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의 실태 - 푸른바다 > 탈북민 수기

본문 바로가기

탈북민 수기

북한군의 실태 - 푸른바다

작성년도 : 2006년 567 0 0
  • - 별점 : 평점
  • - [ 0| 참여 0명 ]

본문

북한군의 실태

- 푸른바다

 

 

지금도 그 악몽 같은 세상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기가 일쑤이다. 모든 것이 군위주이고 나라 자체가 거대한 군대인 북한, 모든 것보다 군이 우선이라며 그렇게 떠받들리고 있는 북한의 군 실태는 과연 어떠한가.

 

나는 직접 군복무를 한 적도 없고 다행히 요행수로 군복무를 회피하여 나중에 여기 남한까지 오긴 했지만 어느 정도 북한군의 실태를 알고 있다. 남한에서는 직장인들 속에서 술자리에 앉으면 늘 하는 소리가 군복무 시절의 에피소드인 것만큼 군사복무 회피자라고 하면 상당히 사회적 불신을 사게 된다. 그러나 북한의 군복무는 회상하고 싶다기보다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의 느낌을 받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로를 모색하고 있을 때쯤 나의 동창들은 모두 군에 가는 비극을 면할 수가 없었다. AK소총만한 키에 아직 솜털이 보시시한 소년들이 허리벨트도 채울 수 없을 만큼 큰 군복을 입고 군에 끌려가는 모습은 과히 일제시기 징병이나 소년병으로 끌려가는 그 모습을 연상하게 하곤 했다.

 

잘 먹지도 못한데다 고역에 시달려 클 만큼 크지도 못한 자식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님들의 마음 역시 억울하다. 북한은 4월부터 시작하여 8월이나 9월까지 군 징병을 마감한다. 4월은 초등학교나 고등학교들의 졸업달이다. 학창생활을 끝마치자마자 군에 끌려가는 것이다.

 

지금도 평양역의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군에 징집되어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평양역이나 각 지방 역들에 모여 군 열차편성을 받은 뒤 모두 함께 떠난다. 여기 남한만큼의 자유스러운군 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다.

 

수백명이 모여 있는 역에서 사상교육에 열을 올리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가 소란하게 울려 퍼지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광경은 어찌 보면 낭만적이고 정열적일 수도 있다.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 법석대는 그 모습은 과히 구경할 만한 장관이다. 그러나 열차가 들어오고 징집된 청소년들이 열차에 오르면 잠시나마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곧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여기저기서 자식을 부르는 부모님들, 친구를 찾는 목소리, 애인의 손을 잡고 우는 목소리로 가득 메우는 풍경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하는 광경이다. 열차가 떠나면 그 광경은 배가되어 역 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도 친구들을 배웅하러 수없이 역전에 나갔지만 매번 똑같은 느낌에 영실이만 걸리지 말고 제대로 와라하는 똑같은 말만을 반복해야 했다. “영실이란 영양실조의 준 말이다.

 

남한 사람들은 대부분 영양실조의 개념을 잘 모르고 있겠지만, 그 실태는 그야말로 참담하다. 너무 여위어서 뼈만 앙상해 사람이라기보다는 해골에 가까운 북한식 말로 골격표본모습인 것이다. 영양실조에 대한 방언들도 많아져서 영실이, 강영실, 허약3등 여러 가지 표현이 생겨났다.

 

북한군 내부는 어떨까? 북한에서 가장 영양실조 환자가 많고 전염병이 만연한 군부대들은 1군단, 5군단 등 모두 강원도 즉 휴전선 지역의 군부대들이다. 군입대를 앞둔 청소년들에게는 공포의 대명사로 꼽히는 곳이다.

 

여기는 교통조건이 불리해 모든 물자들이 제대로 보급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군복무를 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추위와 굶주림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이들이 지킨다는 조국은 이들에게 밥 한 그릇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뇌물로 군의 좋은 곳과 나쁜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만큼 이 곳 강원도 지역의 장병들은 농민이나 노동자 등 그야말로 북한에서 가장 힘없고 돈 없는 서민들의 자식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국경과 인접한 지역에 나가려면 북한 돈 20만원, 평양의 호위총국군부대에 가려면 30만원 등 공급이 좋고 영양실조 환자가 적게 나오는 군부대들은 비싼 뇌물을 고여야 한다.

 

심지어 고향에서 군복무를 못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있음에도 돈만 있으면 고향에서 편안히, 그야말로 군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군을 다닐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편적인 실례로 김정일이 강원도 지역의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군인들에게 평양이 고향인 친구가 있으면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평양이 고향인 군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엘리트 출신들이 많이 사는 곳이 평양인 만큼 여러 가지 인맥관계로 자식들을 그런 곳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화가 난 김정일은 그 후 3년 동안 평양시 안의 청소년들을 강원도 지역의 군부대로 보내라고 불호령을 내렸으며, 수많은 평양시 청소년들이 그 곳에서 고생을 해야 했다. 토요일이면 외출하고 월요일 기상 전 까지 들어 갈수 있는 남한의 국군의 비해 참으로 험하고 비극적인 일이다.

 

또한 북한군의 휴가는 제한되어 있어서 10년 동안의 군복무 기간 한 번도 휴가를 가보지 못한 채 제대하는 청년들도 많다. 10년간의 군복무! 화사하게 생긴 연약한 아들을 배웅하던 10년 전의 아들을 기억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제대해 돌아온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시꺼멓고 우직스럽게 변한 아들을 보는 부모들은 그래도 죽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 돌아온 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북한의 군 장병들 특히 강원도 지역 군인들 속에서 철칙으로 되어있는 법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1000이삭 옥수수 먹기 운동이다. 한해 가을에 1000이삭의 옥수수를 먹지 못하면 그해 겨울엔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살아야하는 그 처참한 집단. 모두 영양실조나 각종 질병에 걸려 부대 정원의 50%이상을 공백으로 둬야하는 실태. 10여 년 동안 여인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그야말로 격폐된 세상에서 청춘을 보내야 하는 그들.

 

인생의 가장 귀중한 청춘시절을 모두 군에 빼앗기고 온전한 세계관조차 가질 수 없게 교육받고 세뇌 받는 그들. 아직도 그 지옥 같은 세상에서 고생하는 나의 친구들. 나는 그들을 구하고 싶다. 무엇이라도 있는 힘껏 무엇인가 하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직도 이런 세상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현재의 행복을 지나온 삶에 비추어보며 자신을 채찍질하자. 그렇게 고생하며 살아온 그 땅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고생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자.

 

2006816일 푸른바다

 

 

2006-08-21 12:04:20

출처 : 탈북자동지회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