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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추억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한강과 대동강.

작성년도 : 2024년 272 5 9
  • - 별점 : 평점
  • - [ 5| 참여 5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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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또나야 90a3089e 동해바다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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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한강과 대동강.

 

1 나의 유년시절과 청춘시절을 기억해준 대동강.

지금도 나는고향이 그리울때면조용히 두눈을 감고타임머신을 탄 듯 흘러간세월을거슬러 올라가본다.

그러면 나의 눈앞에는대동강변의 주체탑봉화만큼이나높이치솟던 강 한복판에 설치한 대형분수 두대가 서서히떠오른다. 

그 물기둥이만들어낸 물안개며휘뿌려지는물보라로 생겨난무지개를구경하는 사람들이며뱃놀이하는청춘남녀들,

낚시대를드리우고낚시방울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분들혹은장기를두던할아버지들,

북을 치면서 흥겨운 춤판을 벌리던 할머니들의 모습,이 모든 풍경을한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던미술대학 학생들의모습도,어렴풋이 하나씩 둘씩 차례대로떠오른다.

그러다가 생생히 되살아난 그날의이미지를기억속의 파일에 저장하고싶어 나자신이마치 사진사라도 된 듯대동강 유보도의 분위기를만끽하던그때 당시의 평양시민들의 모습을 상상속으로나마 흑백사진의 프레임속에 담아본다.

그러다가 그속에서찾아낸우리가족들의모습을컬러부분으로다시 소중히 인화해본다.꼬맹이였던나는버드나무가지를꺾어서장난치느라정신이 없었고

엄마는 전날 양념에 재워온 불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아빠는 장기두는 곳에서 팔짱을 끼고 훈수를둔다.

그러다가 고기구운냄새가 절정에 달하면아빠와 나는 자기도 모르게 냄새에 이끌려 우리가족이 찜해놓은 자리로 찾아와 빙 둘러앉아배터지게 고기를 구워먹는다

슬슬 배가 불러오면 보자기를펴놓고엄마와 나는같이 잔디밭에서 낮잠을 자고아빠는 엄마와나 셋이서 보트를 타려고 매표소로 간다.

사람들이 많은 주말에 보트타는순서를 정하는번호표 구매에 성공한 아빠의 으쓱한 표정도 기억이 난다.우리가족 셋이 드디어 보트에 탑승하면 아빠는 나에게 노젓는 법을 배워주겠다고 하고 

엄마는 위험하다고 만류하신다 .그렇게 셋이서 한두시간정도 보트를 타다가내리기전에 강변에서 사진기를 목에 걸고 왔다갔다하는 주체탑사진관의 사진사들이 보이면 배타는 모습 한 장을 부탁하기도 한다.

여유로운주말을 보내고집으로 귀가하기전에나는다음번에꼭다시오겠으니대동강에게 기다려달라고 약속이라도하듯몇번이고뒤돌아본다이윽고

 내가 아쉬움이 남은 표정으로진짜 마지막으로 대동강을바라보니 붉은 석양으로 물든대동강의 모습은 황금색 주황색으로 바뀌다가 점점흑백으로바뀐다안돼 ~

나는 속으로 외치면서눈을 뜨면그 흑백사진마저 사라질것같아 눈꺼풀에힘을주고뜨지않으려고 애쓴다.

왜냐면대동강변에서사랑하는 연인과함께거닐었던소중한추억이아직하나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의첫 남자친구는중구역에서나를 만나려고항상 대동강 반대편으로 넘어오군하였다.(나 이제5분후 도착 ) 이라는메시지를받고유보도에서셀카를 찍어 보며화장이며 머리단장을확인해보던

그때 그 시절로 다시돌아올수있을까라고생각하니마음이저리고 아프다.어느덧 집으로돌아갈 시간이되었을 때갑자기 남자친구가집까지바래주겠다고해서(안된다고 ,

엄마가알면큰일난다고 , 엄마한테 친구집에책 빌리러간다고하고유보도로 오빠 만나러 나왔다,그래도 다행히 돌아갈때는 오빠가 일부러 가져온 소설책을 가져가면 엄마한테야단맞지않을거야) 라고말하다가

혹시라도 동네사람이 데이트 하는 나를 발견하고 엄마한테 일러받칠까봐괜스레 두리번거리면서 마음 졸이던 순간들이 지금은 기밀해제된 공개된비밀이되었다니참 ~

나에게있어서대동강은부모님과함께가족애를 키울수있었던곳인 동시에 유년시절과첫 사랑의추억이남아있는지울수도잊을수도 없는 그런 곳이다.


