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병에 걸린 피부관리사 - 최경희 > 탈북민 수기

본문 바로가기

탈북민 수기

공주병에 걸린 피부관리사 - 최경희

작성년도 : 2003년 493 0 0
  • - 별점 : 평점
  • - [ 0| 참여 0명 ]

본문

공주병에 걸린 피부관리사

- 최경희

 

 

이상과 현실의 간극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한국에 입국하면서 내가 가졌던 이상은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서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했다. 북한을 벗어나 한국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문제였다.

 

서로 다른 체제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모든 것이 보장될 것이라는 안이한 마음가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내가 이 사회를 체험하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것은 경쟁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누가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 사회였다. 남한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세우고 차근차근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정착생활 초기에 얻은 큰 수확이었다. 나의 한국사회 정착생활은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착 노력의 일환으로 처음 선택한 것이 컴퓨터 공부와 운전면허 취득이었다. 낮에는 컴퓨터 학원에 가서 익숙치 않은 자판을 톡톡 두드리며 컴맹탈출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저녁시간에는 운전면허 학원에 다녔다.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만 같더니 조금 숙달이 되자 운전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내겐 모두가 생소한 것이었다. 처음 접해보는 일들에 대해서 과감하게 부딪히고 조금씩 익혀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회의 일부가 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공주병에 걸린 피부관리사

 

컴퓨터 학원 강의와 운전면허 취득을 마치고 나니 또다시 도전해볼 대상이 필요했다. 막연하게나마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무런 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기술을 배워보고자 인터넷을 살펴보며 어떤 것이 유망한가를 알아보았다. 피부관리사 과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국에 있을 때 그곳의 피부마사지 사업이 크게 성공하는 것을 보았고 한국에 와보니 이 분야가 새롭게 떠오르는 소자본 창업의 한 방법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보니 그냥 마사지 기술만 조금 익히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피부미용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과 신체에 대한 이해 등의 과목도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피부관리라는 것이 여러 가지 기술이 요구되는 종합적인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놓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학원에 다니며 자격증도 취득했다.

 

네일아트 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학원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어울려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나에게 넌 북한에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공주병에 심하게 걸렸어. 중증이야....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모른다. 날 얼마나 우습게 보면 그런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잔뜩 삐쳐있는 내게 언니가 먼저 와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솔직히 얘기했 더니 언니는 한참을 웃는 것이었다. 공주병이 그리 나쁜 표현만은 아니라면서 내가 항상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으로 생활해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라고 했다. 난 공주병이 굉장히 잘난 체하고 남들 무시하는 그런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 일을 계기로 언니와는 더 친해졌고 나 스스로도 공주처럼 항상 자신감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새삼 다짐도 하게 되었다.

 

피부관리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피부관리와 네일아트 자격증을 취득함에 따라 취업과 창업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창업은 무리였다. 자본도 부족했고 점포관리나 고객유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취업부터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라고 생각했다. 학원에서 주선해준 미용전문 샾에 취직을 했다. 자격증을 가지고는 있다고 하나 취직을 해보니 난 역시 초보자였다.

 

까다로운 손님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선배들의 충고를 새겨들으며 때로는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직접 손님들을 접할 때는 이제 나도 떳떳한 남한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창업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내 모습이 스스로 대견스럽다. 직장에서 받는 보수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어서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한국에 정착하여 가족들을 보살피고, 또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가슴벅차 올 때가 많다.

 

내 인생의 멋진 에필로그를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연마하고 창조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게 아닐까.... 근래 한양대 중어중문과 3학년에 편입한 이후에는 더욱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생업을 포기한 채 학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서도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 것은 나의 창업에 대한 꿈 때문이다.

 

중국에서 생활할 당시 그곳의 피부관리 분야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을 보고 언젠가는 나도 중국에 진출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어왔다. 그 목표를 위한 발전의 한 단계가 대학공부인 것이다. 중국어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에서의 피부관리분야 마케팅 전략을 위해 경영 마인드를 가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양과목으로 듣는 강의도 마케팅, 서비스론, 경영학원론, 경제학 등을 선택했다.

 

주말에는 창업 노하우를 터득하기 위해 피부관리 분야의 전문가들과 어울리며 창업비전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생활을 하며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희망차다. 희망은 이를 추구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를 공주병에 걸렸다고 놀려대던 언니의 말처럼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중국대륙에서 피부관리 분야 사업가로 번창해 나갈 내 꿈을 향해 쉬지 않고 정진해 나가고자 한다.

내 인생의 에필로그를 멋지게 꾸며 나가기 위해 오늘도 난 학교로 직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2003.5 최경희 씀

 

 

2004-11-19 20:50:43

출처 : 탈북자동지회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