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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긍지와 자부심 - 김은철

작성년도 : 2001년 52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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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 된 긍지와 자부심

- 김은철

 

 

아직도 길거리의 외래어 간판이 낯설기만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노라면 금방 "북한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지만 어느덧 이곳에 온지 3년이 다 되고 있다.

 

지난 3년은 나에게 참 의미있는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그 기간은 북한식 사고방식에서 남한식 의식구조로 전환하는 과도기 였다. 이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초창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택시기사에게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설명 못해 끝내는 파출소로 데려간 적도 있었고, 내가 턱없이 비싼 값을 주고 가방을 산것을 보고 회사동료들이 가방가게로 우르르 몰려가 내가 지불한 가격의 절반을 환불받은 적도 있다.

 

나는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귀순자이다. 지금은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이 글이 귀순 후 사회정착에 노력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자 적어본다.

 

일하는 보람을 알게해준 곳! 사랑하는 나의 직장

 

내가 다니는 회사는 통신시스템 회사다. 아는 분의 소개로 사장님과의 면접을 갈 때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도전해보는 시험무대였기에 그 어느때보다도 초조했다. "무슨 질문을 하실까?" , "말을 떠듬거리면 어떡하지?" 자꾸 이런 생각만 머리속을 맴돌았다.

 

동료들의 눈길을 받으며 사장실로 들어서려니 겁부터 났다. 이지적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앉아서 사업에 관해 토의하는 것을 보자, 아무 경험도 없고 자격도 없는 내가 한국의 회사에서 쓸모가 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사장님은 내가 탈북자라는 것을 배려하셔서 자상하게 대해주시고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취직을 못할 것같은 생각이 들어 선의의 거짓말을 조금 보태기도 했다. 다행히도 일단 관리부서에서 몇 달 일해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성공이다! 라고 속으로 외치며 관리부로 가 부장님, 동료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며칠 동안 동료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회사 분위기를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입사 후 회사에 적응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제일 힘든 문제는 내가 맏고 있는 업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업무인수를 해주지 않았기때문이다. 처음엔 사람들이 내게 왜 그러는지 잘 이해가지 않았지만 이것이 남한에서 겪어야할 적응과정이겠거니 하면서 스스로 위안하기로 했다. 아무런 일도 없이 회사에 나와있는 것이 부끄럽고 해서 부장님께 업무를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제서야 동료들도 업무인계를 해주기 시작했다. 업무를 받고 보니 며칠 동안은 업무파악때문에 바쁘게 지내야 했다. 바쁘더라도 내 일이 있다는게 마냥 즐거웠다.

 

 

업무를 배우면서 어느덧 한 달이 지나 나의 통장으로 첫 월급이 입금되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이 일한 만큼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는구나라는 것을 느꼈고 앞으로 더 잘하리란 결심도 다졌다.

 

평소 사장님께서 해주신 김은철이 없으면 이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업무와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복잡한 관리 프로그램을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눈에 보이자 회사일이 즐겁고 자신감도 생겼다.

 

업무를 파악하고 나자 회사동료들과 좀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졌다. 우선 동료들에게 편한 느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같은 부서에 있는 여직원에게 농담도 해보고 저녁도 같이 먹으면서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사람 사귀는 것을 시작해 보니 다른 동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회식을 몇번 하면서 술한잔 같이 하니 모두와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다. 남한에 와서 친구를 사귀고, 서로 의지하면서 정을 나누게 된 것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런것들이 바로 이곳에 와서 내가 얻은것 중 제일 값진게 아닐까?

 

아찔했던 그 순간!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고 동료들과도 어울리며 잘 지냈지만 모든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다음날 늦게 출근해서 경고를 받은 적도 있고 사소한 일로 동료와 크게 싸우기도 했다. 한번은 직원 전체가 다 모여 회식하는 기회가 있었다. 내가 탈북자라 하여 평소에 상처주는 말을 많이 했던 동료 한명이 회식자리에서 내 옆을 지나가며 "북한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한국으로 도망온 사람이 많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라고 했다. 그 순간 주위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모든 탈북자를 범죄인으로 매도하는 것 같아 너무 기분이상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냥 무시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이미 엎어진 물... 회식자리는 엉망이 되었다. 그 일로 회사에서 크게 질책을 받은 후 굳게 다짐했다. 이제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절대 싸우지 말자고! 우선 회사일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항상 겸손한 태도로 대하자고!

 

시간은 흘러 나도 드디어 대리가 되었고 후배도 생겼다. 처음 입사했을 때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후배들을 격려도 해주고 저녁도 사주면서 선배 역할을 착실히 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다.

 

이젠 나도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

 

며칠 전 탈북과정을 돌아보기도 하고 여자친구도 만날 겸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게 기대이상으로 친절했는데 너무 굽신거리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가 마음 한곳이 찡했다. 탈북시절 돈 한푼을 구걸하기 위해 저 사람들을 찾아 다닌 나는 동정의 대상이자 또 불쌍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여행을 하면서 조국이 위대하면 그 국민도 위대하고 조국이 비참하면 그 국민도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나도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다시 중국에 가니 그들도 나를 전과는 달리 잘 대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민의 위상과 자신감은 국가가 만들어 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나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준 정부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

대한민국 파이팅!

 

2001.12 김은철

 

 

2004-11-19 04:04:45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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