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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나의 대학생활 - 조철진

작성년도 : 2003년 62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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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생활

- 조철진

 

 

정착체험담

 

나의 대학생활 조철진(대학생)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 대학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많은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만 열심히 하면 공부도 능히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을 하고있었다.

대학에 들어가 첫 MT, 밤을 새며 술 마시고 아침에는 장기자랑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그럭저럭 첫 MT는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학교에 돌아와 공부를 시작한 나에게 있어서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첫 수강신청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물론 대학 들어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건 자기 힘으로 해야 된다. 수강신청도 직접 해야 된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 맞닥뜨리고 보니 모든 게 캄캄했다. 다행히 술자리에서 친해진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수강신청을 마칠 수가 있었다. 이때 처음으로 대학생활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 입학 후 1년이 지나면서 그러한 생각은 더욱더 굳어졌다. 사실 대학에 들어오면서 나는 대학생활에 대해서, 공부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일반 대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대학교는 그렇게 여가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었고 수업에 안 들어가도 학점이 잘 나오는데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학생들은 고등학교까지는 열심히 공부해도 대학교에서는 공부 안 해"라는 말은 틀린 말이었다. 물론 노는 학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취업난이 심화되면서 거의 학점 전쟁이라고 할 만큼 학생들의 학점에 대한 집착은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이런 속에서 공부하려고 하니 힘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상대평가제 속에서 열심히 해도 의도한 만큼 학점이 안 나왔을 때의 씁쓸함이란 말로 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어려운 것은 영어와 전공과목이었다. 대부분의 북한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영어 때문에 엄청난 고생을 해야만 했다. 보통 학교의 영어수업은 그룹플레이로 진행되었는데 45명의 학생들이 모여 앉아 원서를 해석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분량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사람 수만큼 나누어서 해석해서 발표하는데 단어를 찾아서 맞추어도 해석되지 않는 문장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부탁하고 밥도 사주면서 맞춰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수업이 있는 전날은 거의 영어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미리 공부를 해갔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별 지장 없이 견딜 수 있었는데 문제는 시험이었다. 시험은 미리 공부해 간다는 게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영어과목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성적을 받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대학생활의 첫 번째 실패였다.

전공선택과목들도 만만치가 않았다. 특히 사회계열 선택과목들은 수학을 이용한 통계학이나 경제학 등이었는데 수학의 기초가 약한 나로서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단과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단과학원에서 수학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역시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이 설명하시는 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지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교재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났다. 1학년 때의 학점,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최악이었다. 겨우 학사경고를 면할 정도라고나 할까.

2학년 첫 시작도 만만치가 않았다. 전공신청을 해야 하는데 실수로 경제학과를 써넣는 바람에 생각도 안 했던 경제학과에 가게 된 것이다. 보통 전공신청은 2학기와 3학기가 끝나고 한번씩 있다. 2학기 때는 경쟁률이 심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학과 하나만 써놓고 떨어지면 3학기에 다시 신청할 수 있었다. 3학기 때에는 거의 자기가 원하는 학과에 갈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 사정을 잘 모르던 나는 2학기에 희망전공 3개를 다 써넣었고 2번째 희망전공에 통과되어 경제학과로 가게 된 것이다.

경제학과 하면 경영학과랑 많이 비슷 할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학과는 경영학과에 비해 이론에 치우치다 보니 공부가 좀 더 어렵다. 2학년에 올라가 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과연 내가 졸업해서 취직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다. 졸업은 문제가 안되었지만 학점 때문에 고민에 빠진 것이다. 1학년 때의 학점까지 보상하려면 잘 나와야 하는데 그렇게 나올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기 때문에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다른 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도 한 두 번 한 게 아니었다. 결국 어학연수 준비를 한다는 명목 하에 휴학을 하게 됐다.

휴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성과도 있었지만 후회되는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휴학이라는 것은 자신의 확실한 계획과 그 계획을 실행할 의지가 없는 한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자기가 휴학을 하면서 뭔가를 해야 한다면 또는 휴학기간에 다른 경험을 하고싶다면 굳이 말릴 필요가 없겠지만 세월만 보내는 허무한 휴학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휴학을 하면서 그래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또 휴학기간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어느 정도 공부도 했다. 다시 복학을 해서 공부를 해보니 역시 예전이랑 많이 달랐다. 자신감도 생기고 학교 생활에 임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졌다. 복학하고 나온 첫 성적도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을 만큼 나왔다.

나는 지금 대학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대학에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대학에 가는 목적을 확실히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꼭 말하고싶다. 단순히 다른 사람이 대학가니까 나도 간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대학생활의 의미가 없다고. 또 자기가 가고싶은 학교와 전공에 대해서도 잘 고려해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명문대이기 때문에"라는 생각보다는 그 학교에 무슨 과가 있고 그 과가 자신에게 맞는지를 잘 고려해서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

특히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1학년 때의 학점에 따라 전공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잘 따지고 들어오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또 학교에 들어오면 진심으로 통할 수 있는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이 중요하고 그 친구가 학교 생활을 잘 이해하고 적응하는 친구이면 좋을 것이다.

끝으로 절대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학점 때문에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로 실패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대학생활이 첫 사회생활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실패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패로 인해서 좌절한다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용기를 낸다면 언젠가는 꼭 성공할 것이다. 이 말은 후배들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탈북자들" 20039월 호

 

 

2004-11-19 20:54:07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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