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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보고싶은 정련에게 <고향에 보내는 편지>

작성년도 : 2002년 69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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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정련에게 <고향에 보내는 편지>

 

 

고향에 보내는 편지

 

보고싶은 정련에게

 

장영옥

 

정련아, 그동안 잘있었니? 너의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네가 그토록 사랑하던 고양이도 잘있니?

 

이렇게 너한테 편지를 쓰자고 마주앉으니 웬일인지 눈물이 날 것 같구나.

너는 아마 지금쯤 나를 살아있는 사람들의 명단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나는 살아있어 아니 살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꿈같은 삶을 살고있어.

 

너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일이 생각나는구나. 벌써 몇 년전 일이지.

그때 평양은 김일성 사망 몇 년상이 된다고 정말 경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였어. 그래도 죽기살기라 생각하니 나도 간이 웬만큼은 커졌던 것 같아.

간리역에서 부터 다섯 번이나 경비초소를 통과해야 했어도 끝내

너의 집에까지 간 거야. 그런데 정작 너의 집 앞에 이르고 보니 마음이 달라져 선 듯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겠더구나.

너도 알지만 우리 아버지는 정치범에 걸려 남조선으로 가고 온 일가족이 모두 심심산골로 추방 되였었잖니. 그때 사실 반역자의 자식이라고 누구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어. 남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가 있을 때 제일 우리 신세를 많이 진 삼촌까지도 발길로 걷어차 내쫓는 게 그 세상이었어.

그래서 더구나 그렇게도 아침저녁으로 다니던 너의 집이었지만 그때만은 선뜻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겠더구나.

하지만 달리는 어디 갈곳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고 더구나 그때에도 이미 여러 끼 굶은 뒤였어. 정말 눈을 딱 감고 초인종을 눌렀던거야. 네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차가운 얼굴로 냉냉이 거절할 걸 눈앞에 그려보면서 말이야.

그런데 정련아, 넌 그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콩당콩당 달려나와 나를 맞아주었지. 옷 주제는 더 말 할 것도 없고 밤새 경비초소를 피해 오느라 세수도 못해 땟 국물이 흐르던 나를 얼싸안아 집에 들였지.

난 그때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해주고 위해주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사람은 있다는 걸 알게되었어. 네 눈에서 반짝이던 그때 그 작은 눈물방울이 원망스럽고 절망스럽게 만 생각되던 그 세상이었지만 나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의 불씨를 안겨주었어.

지금은 지나온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무섭기만한 세상이었어.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갔어도 그래도 아버지의 품에서나마 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아온 나였쟎니.

세상이 그렇게도 어둡고 춥고 배고프고 험 한줄은 꿈에도 몰랐던 나야.

그런데 아버지의 탈출에 이어 집 수색, 추방, 식량난, 살기 위한 싸움으로 이어진 나날들은 온실 속의 꽃이나 다름없던 나에게는 정말로 악몽으로 닥쳐왔던거야.

그날 정련아, 너는 나에게 너의 어머니 몰래 쌀 세 키로를 주었지. 나도 그 쌀이 너희에게도 피같은 쌀이 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어. 그래서 더구나 손이 떨렸는지도 몰라. 네가 볼까봐 얼른 머리를 숙였지만 너는 어느새 알아차렸더구나.

"옥이야, 울지 말아. 이것이 너한테 큰 보탬이 되지 않는 줄은 나도 알아. 하지만 어떻게든 꼭 살아 그리고 좋은 날이 오면 다시 만나자"

나는 목이 메여 말을 못하겠더구나. 그래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어. 하지만 사실 그 형편에서 내가 꼭 살아서 다시 만난다는 걸 무엇으로 담보하겠니. 그저 그때언제인가는 죽겠지만 죽는 날까지는 발버둥이나 쳐보느라고 그런 것뿐이야 내가 그때 달리 뭘 바랄 수 있었겠니.

