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7 - 홍은영
작성년도 :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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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기]빛을 찾아 만리7
- 홍은영
빛을 찾아 만리 홍은영그날 저녁에도 언니는 밤이 웬간히 깊어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걱정되었어요“은영아 우리 암만해도 좋은 대학에는 가기가 애초에 틀렸는데 놀자꾸나.” 나와 함께 공부하던 금순이가 책을 접어놓으면서 말했어요.“글쎄 그렇기는 한데 나 공부하지 않고 노는 걸 보면 우리 언니가 몹시 화내.”전 그 몇 칠 사이 언니가 점점 더 침울해 하던 모습이 떠올라 깊은 생각 없이 말했어요.“힝! 하지만 너희 언니 아직 돌아오자면 멀었겠는데 뭘.”“아니 네가 어떻게 우리 언니 언제 돌아오는지 알아?”깜짝 놀라 물었어요.“왜 몰라. 아마 너만 말고 온 동네 사람 다 알걸.”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뭘 나만 말고 온 동네 사람 다 안다는 거야?” 뜻밖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어요. “너 정말 너희 언니 매일 저녁 일을 하다가 늦게 돌아오는 줄 아니. 그 돼지 같은 당비서 놈 깔개를 하다 온대.”“뭐라구? 아니 깔개가 뭔데?” 들을수록 알지 못할 말이었어요.“아니 너 깔개도 모르니. 당비서 그 돼지와 같이 잠을 자다온단 말이야.” 금순이 정색을 하고 말했어요.“아니 뭐야. 너 우리 언니를 어떻게 보구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리 언닌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너 당장 잘 못했다고 하지 못하겠어!”전 정말이지 정신이 나가는 것 같았어요.“아니 은영아, 난 정말 그저 남들 다 말하길래 너도 알고 있는 줄 알고 한 마디 했을 뿐이야. 난 너도 알고 있을 줄 알고 말이야.....” 금순이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하지만 전 그래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금순이와 싸웠어요. 금순이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생각할수록 분해 혼자 그냥 울었어요. 사실대로 말해서 그때까지도 언니가 당비서의 깔개노릇을 하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그 말이 몹시 나쁜 말인 것만은 사실이기에 언니가 오면 단단히 따지리라 마음먹었어요.정말 그날도 언니는 늦게 돌아왔어요. 전 처음으로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언니한테 따졌어요.“언니 나 하나 물어보자.”“아니 너 아직도 자지 않았니.” 언닌 내가 자는 줄 알고 조용히 들어오다가 깜짝 놀라 물었어요.“솔찍히 말해야 돼.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거야?”“아니 얘가. 일하다가 늦게 왔지. 그건 왜 묻는데?” 언니의 당황해하며 물었어요.“아니, 난 다 알아. 언니 일하다가 늦게 오는 게 아니라 비서 그 돼지 같은 놈 깔개를 하다가 왔지?” 저도 너무 격했던 나머지 막 말하였어요.“뭐라구!” 문득 귀밑에 번개 불이 이는 것 같았어요. 언니가 저의 귀쌈을 때렸던 거예요.“왜 때려? 왜 때리는가 말이야. 언니 그게 사실이지?” 저는 억지로 분을 참고 있던 차라 막 대들었어요.“너 당장 입을 다물지 못하겠어.”언니 얼굴이 종이장 같이 하얘져서 떨고 있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울면서 대들었어요.“나 학교 안 다녀도 좋아. 아니 그 잘난 학교 다닐 생각도 없어. 또 남들처럼 굶어 죽어도 좋단 말이야. 하지만 언니가 남들 말밥에 오르는 건 싫어. 너무 싫단 말이야.” 언니는 금방 다시 때릴 것처럼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끝내 때리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온 몸이 돌처럼 굳어져 있더니 그대로 무너져 지고 말았어요.“으흑! 내가 잘 못했다. 내가 잘 못했어. 내가 너를 때리다니. 으흑! 하지만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마.”그날 밤 언니는 너무 슬프게 오래 동안 울었어요 그러는 언니를 보느라니 금순이 말을 함부로 믿고 제가 공연한 말을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지 않아도 가정을 지켜 나가고 나를 공부시키려고 힘든 언니한테 똑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가슴 아픈 말을 했구나 후회까지 되었어요.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 날은 우리 임산 사업소가 오래간만에 쉬는 날이었는데 전 동무들과 함께 산에 도라지를 캐러 갔댔어요. 학교에서 쉬는 날을 이용해 매 사람이 도라지를 5kg 씩 캐오라고 하였거든요. 그런데 산에서 뜻밖에도 우리가 이곳으로 올 때 자동차를 가지고 왔던 그 석호아저씨를 만나 도라지 5kg을 쉽게 구해 가지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어요.늘 하던 대로 집에 와서 문을 열었는데 잘 열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 더 힘을 주어 당기었더니 문이 열렸어요. 안으로 걸긴 했던 것 같은데 걸음 장치가 끈이다 보니 그대로 쉽게 열렸던 거예요. 