2 대동강에서 한강으로 흘러간<종이배>.

나는중구역에위치한 창전중학교에입학하고졸업까지마무리한일명 타구역학생으로 6년동안 옥류교를 매일 왕복 등하교하였다 .

여름에 무궤도전차가가끔 정전으로멈추면땀으로교복을 적셨고 반대로 겨울에무궤도전차가정전으로멈추면살을에이는 대동강칼바람을 온몸으로 체감해야만 했다.

그래도창전중학교 영화배우조기반에 다닌다는 남다른 자부심과특별히 이모가 돈들여 제작해준 교복을 입고 동네 친구들이부러워하는 학교를 다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인지 춥고 무더워도학교를 가는길이 그시절의 나에겐동네 친구들에게뽐낼수 있는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일단 나의 모교인 중구역 창전동에 자리잡은평양창전고등중학교 소속의 영화배우조기반을 아주 간단히 소개해드린다 .

전과 선생님들은 분과장선생님이였던 율동선생님 한분과 연기와 화술을 지도해주시던 전과선생님 두분 총세명이셨다.

오후 두시부터 본격적인 전과수업을 지도해주시던 선생님들은 모두 평양영화연극대학을졸업하신분들이여며조기반학생들에게 이춘희 아나운서와 같은 방송화술 대신 영화 대사나 서사시,소설책을 읽는 배우 화술과 배우연기, 율동 (발레 기초동작)을 가르쳐주신다. 

배우반 학생들은 모두 문화성소속 현직 배우아니면예술관련부문선생님들이 직접 매학교를 돌면서평양시내의 초등학교 즉 인민학교에서학생들을1차로 선발하고2차로체력테스트, 

인물심사 , 형식적인국영수 시험을통과한학생들이였다 .그래서인지 선생님들께서는 항상 우리에게<너희들은평양시 학생들중에서 선택받은학생들이니자부심을가져야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창전중학교 영화배우 조기반 학생들은 한두명 정도를제외하고나를 포함해서 모두 타구역 학생들이였다,지금와서 생각해보면창전중학교 영화배우조기반이 바로 서울예고의 연기과와비슷한 셈이였던것이다.

가끔학교에서전과선생님들이<오늘선생님들 문화성에회의가니까오후에점심도시락만 먹고 집으로 빨리 돌아가라>고얘기하시는날에는친구들과 함께 모란봉을밀대에 올라가 숨박꼭질을 하다가자리를 옮겨련광정옆에 자리잡은 옥류관 뒤쪽의유보도로내려간다. 

거기서 우린모두 다같이 책가방에 있는 노트의 한페이지를 찢어서 종이배를 만들어 띄어보기도 한다.작은 두손으로 열심히 물결을 일으켜우리집이위치하고 있는주체탑방향으로 하얀 종이배를 띄워밀어보면 일미터도전진못하고 바로 가라 앉는다그때 내가 만들어 띄운 종이배처럼 그 시절에나는집과학교 밖에모르고특히평양 외곽을혼자서벗어난다는 것은상상조차도할수없었던 두려움 많고공부만 잘하는 모범생 소녀였다 .순식간에 물결에 젖어 일이초만에 가라앉던 <종이배>같았던내가, 집밖을나서면바로 죽을것만 같았던 내가 언제든지 한달음에 갈수 있는 한강이 흐르는 서울에 와있다니 종종 실감이 안날때가 있다.

 

3 세계를 볼수 있게 해준 한강.

6년간의 중학시절에 나는 자연과목대신 사회과목을 좋아했고 특히 역사 지리 문학시간에선생님의이쁨을받던학생이였다.지리시간에선생님께서는압록강 ,두만강, 대동강을지나한강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을 지도에서 짚어주시면서 한반도가 통일되면 여러분들도 수업시간에 배운 강들에 아마도 직접 가볼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셔서오? 

