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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4층 아저씨와의 만남 - 장국철

작성년도 : 2002년 59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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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아저씨와의 만남

- 장국철

 

 

4층 아저씨와의 만남

 

어느덧 남한에 온 지도 2년 반이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바쁜 생활 속에서 총알같이 지나간 세월이었다.

환희와 기쁨, 꿈과 호기심이 뒤엉킨채 김포공항을 밟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이제는 대한민국 평범한 국민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지난 3년간은 정착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짧아 보이지만 길게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 3년간의 시간을 돌이켜보자니 아쉬움과 함께 이만큼의 정착을 한 것에 대한 안도감이 교차한다. 내가 겪었던 어려움과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을 더듬으며 내 정착생활을 소개할까 한다.

 

따뜻했던 이웃들의 정

 

정착생활 초기 난 복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 주위에는 날 도와주려고 애쓰는 ,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 많았다.

단신으로 입국한 내가 외로움을 느낄까봐 쓸쓸한 우리집에 자주 방문하여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시던 이웃들....

정착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챙겨주시던 자원봉사자들....

명절 때면 회사동료들이 일부러 찾아와 명절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너무나도 고마운 분들이다.

그 덕분에 이나마 정착생활을 꾸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자식생각에 먹지 않고 치마 속에 감추어 가져다 주시던 우리 어머니들처럼, 힘든 생활 속에서도 좋은 것이 있으면 자신보다 못한 이웃걱정을 먼저 하며 같이 나누어 쓰자며 가져다 주시던 다정한 이웃들의 사랑을 나는 지금도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며 살고 있다.

 

나의 어처구니 없는 오해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체제의 냉정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라는 제도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사람들을 만나며 경제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마도 자신감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었던 것 같다.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것이 낫겠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되지 않는 나의 정착금에 호감을 가지고 사기를 치지는 않나 하는 생각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며 살았다.

저 사람이 혹시?하는 의심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집안에서 보내야 했다.

이런 나에게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고 내 집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아파트 4층 아저씨

 

그러던 어느날 나의 이런 대인기피증이 사라지는 계기가 있었다.

우리 아파트 4층에 살고 있는 아저씨가 턱까지 올라온 숨을 애써 누르며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굴까?라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하며 인터폰을 들으니 왠 남자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집이 9734 차주인네 맞죠?"

 

", 그런데요?"

 

"어서 문 열어요!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들어와 하는 말이 주차를 똑바로 해야지 왜 남의 오토바이를 넘어뜨려 놨느냐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내가 주차를 하다가 그만 실수한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 아저씨의 팔을 붙잡고 미안하니 진정하시라고 했다. 물론 사과도 했다.

하지만 험상궂게 생긴 이 아저씨는 전여 역정을 수그러뜨리지 않고 오토바이가 넘어지면서 손상된 것에 대해 배상하라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니까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에 용서를 구했다.

 

"제가 북한에서 넘어온지 얼마 안되어 잘 모르고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아저씨는 나를 위아래로 한번 쳐다보더니 "언제 왔소?"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서는 조심해야 돼"라고 한마디 내뱉으며 휭하니 사라졌다.

아저씨가 돌아간 뒤 한숨을 내쉬며 전혀 용서할 것 같지 않던 아저씨가 그냥 가는 것을 보고 북한에서 왔다는 소리에 측은한 마음으로 그냥 가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엇다.

언 듯 아저씨의 너그러움이 느껴졌다.

 

생긴 것처럼 무뚝뚝하게 용서하고 돌아가셨던 4층 아저씨가 며칠 후 소주나 한잔 하자면 전화를 걸어왔다.

내심 반가운 마음으로 아저씨 집으로 내려갔다.

4층 아저씨는 며칠 전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며 가족들을 소개해 주셨다.

술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아저씨는 남한에 와서 힘들지는 않은지, 부모님은 다들 계시는지를 차근차근 물어보셨다.

남한에서는 좋은 벗들이 많아야 성공한다고 하시면서 자주 놀러 오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슴치 말고 이야기하라고 하면서 형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자신의 친구들도 많이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난 더럭 겁이 나서 "남한 사람을 어떻게 믿고 소개를 받습니까?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

그러자 아저씨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 사람아, 자네 몰라도 한참 몰라"하시며 내게 충고하셨다.

나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사회에 영원히 동화되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 것이라고.... 남한 사람 중에 사기꾼이 많다고 치더라도 그런 이유로 움츠리고 있으면 아무 것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

아저씨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는 내 생활에 활기가 돌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서서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더욱 강해졌다.

 

나의 직업찾기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4층 아저씨 덕분에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하고 나니 가장 급한 것아 직장을 구하는 것이었다.

별로 내세울 것은 없지만 열심히 이력서를 작성해서 여러군데 면접시험을 치렀다.

 

언젠가 난 중소기업에 면접시험을 보러 간 일이 있다.

면접자중 한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는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198번 이력서를 썼으며 이 이력서가 마지막 이력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취업하기 힘든 현실을 적절히 묘사했다.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며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데 출연자가 하는 말이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IMF때 부도를 맞았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행복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해서 이러한 현실을 피해갈 수는 없다.

더욱이 사회체제가 다른 곳에서 성장한 우리로서는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나 또한 직업을 얻는데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었다.

직장을 찾기 위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보았지만 여지없이 미역국을 먹기 일쑤였다.

정수기 판매업체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해보았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영업직으로 좋은 성과를 내기는 힘들었다.

 

이렇게 직업을 구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해서 누가 번 듯한 직장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나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몸값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소규모 무역업체를 시작하며...

 

직장생활을 하던 중 뜻이 맞는 동료들과 무역업체를 차렸다.

무역업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보따리장사 수준이다.

우리회사는 중국에서 공산품을 수입하여 파는 일을 주로 한다.

아직까지는 실적이 별로 좋지 않다. 무역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금이 적다보니 무역규모를 늘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조금씩 성장시켜 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다.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견실한 업체로 키워 나가고 싶다.

힘들고 지칠 때면 4층 아저씨를 떠올리며 기운을 낼 것이다.

그분의 충고대로 이 사회의 주변인이 되지 않도록 긍정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2002.11 장국철 씀

 

 

2004-11-19 04:02:50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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