안에서 언니가 물을 끓여 목욕을 하다가 깜짝 놀라 화를 내며 얼른 몸을 가렸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그때 제가 놀란 건 빈집인줄 알았다가 언니가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벗은 언니의 몸을 봤기 때문이었어요. 언니가 급히 가리기는 했지만 저는 이미 언니의 벗은 몸을 다 봤거든요. 정말로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가슴이며 목이며 팔까지도 긁히고 깨물린 듯한 수없이 많은 상처들은 정말 기가 막혔어요.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고 말았어요. 그로부터 몇 칠 후였어요. 언니가 뜻밖에도 연구실 관리원에서 해임되고 말았어요. 하지만 제가 그 소식을 들은 건 언니가 아니라 금순이한테서였어요. 그날도 금순이가 우리 집에 와서 늦게까지 있었는데 그 애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겠어요. 금순이가 돌아 간 다음 저는 언니를 찾아 연구실에 갔어요. 그런데 연구실에는 이미 불이 꺼져 있고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가 불이 켜진 당비서 방에 다가갔어요. 저는 정말 너무 얼굴이 뜨거워 그대로 머리를 돌리고 말았어요. 그 돼지 같은 당비서가 팔걸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언니가 가슴까지 다 드러낸 채 그에게 매 달리고 있었어요. 그대로 와락 물을 열고 들어가 언니를 끌고 나오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었어요.“비...비서동지! 한 번만 봐 주십시오 한 번만......”“안 된다고 하잖아. 이 일은 이미 결정 난 일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시끄럽게 굴지말고 가기나 해.”당비서 매몰차게 말했어요.“비서동지 제발 부탁입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제가 비서동지의 요구를 안 들어 드린거야 없잖습니까.” 언니가 다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당비서에게 애원하였어요.“뭐 뭐라구. 흥 거 매번 강간하다시피 하게 한걸 가지고 그래.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어. 반동놈의 자식을 그래도 생각해서 그 자릴 줬더니. 어서 가기나 해.” 당비서가 차디차게 코웃음을 치고 있었어요.“비...비서동지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정말 잘 해 드리겠어요. 우리 은영이 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만 그대로 있게 해 주세요. 네 비서동지.”“안돼! 그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앉게 결정났어.” 당비서가 언제 알았더냐 싶게 매몰차게 짤라 말했어요. 전 그만 더 들을 수가 없어 그 자리를 뜨고 말았어요. 저 자신이 짖밟힌다 해도 그렇게 가슴아프지는 않았을 거예요. 눈물이 나왔어요. 분해서 나왔는지 슬퍼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와 뚝뚝 떨어졌어요. 저는 닦을 념도 안하고 발길이 가는대로 걷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그러지 않아도 찌뿌둥하던 하늘에서 눈꽃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아버지, 아버진 지금 어디에 계셔요. 이런 데도 꼭 사람이 살아야 하는건가요.”하늘을 우러러 불러 봐도 대답이 없었어요.이튼 날 석호 아저씨가 달구지를 끌고 우리짐을 실으러 왔어요. 우리가 그 아저씨네 있는 작업반으로 가게 되었다나요.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막막한 중에도 그 아저씨네 작업반에 가게 되었다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어요. 대충 짐을 정리해 싣고 연구실 앞을 지나오는데 우리와 함께 추방나왔던 만수대예술단에 있었다는 첼로 배우 아주머니가 아는체를 했어요. 새로 연구실 관리원으로 배치 받았다나요. 말하자면 언니 자리에 들어앉은 것이지요.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그 아주머니 얼굴을 보니 언제 그렇게 예뻤던 적이 있는가 싶게 곱게 변해 있었어요.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나 반갑다고 하였지만 저는 어쩐지 우리의 몇 달 전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어요. 마을을 벗어나자 달구지는 울퉁불통한 돌길을 따라 꿈지럭 꿈지럭 가기 시작했어요. 석호아저씨가 우리가 추방 나와 이 임산 사업소로 올 때 불렀던 그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어요.가을도 저물어 찬바람 분다굶주리고 헐벗은 우리 동포야그 누가 광야에서 구원해 주랴일어나라 대장부야 목숨을 걸고감옥도 죽엄도 두렵지 않다조국과 더불어 영생하리라...눈이 더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먼 산은 고사하고 몇 자욱 뒤에서 따라오는 언니 모습조차 겨우 보이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갔어요 거기서는 또 어떤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에요.(다음호에 계속)
탈북자동지회 회보 2003년 6월[탈북자들] 연재수기
2005-10-26 10: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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