너의 집을 나온 후 닷새만에 나는 끝내 그때 우리 애들이 제일 두려워하던 급성설사증에 걸렸어. 그것도 낯선 고장 고원역에서 말이야. 난 그때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줄 알았어. 사실 나는 죽는다는게 그렇게 겁나지도 않았어. 나만 죽는것도 아니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수많은 아이들이 매일과 같이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죽어 가는데 나만 꼭 살라는 법이야 어디있니. 병에 걸린지 나흘째 되는 날인가. 누군가 나를 이미 죽은 것으로 알고 옆에 끌어내다가 가마니 짝을 씌워놓았더구나.

어떻게 정신이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총총한데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기뻤던지 슬펐던지 잘 생각도 나지 않아. 아무튼 그 무렵에 아버지의 손길이 나한테 닿았어 남조선에 간 아버지가 사람을 보냈던 거야 난 이어 남조선으로 왔어.

정련아! 내 가장 사랑하는 친구 정련아! 네가 만약 지금 우리 집에 올 수 있다면...

우리 집은 아파트 13층이야. 아담한 방도 세 개나 있어, 참 여긴 승강기 고장 같은 건 말도 모른다.

집에는 천연색 텔레비젼이며, 컴퓨터, 냉장고, 그리고 녹화기도 있고 거기 있을 때에는 이름조차도 들어 본적이 없는 오디오며 전자렌지, 가스렌지 정말 없는 것 없이 다 갖춰져 있어.

이 모든 물건들은 상점마다 철철 넘쳐나기 때문에 외화 돈은 물론 배정표같은 것도 없이 아무 때나 살수 있어. 음식도 이곳 사람들은 몸이 난다고 고기 같은 것은 잘 먹지도 않아. 그래서 남새만 찾다보니 고기보다는 오히려 남새 값이 더 비싸.

알사탕, 과자 같은 것도 이름조차 들어 본적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여서 어느 걸 사 먹어 봐야할지 당혹스러울 때가 많아.

 

언제인가 인민들속에서라는 책을 보니 죽은 김일성이 개성시 일대를 돌다가 남조선을 바라보면서 남과 북의 차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라고 교시한 것이 있더구나. 그런데 여기와 보니 그 죽은 김일성의 교시는 여기 남조선 사람들이 거꾸로 관철하였더구나 북이 지옥이라면 남은 하늘로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야.

내 방도 좀 소개하자꾸나. 아버지가 나한테는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제일 작은 방을 주셨어. 그래도 방에 예쁜 침대를 들여놓고 책상에는 극소형 녹음기며 컴퓨터까지 놓아주셨어 .

하지만 아무튼 여기 와서 나는 처음에 공부하느라고 정말 죽을 고생을 하였어.

 

여기서는 성분도 뇌물도 통하지 않아. 그저 실력 제일주의인데 이곳 애들의 수준이 어찌나 높은지 정말 처음 왔을 때에는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단다.

너도 알지만 그래도 그쪽에 있을 때에는 내가 학교에서도 수재만 들어간다고 하던 "7.15소조"에 까지 들어 갔댔잖니

그러던 내가 이곳에 와서는 글쎄 마지막으로 일등을 하였으니 얼마 나 고민이 컸을지 상상해 봐라.

하지만 나는 독한 마음을 먹었어 내가 잘못하면 북에 있는 애들 모두가 팔릴 것 같아 정말 마음을 먹고 공부했어. 도서관에서 가서도 밤2시까지 공부하다가 수직서는 아저씨한테 쫓겨서 집에 돌아 올 때도 여러번 있었어.

 

수학과목은 얼마 되지 않아 따라잡았는데 영어는 정말 힘들더구나. 너도 알지만 거기 있을 때 우리반은 노어반이었잖니. 그러니 영어는 자모부터 시작해야 했는데 정말 마음속으로 난 천성적으로 영어는 못하게된 아이가 아닌가 좌절도 많이 했어. 그래도 역시 사람이 하자고 결심하니 못할 것이 없는 것 같더라.

