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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前 평양시민의 설 - 림일

작성년도 : 2010년 77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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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민의 설

- 림일

 

 

남한에서 설날을 보내며 놀라는 것은 국가에서 주는 생필품 하나 없이 3일씩이나 쉰다는 것이다

서울에 와서 북한이 가난한 이유를 알았다.

잘못되어도 따지지 못하는 무서운 사회이기 때문이다.

 

19973월 서울에 온 뒤 열세 번의 설날을 지냈지만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남한에서 음력설을 보내며 늘 놀라는 것은 국가에서 공급해주는 생필품은 한 개도 없이 모두 각자가 알아서 쉬는 이 명절이 3일이나 긴 연휴라는 것이다. 평양에서 배고프게 하루만 쉬던 음력설을 이곳 서울에서 등 따시게 3일이나 쉬자니 매번 고통스럽게 지루했다. 타향에서의 설 명절은 설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제 영영 내 고향 평양에 있는 어머니 묘소에 술 한 잔 못 붓는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도 난다. 세상 모든 자식이 그렇듯 설날이면 부모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이 솟구친다는 것을 서울에 와서 새삼 느꼈다.

 

북한도 나름대로 민속문화를 장려한다. 저무는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순간에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소박한 꿈을 꾸는 것은 서울이나 평양이나 별 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양에서는 음력 설날 국가기관의 지시와 감독하에 조선옷(한복)을 입고 소품 들고 공공장소에 나가 민속놀이를 해야 한다. 물론 음력설이라고 특별히 주는 식량배급이나 부식물·생필품은 없다. 어찌 보면 평양에서의 음력설은 우리의 신정(新正)처럼 썰렁하기도 하다. 그래도 양력설보다는 낫다.

 

평양의 양력설은 즐거운 날이 아니다. 우선 모든 직장인들과 주민들이 당보인 '노동신문' 11일자에 실리는 신년 사설을 발췌하고 그 내용을 통달하여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1월 한 달간 강도 높은 조직(단체)별 집중학습을 하는데 정말이지 이거야말로 고통 중에 상고통이다.

 

먼저 아침에 나오면 전날에 주었던 숙제 검열을 시작으로 사설(신년사) 읽기 1시간, 점심식사 후 자습 1시간 그리고 일을 마치고 저녁에 2시간 정도씩 문답 형식으로 사설 암송 학습을 하고 퇴근한다. 또한 각자가 연간 김일성·김정일 사상학습(자습)과 사회주의 양식에 맞는 생활준수 계획도 이때 상세히 세워야 한다.

 

알다시피 그 학습 내용은 모두 가짜다. 인민생활 주력부문인 농업과 경공업부문에 전() 국가적 힘을 넣어 올해 획기적인 식생활 개선을 이룩하자는 것이 수령과 지도자의 원대한 구상이라고 강조한 때가 수십여 년째다. 신년 사설이라야 표현만 약간 다를 뿐 해마다 꼭 같은 내용이다. 백전백승 향도의 당인 조선노동당의 완벽한 계획이라는데 '혹시 이번에는 정말일까?' 하고 이제나저제나 쌀밥에 고깃국 먹으며 기와집에서 사는 날을 기다린 지도 반백년이 훨씬 넘었다.

 

"? 작년에도 같은 소리하고결과는 다르잖아?"하고 의문을 품을 듯싶으면 "그것은 모두 미국·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무역제재와 공화국에 침투한 남조선 간첩들의 경제 파괴책동 때문"이라고 당에서 큰 소리로 선전한다. "정말일까? 아닌 것 같은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상투쟁이라는 특별학습을 시킨다. "동무! 혹시 반동 아니야? 당의 지시에는 토를 붙이지 말고 무조건 절대 복종하라!".

 

거짓말도 세 번이면 진짜로 들리는 법이다. 공상 같은 소리들로 가득 찬 새해 신년사설.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면 빤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믿는 척한다. 최소한의 정의? 그것은 당과 김정일 우상화에만 필요한 용어이다.

 

서울에 와서야 비로소 북한이 60여년간 궁핍한 원인을 알았다. 수십 년간 가난에 찌들려 사는 이유가 자연재해도 아니었고 북한주민들이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원이 없어서도 아니었고 외부의 간섭이나 파괴 때문에는 더더욱 아니었다.

 

새로움을 위한 변화가 없어서였다. 공화국 창건(정권 수립)일부터 오늘까지 그냥 한 사람이 한 노선을 고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최고인민회의(국회)에 여야가 있어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 비판도 받아야 그것을 고치고 새로운 뭔가를 할 수 있는데 비판을 하려는 눈치만 있어도 그 사람의 사돈의 팔촌까지 씨족을 말린다. 그 유일정당, 조선노동당의 유일적 지도체제가 바로 오늘의 북한을 만들었다.

 

삼척동자가 보아도 너무나 잘못된 제도란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절대 복종하는 북한주민들은 우리처럼 "뭐야? 정부가 지난해에 한 말을 올해도 꼭 같이 하냐? 우리가 바보야?" 하고 국가를 상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다. 북한 동포는 무서운 사회에서 산다. 비판은 바로 "제발 나 죽이라!"는 고함이나 마찬가지다. 혁명의 수뇌부 조선노동당의 정책과 노선, 지시에 대해선 바른 소리의 외침은 물론이요, 약간이라도 비웃는 표정만 보여도 하룻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곳이 바로 나라 전체가 감옥인 북한이다.

 

서울에 사는 전() 평양 시민인 필자는 아무쪼록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당과 국가의 간부들 모두가 1%만이라도 바뀌어 인민들이 배고픈 굶주림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도록 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2010217일 림일

 

 

2010-02-17 21:22:3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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