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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그들은 중국 조선족이 었습니다.

작성년도 : 2024년 647 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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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가을 어느 날 저는 친구들과 함께 처음으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갔습니다.
중국어 한 마디 할 줄 모르고, 중국의 지형과 문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동행했던 친구 두 명과 함께 무작정 사람 사는 마을을 찾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근 여섯 시간의 도보 끝에 도착한 곳은 북중국경지역의 어느 한 조선족마을이었습니다.
우리 셋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구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허나 변방대의 단속에 걸릴 우려 때문에 사람들은 좀처럼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한참동안 돌다가 밥 한 끼 못 얻어먹고
맥없이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습니다.
“너희들 조선에서 왔구나. 배가 많이 고플 텐데 우리 집으로 가자. 밥 지어줄게~”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따뜻한 흰 쌀밥에 맛난 반찬까지 차려주시고는
밖으로 나가 집집마다 돌면서 우리에게 맞는 옷가지들을 얻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날이 많이 어두워졌으니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떠날 때 아주머니는
배가 고플 때마다 먹으라며 그동안 모아두었던 누룽지도 비닐봉지에 담아 주셨습니다.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우리에게 따뜻한 음식과 옷가지, 잠자리를 제공해주셨던
그 이름 모를 아주머니는 중국 조선족이셨습니다.

화룡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하루 종일 걷다가 날이 어두워졌지만 잠잘 곳을 찾지 못한
우리는 지나가던 조선족마을의 길옆에서 추위에 떨며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눈을 떴을 때는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서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글썽이시며
“어이구, 이 추운 날씨에 너희들 여기 밖에서 잤구나. 우리 집 문이라도 좀 두드려보지.
추울 텐데 어서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내가 아침밥 해줄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서 몸을 녹이고
할머니가 지어준 맛있는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변방대의 순찰 때문에 우리를 데리고 있을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면서
기독교회를 찾아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화룡시내로 들어가거들랑 십자가가 달려있는

건물을 찾아가라며 유용한 정보도 제공해주셨습니다.
추운 가을밤을 밖에서 지내며 추위에 떨고 있던 우리를 따뜻한 집으로 데려가서
맛난 아침밥을 지어주셨던 그 할머니는 중국 조선족이셨습니다.

화룡시내로 들어가던 도중 우리 셋은 탈북 3일 만에
마을사람으로 가장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되고 말았습니다.

재탈북하여 나는 그 조선족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기독교회를 찾아갔고
그 교회의 전도사님을 통하여 양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은 생활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를 데려다가 생일이 되면
맛난 케익도 사주시고,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작지만 소중한 선물도 사주시면서
정말 친부모 못지않게 따뜻이 돌봐주셨습니다.
지금도 친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 이 분들은 중국 조선족이셨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탈북하여 나온 나는
북한 옷을 입은 채로 연길로 들어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두려움 속에 아무 말 없이 차창 밖만 내다보고 있던 내게 조선에서 왔냐며 말을 건넨
한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룡정시를 통과하면서 검문소가 있으니
이 버스를 타면 무조건 공안에 잡히니까 자기가 도와줄 테니
룡정시 입구에서 내려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낯모를 젊은 남자가 도와주겠다는 말에 조금은 망설였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그를 믿기로 하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는 룡정시내에 있는 친구집에 들려서 오토바이를 빌린 뒤
저를 뒤에 태우고 산길로 에돌아 연길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녁이 되어 갈 곳이 없는 저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재워주고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버스요금까지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나를 위해 연길로 가던 버스에서 내려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공안들의 검문을 피해 연길까지 데려다주고 잠자리와 아침밥, 차비까지 마련해줬던
그 고마운 젊은 남자는 중국 조선족이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가기 위해 연길을 떠나던 날 나에게 다가와
얼마 안 되지만 여비에 보태라며 남몰래 인민폐 100원을 저의 손에 쥐어주시며
안전하게 한국까지 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하시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한국으로 떠나가던 저에게 힘을 주시고 따뜻한 사랑을 주신
그 할머니는 중국 조선족이셨습니다.
... ... ...

나의 자유롭고 행복한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고마운 조선족 분들의 사랑과 배려도 있었습니다.
보상금 몇천원에 미쳐 중국에서 북송될까 맘졸이며 살아가는 탈북자들을 경찰에 신고하고,

살 길 찾아 두만강을 넘은 탈북여성들을 돈벌이수단으로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조선족들도 있지만
그래도 어려움에 처한 탈북자들에게 지금도 조건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고마운 조선족들이
있어 차가운 이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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