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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대대 정치지도원 동지 앞(고향에 보내는 편지 2) - 탁은혁

작성년도 : 2002년 54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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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 정치지도원 동지 앞(고향에 보내는 편지 2)

- 탁은혁

 

 

대대정치지도원 동지 안녕하십니까?

대남방송국 제압방송국장 상급병사 탁은혁 인사 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북한을 떠나온 지 벌써 8개월이 되었군요. 북한의 마지막 추위를 죽음의 공포와 함께 뒤에 남기고 휴전선을 넘은 것이 어제일 같은데 어느덧 이 남쪽 땅에서 첫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미 판결이 난 지는 오래됐을 테지만 저로 하여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아직도 그에 대한 원망으로 가슴 불 탈 정치지도원동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정치지도원동지가 우리 부대에 임명되어 온 그날이 바로 6년 전 우리 부대에서 발생한 첫 "월남자" 사건 때이죠. 그때 사단 당위원회 조직부에서 근무하시던 정치지도원동지가 김정일의 방침을 받고 중좌의 계급장을 달고 우리 부대에 왔을 때 저는 "월남"자 추격전에서 있은 일을 보고하기 위해 처음으로 정치지도원동지에게 불려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정치지도원동지는 몹시 분개하면서 우리 부대에서 다시는 그런 치욕스러운 일이 벌어져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그 때 우리 부대에서 월남했던 손광복 등상병이 3일만에 남조선 괴뢰도당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서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고 하셨습니다. 전 아직도 그때 우리들의 계급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진행하였던 군무자 궐기 모임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아마도 정치지도원동지 후임으로 파견된 새 정치지도원이 지금쯤은 이 탁은혁이도 그렇게 일주일만에 죽임을 당했다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봉쇄된 죽음의 분계선을 넘으면서 지뢰원과 고압선, 잠복호와 각종 차단물을 극복하면서 사실 저는 장애물에 의한 죽음의 공포보다는 이 남한에서의 나의 운명에 대하여 그리고 그 때 궐기모임에서 부르짖던 정치지도원동지의 말씀이 먼저 머리에 떠올랐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여기 남한에서는 북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전가치나 이용가치에 따라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땅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고 당당한 대학생으로, 어엿한 이 나라의 국민이 되었습니다. 월남한지 3일만에 죽었다던 손광복 선배님도 놀랍게도 어느 회사 사장(일군)님이 되어 일하고 있는 것도 만나 보았고 또 그 전에 월남하여 무참히 죽었다던 곽철민 선배님도 중견 회사의 부장이 되어 일하는 것도 만나 보았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정말로 당당한 이 나라의 주인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지도원 동지!

이 땅에서의 8개월은 비록 제 길지 않은 인생에서도 순간에 불과한 건 사실이지만 이 기간은 실로 북에서 살아온 21년에는 체험 할 생각도 못했던 것을 체험하게 한 귀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실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가슴 깊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아마 정치지도원동지와 또 북에 계신 많은 분들은 이 말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실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삶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아무튼 정치지도원동지는 저한테는 정말로 친부모, 친형님 같은 분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정치지도원동지의 뜨거운 사랑 속에 성장한 것도 모두 사실입니다. 물론 그 사랑도 결국은 독재사회에서의 한 구석에 지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정치지도원동지는 저를 믿고 무전수에서 군견수로, 그리고 고압선책임자에서 부대 창고장으로 되도록 밀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방송조장으로까지 승진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제가 보위대학에 추천을 받았을 때는 정치지도원동지가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 모든 것이 다 최고사령관 동지와 당의 신임이라고 더 일을 잘해 충성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그때부터 벌써 북한사회의 모순에 대해 어렴풋이 알기 시작하였으며 결국은 우리 모두가 독재의 총알받이로 나서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쁜 일과 좋은 일은 모두 당의 사랑과 장군님의 은혜라고 하고 나쁜 일과 어려운 일은 모두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 때문이라고 하며 독재자를 위해 "자폭, 육탄, 총폭탄"이 되라고 히스테리 정신을 주입시키던 바로 거기에 바로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의 전 면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저는 탈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지고 추격의 총성이 발뒤축을 따를 때에도 저는 정치지도원동지를 탓하지는 않았습니다. 16살의 어린 나이에 총을 쥐어주고 최전선에 서는 것이야말로 조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영예 최고의 긍지라고 속인 그 체제가 미웠을 뿐입니다.

아마도 지금은 나로 해서 많은 고생을 하고 계시겠죠?

지금도 거리를 걸어가다가도 여기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면 나를 삼촌이라고 따르던 현옥이랑 현수의 생기 발랄하던 모습들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집니다. 정치지도원동지네 자식들이라기보다는 저의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사랑했던 애들인데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독재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열 여섯, 열 일곱 어린 나이에 총을 잡고 눈 비 내리는 초소를 묵묵히 지켰던 우리는 조국과 인민의 수호자가 아니라 수백만 사람을 굶겨죽이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독재자의 충견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수천 명의 탈북자들이 희망과 미래라는 새로운 목표와 포부를 가지고 신심 드높이 새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탈북자들의 그러한 삶을 보면서 월남을 기도했다가 무주고혼이 되었던 수많은 우리의 선배동지들을 생각합니다. 또 월남 기도죄로 하룻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간 동지들, 잠복호에서 동료들의 총탄에 맞고, 지뢰를 밟고, 고압선에 재가되어 타 죽으면서까지 그들이 왜 탈북을 시도하려했는지 저는 그때 다 몰랐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는 자유의 땅, 진정한 내 조국인 이 땅에 와서야 나는 몰랐던 것, 알 수 없었던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고 어리석게 살아 온 나의 과거와 그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또 죽은 동지들의 몫까지 다하려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정치지도원동지!

지금은 저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만 언제인가 어둠에 감쳐진 북한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저를 이해하고 제가 택한 길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실 날이 있을 줄 압니다.

저는 어제는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휴전선을 넘어왔지만 내일은 몇십, 몇백의 동지들이 그리고 언제인가는 정치지도원동지도 그 대열에 합류할 날이 꼭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독재에 항거한 탈북자 우리들 하나 하나가 모여 열을 이루고 열이 모여서 백, , 만을 이룬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청춘을 바치면서도 찾지도 알지도 못했던 민족의 진정한 통일의 새날이 밝아 오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북은 무너지고 있으며 통일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통일의 그날 새로운 의식을 가진 정치지도원동지와 반갑게 만나 볼 것을 그려보며 이만 펜을 놓습니다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2002121일 탁은혁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1월호

 

 

2004-11-19 20:12:33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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