그러면 6.25 전쟁때 낙동강 도하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던낙동강에서 배타는 날이 올까? 라는 막연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었다.

또어느날은 집에서 티비를 시청하다가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에 새겨진(자기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 라는 문구를 보면서 자기땅에 발을 붙이고 세계를 보려면 티비 채널이 열개쯤 되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였다 .

이런 날들이 쌓이고 축적되서일까, 나는 지금 대동강이 아닌 바로 한강에 서있다.라면을끓여먹는커플들, 레저를즐기는레깅스 입은사람들,텐트 치고 도시락먹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한강의 풍경과 너무 잘어울려 보인다.

지금의 나는 대동강에서 한강으로새처럼 날아 새롭게 정착했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문명의 발상지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은 물론 평양에서 테이프와 씨디로 듣던 (도나우강의 물결 )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라는 클래식 명곡에 나오는도나우강으로 바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평양에서는 도나우강을 두나이강이라고부른다 .그때 나는 도나우강이 얼마나 예쁘면 두가지 버전의 왈쯔곡이 탄생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평양에서 질리도록 보았던 러시아전쟁영화 (베를린함락)에서 나오는 엘베강과 라인강에 작정만 하면 갈수 있게되었다.

대동강에서 한강으로 발돋움했을 뿐인데 한강은 나에게 지도에서만 볼수 있었던 아름다운 강들에 가볼수 있게 해주었고 더우기 세계를 볼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준 기회의 강이였던 것이다.

어느덧 글을마무리하면서 나는 다시한번 소망해본다 . 20년전 대동강변에서 종이배를 띄우던 13살 평양소녀가 어느날 통일이 되어 서울을 감돌아 흐르는 한강을 출발해서 대동강으로 향하는 크루즈 여객선에오르는 그날이 과연 올까?바람이 윙 ~ 불면 솨솨 소리내며 내뺨을 간지럽히고 코끝을 스치던 버드나무의 싱그러운 향기가 점점 희미해지기전에,더 이상 애타는 기다림과 그리움에 지치지 않게 하루빨리 대동강에서 한강으로,한강에서 대동강까지 크루즈여행이 시작될 그날을 나는 기대하고 또 고대하면서 이 글을 끝맺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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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5

통일님의 댓글

통일
2024-04-13 12:42

평양날파람님의 댓글

평양날파람
2024-04-13 21:00
알지 못해라 언제부터 나의 가슴에 깃들었는지
아마도 그것은 나의 첫 삶과 함께 이미 조용히
자리 잡은 것이리...

글을 읽는데 언젠가 외웠던 이 시가 생각나고,
까마득히 잊었던 고향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냥 아픈 기억과 슬픔만 줬던 고향인 줄 알았는데,
글을 읽으면서 본연 그대로의 소중한 추억도 함께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향이라는 것도 새삼 사무치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처럼우리가살고있는가님의 댓글

그때처럼우리가살고있는가
2024-04-13 21:19
이 글은 좀 새롭네요. 지금까지 북한이야기는 슬프거나 정치적이거나 인권쪽에 맞춰져 있어서 어쩌면 북한은 너무 침울하고 어둡게만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인식 때문에 탈북민들의 정착에 안좋은 영향도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냥 일반적인 삶에 집중했고, 그것도 쉽게 알 수 업는 평양의 중 상위층의 주말을 디테일하고 생동하게 묘사하였네요. 특히 따로 제작한 교복을 입어서 힘든 줄 몰랐고, 보트를 탈 수 있는 표를 구한 아빠의 어께가 으쓱했다는  내용 등 ... 주어진 환경과 삶에 만족하고 적응해 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북한의 존재와 그리고 인간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동해바다님의 댓글

동해바다
2024-04-15 11:36
어릴적 모유부족으로 돌도 안되어서 평양고모집서 살며
서독분유먹고 자라며 고향같은 기억을 되살려주는 글
아련한 추억 모란봉구역 비파1동 혁신역 만경대구역
갈림길1동 칠골시장 축전동 향만루 닭찜 광복역..고맙습니다 좋은 추억

또나야님의 댓글

또나야
2024-04-16 13:30
아련하고 잔잔하게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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