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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건설현장에서 흘린 나의 땀방울 - 김웅길

작성년도 : 2003년 54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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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에서 흘린 나의 땀방울

- 김웅길

 

 

온 세상을 흰눈으로 장식했던 겨울도 지나고 벌써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남한에 와서 맞는 네번째 봄이다. 따뜻한 봄 햇살을 쬐며 한강변을 거닐때면 어린 시절 벌거벗은 몸으로 동네 시냇가에서 뛰놀던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4년여의 정착생활을 거치고 나니 이젠 북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는 여유도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북한에서 외화벌이 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북한이 문호를 개방하면 지금보다 훨씬 잘 살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는 법!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나의 생각을 은영중 드러낸 것이 계기가 되어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되자 처벌이 두려워 졌다. 말 한마디에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더 이상 북한에서 살아야 할 희망도 없어졌다.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모질게 마음먹고 탈북을 결심했다. "그래! 남한에 가서 새롭게 시작하자." 그리고 난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왔다. 두려움과 함께 설레임을 가슴에 안은 채...

 

서울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신 발전된 모습이었다. 휘황찬란한 시가지, 높은 빌딩숲, 도로마다 넘쳐흐르는 자동차들... 어안이 벙벙할 정도 였다. 내가 살아갈 도시가 이렇게도 멋진 곳이라니! 다소 흥분되기도 했지만 "이런곳에서 내가 제대로 살아갈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먹고 살 방도가 막막했다. 특별한 기술도 없이 무슨 직업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할가? 결론은 기술을 배우는 것으로 내렸다. 정부에서 도움을 준 지원금으로 당분간 생활하는데는 큰 걱정이 없었기때문에 학원에 다니며 용접기술을 익혀보리라 결심했다.

 

부푼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학원생활, 아침 일찍 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떠오르는 태양이 마치 나의 미래를 밝혀주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자신감도 생겼다. 열심히 해보리라 다짐도 했다. 내 모든 정열을 여기에 다 쏟아 부으리라!

 

하지만 세상에 쉬운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영어로 된 교재용어를 이해가기 어려워 몇 줄도 읽어낼 수 없었고 선생님의 설명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용접기술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하루 동안 배운 내용을 모르고 넘어가니 다음날 학습내용은 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악순환이라고나 할까...그나마 실습은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배우다가는 자격증은 커녕 학원비만 날릴 판이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일인데 허무하게 끝내버릴 수는 없었다.

 

우선, 수업에 좀더 적극적으로 임하려고 노력했다. 모르는 용어는 이 책, 저 책을 찾아 알아냈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선생님이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퍼부었다. 이 방법은 분명 효과가 잇었다. 조금씩 책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공부에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격증을 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여전했다.

 

내 실력은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수준었다. 필기시험을 위해 책 속의 내용을 정확히 암기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아낸 또 하나의 강구책은 모의고사를 보는 것이었다. 선생님께 부탁하여 하루에 2회씩 시험을 치렀다. 어떤 문제가 나오는 지를 확인하게 되니까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할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틀린 문제를 몇번씩 반복해서 확인하니 머리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6개월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실기 연습도 꾸준히 했다. 그 결과 마침내 용접기술 자격증을 취득했다. 남한에 와서 처음 이룬 작은 성공, 내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성취감이란 걸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건설회사에 취직한 난 의용에 차있는 신입직원의 모습이었다. 선배들은 내게 "건설현장에서 1년은 뒹굴어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지. 열심히 공부해야 할꺼야!"라며 은근히 겁도주고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도 해주었다. 공부는 자격증 준비하면서 다 했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 일에 부딪혀 보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아 허둥대가 일쑤였고 선배들이 지시하는 내용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지적을 받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선배가 작업중에 "카따"를 가져오라고 소리를 쳤다. 카따가 무엇인지 물어볼 사이도 없이 닥달을 하는 바람에 스패너를 여러개 들고 뛰어갔다. 그러자 선배가 "어떻게 카따도 모르느냐?"고 면박을 주었따. 눈치를 살펴보니 선배는 두꺼운 철사를 자르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제야 "카따"라는 것이 철사를 자르는 공구를 현장에서 속어처럼 사용하는 말이란 것을 알았다. 이 일을 계기로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기술 일 익히자고 마음먹었다. 몇개월동안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일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착오 없이 말끔하게 끝내 놓으려고 애썼다. 다행히 선배들도 내게 점점 믿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이젠 입사한지도 꽤 지나 작업반을 하나 맡아 일하고 있다. 작업반별로 각각 주어진 임무가 있어 예전보다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건물은 수많은 공정이 모여 만들어진다. 내가 맡은 작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 건물은 분명 부실해질것이다. 하찮아 보이는 작은 부분들이 모여 커다랗고 멋있는 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흘린 나의 땀방울이 나라의 발전과 서민들의 보금자리 마련에 작은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남한에 정착하면서 무엇을 할지 몰라 당황해 하던 내가 사회에 작지만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수가 없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갈 자격이 주어진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일을 사랑하며, 열심히 일할 것이다.

 

건설현장에 흘린 나의 땀방울이 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데 자그마한 보탬이 됨을 알기에...

 

20034월 김웅길

 

 

2006-02-03 11:57:5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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