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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서로 돕는 길 - 김봉철

작성년도 : 2001년 59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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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는 길

- 김봉철

 

 

나는 1955.4.6 함경남도 단천시에서 아버지 김명선 어머니 리보애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여 군복무 10년을 제외하고는 탈북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우리형제는 22녀로 내 위로 형님 한 분과 누나 한 분, 아래로 누이동생이 있었다.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몸져누운 후 형과 누나가 직장을 다닐 때까지 어머니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워낙 건강이 좋으신 어머니셨기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4남매를 잘 거두어 주셨다. 이제 다시는 못볼 어머니 생각을 하면 가슴이 몹시도 저리다. 그러고 보면 다시 만날 기약없는 얼굴들이 한둘이 아니다. 술이라면 오금도 못쓰던 인길이, 술자리에서 부지런히 안주만 집어먹는다고 말밥(좋지 못한 이야기의 대상이란 뜻)에 오르던 길수, 비록 풍족하진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도 그리운 친구들이다.

 

북한에서 생활할 때는 그래도 외화벌이 사업에 종사해서 제 딴에는 어느정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축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일반주민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눈치를 많이 본다느니 거지가 득실댄다느니 하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삼성전자의 제품이 일본제품과 겨루는 정도라는 것, 정주영 현대 그룹회장이 엄청난 갑부라는 것, 자동차 제조와 선박건조 기술이 막강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탈북하고나서 막연하나마 짐작했던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하고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99.1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드디어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대한항공기가 김포공항에 내리면서 제일 먼저 놀란 것은 자동차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보면서 도로를 달리는 차외에도 아파트 단지마다 세워놓은 차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입국후 사회적응교육 시설인 하나원 생활도 마치고 사회에 배출되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지 1년하고도 한달이 되었다. 현재 나는 서울에 있는 한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남들에게 정착경험이나 교훈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나보다 뒤에 귀순한 분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기에 그 동안의 일들과 생각하는 바를 간단히 적고자 한다.

 

사회에 배출되자마자 우선 나는 나에게 이상적인 일을 고르기보다는 일단 주어지는 일을 그대로 받아들여보고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접한 일은 박스를 싣고 부리는 일을 하는 임시 고용직이었는데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힘을 쓰고 나면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거의 매일 파김치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석달만에 옮긴 곳은 가스충전소였다. 일은 전처럼 힘들지 않았지만 차가 연달아 들어 올 때면 정신없이 혼잡스러워 몇 만원씩 금액계산에 오차가 생기기도 했다. 며칠간 견습을 받은 뒤 드디어 나도 단독으로 충전기 1대를 맡게 됐다. 하루 업무를 수행하고 나서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판매량과 금액을 맞추어 보았는데 다행히도 맞아 떨어졌다. 나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후련했다. 그런데 충전소 일은 육체적으로 크게 고된 일은 아니었지만 밤근무를 서는 때가 많아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밤잠많은 나에게는 특히 12월 엄동설한에 밤 10시에 출근하는 것은 죽으로 가기보다 싫었다.

 

일도 일이지만 충전소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일에 서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 때는 서운하기도 했고 연장자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고 배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배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배우는 것에 대해 절대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상대가 아무리 나이어린 사람일지라도 배워야 한다. 둘째 북한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당연히 이해해 주리란 기대를 버려야 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변화하고 독립하려는 의지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그런 성의를 보여야 한다.

 

나는 지금 오래 전부터 나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봐 주시며 격려해 주시던 고마운 분의 회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산하 대리점에서 요구하는 책 주문을 받아 택배로 발송시키고 회사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직접 도서판매도 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직 많이 서툴지만 이일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지금 주어진 이 기회를 나름대로 살려서 좋은 경험을 쌓고 나아가 개인사업으로까지 연장시켜 보고싶다. 내가하는 회사업무를 열심히 하다보면 몇 년 후엔 회사 산하 대리점 사업으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1년전 사회적응 교육과정 중에서 탈북선배가 들려준 교훈이 생각난다. 우리 탈북자들이 지금 당장에는 서로 물질적으로 도와주기가 어렵지만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본분을 다함으로써 남한 국민들 사이에 탈북자들의 이미지를 높여 나가는 것, 그것이 결국은 서로를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그 선배의 말을 항상 가슴속에 새겨 나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이 사회의 떳떳한 일원임을 인정받고 나아가 다른 탈북자들을 위해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할 것이다.

 

2001.5 김봉철

 

 

2004-11-18 00:25:04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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