아무튼 지난해에 대학 입학 시험을 보았는데 총점 4백점에 380점을 맞았어 그래서 신문에도 나고 텔레비에도 났어 물론 나보다 나은 애도 많지만 북에서 살다가 온 내가 그 정도면 대단한 것이라나 그래서 나는 지금 연세대학 의학대학에 다닌단다.

 

한마디로 난 너무나도 행복해. 지금까지 많이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엄청난 불행을 겪은 후에 맞은 행복이고 보니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

 

사실 너희네 집은 어머니가 합숙 식당에 나가니 아직까지는 괜찮겠지.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얼어죽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지 넌 모를 거야.

 

그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간리 집결소에 만 가 봐 거기3층은 꽃제비들 집결소란다. 그곳 4호실은 꽃제비들 중에서도 병난 애들만 가두어 두는 곳인데 의약품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먹을 것마저 공급해 주지 않는단다. 그래서 하루에도 5-7명씩 죽어 나가는 형편이란다. 병난 꽃제비들은 아무래도 죽을 건데 공연히 아까운 식량을 낭비할 것이 있는가 하는것이지.

그곳에 있을 때에는 그런것조차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지만 여기와 보니 정말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

그때 너는 나에게 우리 나라에 정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을까 물었지? 난 대답하지 않았어. 그때까지도 나름대로의 행복에 젖어 있는 너에게 차마 현실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바로 그때 그 시각에도 간리집결소가 아니 구태여 간리집결소가 아니라도 가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은 굶어 죽고 얼어죽고 병들어 죽어갔어.

아마 지금쯤은 너도 더는 현실을 외면하진 못하겠지.

그래 인민들은 바로 그렇게 죽어 가는데도 우리가 그토록(물론 억지로 시키니 할 수 없이 했지만)만세를 불렀던 김정일이라는 보는 척도 하지 않았지.

 

나도 행복했던 때에는 몰랐어. 그러나 험악한 세상에 던져진 다음에는 곪을 대로 곪고 썩을 대로 썩은 사회의 모든 것을 알게됐고 드디어는 남조선에까지 오게 된 거야.

그곳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보고 반역자라고 하지. 누구와 누구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최고 대학까지 나오고 당 선전 부문 최첨단 중앙방송 일선기자까지 하던 사람이 적에게 넘어 갔으니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아니야.

본의던 본의가 아니던 자기가 속해 가는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도적의 무리, 강도의 무리인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야 충신이고 효자겠니? 아니야. 아무리 그 무리 우두머리로부터 큰 신임을 받았다해도 그 무리는 어디까지나 도적의 무리가 아니겠니

 

지금 나는 우리 아버지를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왜냐하면 제때에 그 도적의 무리를 벗어나 바른길에 들어섰기 때문이야. 언젠가는 아직도 그 큰 도적을 인민의 어버이로 믿고 따르던 사람들도 알게 될 때가 반드시 있으리라고 생각해.

 

또 그렇게되면 곧 통일이 될 거구. 사실 그 한사람이 통일을 반대한다고 통일이 안되겠니. 난 언제이고 통일의 날은 꼭 올 줄 믿어

 

정련아, 부디 그날까지 어떻게든 살아있기를 바래. 물론 아직까지 너희 집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지만 곤란은 어차피 들이 닥칠거야. 그렇더라도 내 경우를 봐서라도 어쨌든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래.

그러면 우리 기쁨의 상봉이 있을 거고 행복한 미래가 펼쳐질 거야.

그리운 정련아 부디 그날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굳건히 그리고 꼭 살아 다시 만날 것을 부탁한다.

너의 가장 친한 친구 옥이로부터...

 

20021210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20031월호에서

 

 

2004-11-19 20:14:49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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