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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꽃밭에서는 꽃의 아름다움을 몰라요 - 주명신

작성년도 : 2002년 66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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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는 꽃의 아름다움을 몰라요

- 주명신

 

 

꽃밭에서는 꽃의 아름다움을 몰라요.

 

북한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던 내가 남한에 정착하여 생활한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정착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남한사회에서 살면서 새롭게 느낀 것이 참 많다. 그러면서도 자꾸 북한과 비교하게 되는 것은 아마 이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달라진 환경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지낸 1년여의 시간동안 남한사회를 바라보며 나름대로 느낀 점을 솔직히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자유로운 삶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하며 가장 처음 피부로 느낀 것은 모두들 너무나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출신이 어디인지, 무슨 종교를 가지던지, 모두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다가 이곳에 와서 갑작스럽게 많은 것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내게 책임감을 부여하게 되자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다. 자유는 의무와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예로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과 매매계약을 하는 것이고 이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예의와 규칙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내 마음대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 아니란 것도 새롭게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이다. 입국하기 전에는 남한에만 가면 뭐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할 수 있으리란 허황된 꿈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응교육을 받고 직접 이 사회에 부딪혀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유롭지만 보이지 않는 규칙과 도덕이 이 사회를 규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다.

 

풍요로운 삶

 

북한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살던 나로서는 한국의 생활방식이 너무나도 휘황찬란하게 보였다. 거리마다 늘어선 자동차들, 1년 동안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로 올림픽경기장을 몇 개나 건설할 수 있는 만큼의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한다는 보도내용, 주말이면 도로를 가득 메우는 행락객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나도 이 사회의 풍요로움에 보조를 맞추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부러움이 앞섰다.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한번은 아는 분들과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보니 등산로 옆으로 "진짜 도토리묵 팝니다"라는 간판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가짜 도토리묵도 있어요?" 그러자 남한에서는 도토리묵을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인건비 때문에 더 비싸다며 다른 것을 섞어서 팔아야 수지가 맞는다고 했다. 북한에서는 도토리가 제일 흔하고 값싼 재료인지라 다른 것을 넣었다고 하면 더 잘 팔릴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남과 북이 어찌 이다지도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여하튼 난 지금 이 풍요로움 속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남한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풍요로움에 무임승차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나도 이젠 이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꽃밭에서는 꽃의 아름다움을 모를 수가 있다. 꽃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 남한은 내게 꽃밭이나 다름없다. 자유와 풍요로움이라는 꽃들.... 하지만 나도 가끔은 그 고마움을 잊을 때가 있다. 끊임없이 그 고마움을 되새기고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추스리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음악학원 강사생활

 

북한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경력으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조그만 고사리 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아이들에게 악보를 보는 방법 등을 가르치다 보면 학원강사 생활이 그렇게 보람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조금씩 발전해가는 아이들의 실력을 보느라면 나의 미력한 지식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곤 한다.

 

학원 강사료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난 시간이 되는대로 세차장에서도 일하고 있다. 피아노와 세차장이라.... 다소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한에 빨리 정착하는 길은 경제적인 자립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정착금도 있긴 하지만 그거야 생활의 기반으로 사용하라고 정부에서 도와준 것이지 흥청망청 소비하라고 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쓰기로 마음 먹으면 순식간에 없어질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조금식 발전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겠다. 지금은 한걸음 전진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난 세차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생활에 많은 보탬이 된다. 세차장에서 일하다보면 내가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하는 자기만족을 느낄 수 있어 왠지 기분도 좋아지고 생활이 활기차진다.

 

노래학원 원장을 꿈꾸며...

 

지금은 어림도 없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음치들을 위한 노래학원을 차리고 싶다. 노래부르는 자리에 가면 주눅이 드는 분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전하는 즐거운 노래학원 원장이 되고 싶다. 언제나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학원을 꾸려 나갈 그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학원에서, 세차장에서의 삶의 현장을 누비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2002.12 주명신 씀

 

 

2004-11-19 04:02:2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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