 두만강 뿌연물로 변해 버렸다.
누구나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공장을 앉히고 생산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자연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두만강을 흙탕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죄악이 아닐 수 없다.
두만강물은 너무도 광석 씻은 흙탕물로 변해있어 빨래도 못할 정도이며 정수하여 식용수로 이용하지도 못할 정도이다.
어린 시절 두만강가에 나가 미역을 감고 나면 돌가루가 달라붙어 머리카락이 온통 시뿌옇게 되고 살도 꺼칠꺼칠하게 되어 맑은 물에 한번 더 씻어야 할 정도로 흙탕물로 변해버린 두만강이 언제면 자기의 옛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인가...
하루 빨리 통일되어 내 고향을 감돌아 흐르는 두만강이 자기의 옛 모습 푸른 물을 되찾고 북한의 산들마다 자기의 옛 모습을 되찾아 푸른 숲으로 뒤덮이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최동철 ---
 
 
2004-11-18 00:02:1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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