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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한국사회에 적응하려면 좋은 생각과 노력이 필수적이다 - 강철호

작성년도 : 1999년 50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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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북한을 탈출했는가
나는 68.2.14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어나 25년을 열심히 살았지만 반혁명 분자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로 늘 감시와 적대감을 받는 것이 너무도 싫어 북한을 탈출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해방전 독립운동을 하셨기에 내가 어릴 적에는 북한 사회에서 대우받는 가정으로 살았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김일성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보위부에 연행되었고 우리 가족은 함흥시에서 강제 추방되어 함주군 고양리라는 산골로 추방가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이런 비극속에 아버지는 그 사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함주군 정치보위부 건물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르는 사건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아버지는 북한 최고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사형이 언도되었고 우리가족은 아버지의 사형장에 끌려가 아버지를 저주하는 비극까지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아버지를 저주했지 당에 대한 불만을 가져보지 못했다. 철저한 김일성사상으로 무장된 나로서는 당에 충실하여 가문의 명예를 되찾고 싶었다. 그러나 철저한 계급투쟁 사회인 북한에서 인정받기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군대에가서 조국과 인민을 위해 싸우 면 인정해 줄거라는 어릴 적 나의 꿈은 허망한 꿈으로서 나같은 가족환경을 가진 사람은 북한사회에서 군대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나는 직장도 북한에서 가장 험한 광산으로 배치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도 나는 당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 않고 부모만을 원망하며 주어진 일터에서 당과 수령을 위해 충실하리라 맹세했다.

그러던 어느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날도 나를 자아비판무대에 내세운 초급당 비서는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들먹거리며 내가 부모의 영향을 받아 당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욕설 도 참았지만 부모와 나를 연관지어 몰아 부치는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비서에게 물컵을 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그결과 그것이 화근이 되어 다음날 나는 초급당비서 구타죄로 함남 단천시 19호 대흥관리소에 수감되어 치욕스런 삶을 살게되었다.

대흥관리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북한사회에서 행동이 나쁜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목되는 요시찰 대상들이 대다수이다. 이곳에서는 엄격한 규율과 강제노동이 강요된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반성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 당과 수령 에 충직한 아들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관리소 생활자체가 나의 생각과 관계없이 수용자를 무조건 타도대상으로 보고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작업을 시켰다. 하루 계획은 건장한 젊은이가 하루종일 쉬지 않고 해야 할 수 있는 양이며 밥량은 주먹만한 밥덩이 하나와 염장배추를 끓여놓은 소금국뿐이다. 계획달성 50%이하자는 작업미달자로 자기손으로 미달밥(소량)을 땅에 떨어뜨린다음 밟게해 수감자 마음을 울린다. 이러한 인간 이하의 억압속에 나는 더이상 여기서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이때부터 나는 북한사회를 탈출해야 되겠다고 결심했고 우연한 기회 에 허위 맹장수술을 하여 그 상처에 오물을 발라 썩게한 뒤 밖에서 치료 받게될 기회에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중국에서 인간의 성실함과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거대한 중국땅이었지만 나같은 탈북자는 설자리가 없었다. 이런 어려 움속에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현지생활에 적응해 가려 노력했다. 1년이라는 방황끝에 모 교회의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전도로 동북신학원에서 2년간 공부하며 그리스도란 어떤 분이며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를 알게되었다. 하나님을 알게되고 늘 주님에게 기도로 써 나의 소망을 아뢰었다. 하지만 사실 북한 사람이 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 종교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미국이 남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선교사라는 간첩 조직을 파견하여 남조선 전체를 미신 숭배하게 만든 것이라고 배웠던 나로서는 이해부족도 부족이지만 이런 사상으로인해 더욱 어려움이 컸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한국으로 데려다 준다는 말에 한국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북한 영사관에서 나의 은신처를 알아내 중국 공안당국에서 체포하러 왔던 것이다. 당시 한중합작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체포하러 왔다 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나의 간절한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셨는지 나를 찾던 공안당국 책임자와 중국측 사장이 우연히 마주쳤는데 이들은 학교동창으로서 반가움을 표하며 야단법석이었다. 인사가 끝난후 사장님은 공안책임자에게 성실한 나의 생활을 얘기해 주며 한번만 살려주자고 청했던 것이다. 요청이 받아들여진후 나는 항상 긍정적인 생각과 노력으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후 중국조선족으로 위장하여 연변해양대학에 입학한 것도 꿈만 같은 것이었다. 연변해양대학은 한중합작대학으로 강의는 모두 한국인 교수들이 했는데 특히 교수님 모두가 기독교인인 것이 나를 기쁘게 했다. 이처럼 타향에서 국적없이 방황하던 나를 위로해 주고 도와줄 수 있는 은인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사랑으로 오늘 날의 나라는 존재가 대한민국의 어엿한 국민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되었 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더불어 사는 사회이다

