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형제끼리 일군 느릅국수 공장
작성년도 : 2000년
649
0
0
본문
탈북 형제끼리 일군 느릅국수 공장
- 윤성철
교편을 잡고 계셨던 아버님 덕분으로 유년시절을 어렵지 않게 보냈던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원산에서 소방대원으로 일하다가 러시아 석탄연합사업소에 파견 근무중 1996년 3월 대한민국의 땅을 밟게 되었다.
이 땅에 도착하던 그 날의 기쁨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여서 한동안 설레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꿈같이 지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를 전혀 모르는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 다행히도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기아그룹 계열사인 (주)기산에 취직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곳은 특수판매팀이었는데 기아자동차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판매하는 부서였다.
직장에만 들어가면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아자동차에서 생산되는 차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차를 팔아야 할지 몰라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로 일했다.
처음에는 견적서를 작성하는데 계산기로 숫자 계산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손님들이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 전화로 상담을 해오면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지만 일을 시작한지 1개월이 지나자 자동차 계약과 상담방법을 알게 되었고, 2개월 이후에는 자동차를 직접 판매할 만큼 진일보하였다.
하지만 때로는 견적서를 잘못 작성해 내 돈을 보태기도 하고 서울 지리에 어두워 약속장소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시간을 어기는 경우도 많았다. 정말 그런 때에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때마다 통일이 되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과의 재회의 그 날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시 가다듬곤 하였다.
이렇게 회사와 나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기아그룹의 부도로 인하여 (주)기산도 1998년 5월 부도처리되면서 나는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부도라는 용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의 도산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유지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어서 지하철 공사장에 나가 막노동을 하거나 중고자동차 매매를 해보기도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평소 탈북자들에게 큰 관심을 보여오셨던 노동연구원의 모 박사님으로부터 "실업극복운동위원회라는 민간단체에서 자활공동체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보라"는 자문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소속된 "통일을 준비하는 귀순자 협회"는 자활공동체 사업은 무엇인가에 도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1999년 10월 협회 명의로 북한음식점 창업계획서를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창업계획서는 심의과정에서 부결되었다. 기본투자는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하고 6개월 내지 1년간 인건비와 소모성 부문에 대해서만 위원회에서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모르고 위원회에서 창업자금을 전액 지원해 주는 것으로 착각하여 창업계획서를 작성하였기 때문이었다.
부결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하던 위원회 관계자 한 분의 도움으로 우리의 사업은 재검토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우리는 음식점 창업이 적절하지 않다는 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중소기업 소상공인회에서 자문까지 받아가며 식품회사 창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운영하고 있는 대관령식품회사 창업을 서두르게 된 것이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회사 설립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 푼 두 푼 모은 전 재산을 투자하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친척과 친구의 돈까지도 빌렸다. 거의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금년 9월 4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용하리에 공장을 짓고 개업식을 하게 되었다.
대관령식품의 특징이라면 북한산 참느릅나무와 계란을 섞어 만든 국수를 생산한다는데 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느릅은 이뇨작용을 좋게하고 부은 것을 가라 앉히고 특히 위궤양 위염 위하수 등 각종 위장질환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이런 효능을 가진 느릅과 단백질이 풍부한 계란을 섞어 만든 소면과 칼국수 부침가루 등을 생산하는데 하루 200박스, 월 100톤, 월매출액 1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2월에는 느릅차와 냉면도 생산할 계획이다. 우리 공장은 대전 충남 농협의 OEM(주문자생산)공장으로 농협 측에서 생산품을 판매하기로 계약되어 있어 전망은 밝다고 볼 수 있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탈북자 7명, 현지주민 7명 등 14명인데 노동강도는 3D업종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모두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항상 열의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무한 경쟁의 현실 속에서 제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맛과 질에서 국민들의 기호에 맞게 꾸준히 연구 개발한다면 승산은 있으리라 본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까지는 협회 회원들의 노력 못지 않게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신 실업극복운동위원회와 우리들을 따뜻한 동포의 정으로 도움을 베풀어 주신 분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00년 11월 윤성철
2004-11-18 00:17:09
출처 : 탈북자동지회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