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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백룡 애즈나"에 내 꿈을 실어 - 이영국

작성년도 : 2003년 671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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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룡 애즈나"에 내 꿈을 실어

- 이영국

 

 

고생끝에 낙이

 

북한에 있을 때 KBS 라디오 프로그램을 자주 들었다. 남한방송은 사람을 참 포근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진행자의 솔직한 멘트, 그것을 통해 그려보는 남한사회의 생활상은 점점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남한방송은 마치 마약과 같이 무엇인지 모를 힘으로 나를 계속해서 끌어당겼다. 남한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내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그것이 나의 최대 목표가 되어 버렸다.

 

결국 난 중국으로 탈출했다. 중국에서 아는 분의 소개로 한국에 데려다 주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한국행은 이제 시간문제인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가 날 인도한 곳은 북한 대사관이었다. 몇 푼의 돈을 위해 신의를 저 버린 것이다. 북한으로 송환되고 갖은 고생 끝에 다시 탈출하고...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도 지울 수 없었던 희망, 남한행은 결국 2000년이 다 되어 실현되었다. 옛말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다. 북한과 중국에서 근 7년간 갖은 고생을 다했으니 이젠 내 인생에 즐거운 일만 있을 것 같았다. 조상들 말씀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감투를?

 

남한에 입국한후 하나원에서 사회적응교육을 받으면서 소중한 경험을 했다. 하나원 동기 자치회장을 맡게 된 것이다. 자치회장은 교육기간동안 탈북자 스스로의 생활을 규율하고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며 돕는 일을 하게 된다. 자치회장이라는 감투아닌 감투를 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치회장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동료 탈북자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를 조정하고 달래기도 해야 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통솔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내 부덕의 소치로 동료 탈북자와 언성을 높인 적도 있었다. 나의 급한 성격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다. 자치회장을 하면서 하면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교육기간중 겪었던 여러 경험들은 내게 큰 교훈을 주었다.

 

사람과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었다. 또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 의사소통을 통해서 의견을 교류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사회에 나가서 겪게 될 시행착오를 교육기간중에 미리 경험하면서 이 사회에 정착해 나가는 일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이었다.

 

새내기 대한민국 국군

 

하나원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배출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에서의 군복무 경험을 바탕으로 육군교관으로 근무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북한군에서 근무했던 내가 적대관계에 있는 대한민국 국군에서 근무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약하나마 나의 북한군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져 이를 받아들였다.

 

남한에서의 군생활은 남과 북의 차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를 맘껏 누리며 자라온 청년들이 군대라는 정형화된 조직에서 위계질서를 지키며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 이것이 한국을 지탱하는 힘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착생활 초기 너무나 자유롭고 풍족한 생활모습들을 바라보며 흥청거리기만 해 보이는 이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사람들의 정신자세, 나름대로 꿈과 각오, 젊은이들의 패기들을 경험하면서 한국의 발전과 풍요로움은 개인 각자의 노력에 근거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회사경영이 뭘까?

 

2년간의 교관생활을 마치고 친분이 있던 어학기자재 회사 사장님의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사장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그분의 경영방법,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을 배워보고 싶었다. 나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천식 비방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경영스타일, 생활방식, 신념 등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나의 교범이 된 것이다. 그렇게 난 몇 개월간 자본주의와 경영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하고 배우며 지냈다.

 

사업을 시작하며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기관지와 천식에 좋은 비방을 가지고 건강보조식품을 만들어 팔아보기로 했다. 비방의 효과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북한에서 동네사람들의 천식을 치료해본 경험이 많이 있었고 중국에 있을 때도 주위에 기침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비방을 써본 결과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식품의약청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효능검증도 요구되었다. 돌다리도 두드리면서 가는 심정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관지나 천식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처방을 해보았다. 20년동안 천식을 앓던 분이 한달만에 낫기도 했고, 아들이 기관지 계통으로 미국에서 전문의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고질적인 기침도 고쳐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얼마동안의 검증과정을 거치고 드디어 회사를 차렸다. 개업한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반응이 상당히 좋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 차근차근 사업규모를 늘리고 제품개발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내가 집안에서 내려오는 비방으로 지니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계속해서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사업을 시작할때의 각오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일할 것이다.

 

내가 만드는 제품은 어디까지나 건강보조식품으로서 불치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지만 천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젠 나도 이 사회의 성실한 일원으로서 다시 태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더욱 더 사업에 성공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백룡 애즈나에 내꿈을 실어 이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사업가로서 제2의 인생! 이제 시작인 것이다.

 

2003년 이영국

 

 

2006-02-13 10:59:5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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