나는 30년이란 세상을 살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이나라 건설을 위해 땀흘린 것도 없고 벽돌한 장 쌓은 일도 없다 단지 동포라는 사실하나만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나에게 국적을 주었 다.

그런데 이런 고마움도 잊어 버리고 나는 한 때 정부에 불만을 품고 비방중상을 했다. "정착금을 적게 준다.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하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정부를 비난했다. 더욱이 언론에 대고 마치 국가가 내게 빚이라도 진 것처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해댔다. 또한 하나님을 부인하고 신앙생활도 게을리 했다.

이런 나에게 98년 IMF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온 나라가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나라를 살리기 위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는 모습과 고사리같은 손으로, 최하층 생활을 하며 힘들게 살면서도 가락지를 빼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나라는 사람 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가에 대해 뉘우쳤고 이제라도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해 새사람으로 거듭나리라 결심했다.

98년 4월 나는 평소에 친분이 있는 목사님 소개로 과천소재 은파선교교회로 오게 되었다. 처음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교회 건축을 위해 목사님과 교인들이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재정이 어려운 형편임을 알고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닐까하는 자책감에 가슴졸이던 나는 북한 귀순자라는 낯선 인간을 마치 친자식처럼 대하듯 사랑해 주시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느꼈고 어느덧 나도 한 식구가 되어 건축현장에서 한몸이 되었다. 특히 담임목사님은 귀순자라는 허물을 덮어 주시고 무작정 믿어주시며 나에게는 아주 큰 힘이 되었다그해 10월 나는 대한민국 사회 정착 1년만에 하나님의 은혜로 또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로 담임 목사님의 처조카와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다. 이런 목사님의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한발한발 나는 우리사회에 적응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생활 2년 남짓 내가 깨달은 것은 돈을 많이 번 것만이 성공한 삶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이사회에서 나는 크게 성공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옆에 계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가슴 뿌듯하고 행복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많은 귀순자들이 적응을 못해 힘들게 살고 있다. 그들에게 이런말을 하고 싶다. 먼저 주위에 충실하라고! 이제는 내가 대한민국의 당당한 국민으로써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이 되었다

새로운 인생! 말하기는 쉽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 어떤 인간이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주만을 진심으로 주님의 고마운 은혜를 알고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만은 내 마음의 진실이다. 또 지난날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건 이제는 모두 영원히 잊어 버리려 한다. 내가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는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 보람있는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 이다.

옛날 속담에 흙탕물 속에 샘물을 부으면 흙탕물로 변하기 쉽고 샘물속에 흙탕물을 부으면 샘물로 변하기 쉽다는 말이 있다. 아마도 모든것이 환경에 지배된다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한민국!

이 좋은 삶의 터전에서 깨끗한 생을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그러나 깨끗한 인생과 삶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제 앞으로 내가 열심히 살아 남을 위해 봉사하며 더불어 살아 갈 때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 줄 것이다. 누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길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누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항상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살겠다는 것을 새삼 다짐하는 바 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 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감사합니다

1999.4.10 북한이탈 종교인 강철호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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