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거짓말쟁이의 고백 - 주혜순
본문
어느 거짓말쟁이의 고백
- 주혜순
사장님께.
사장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제가 사장님을 처음 알게 된 지도 벌써 1년이 훨씬 넘었군요.
그동안 자주 찾아 뵙고는 싶었지만 학교생활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니 오늘이 설날 이네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셨는지요? 저 같은 탈북자들은 명절 때만 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느끼는 감회가 새롭답니다. 아직 북에 남아 있는 친척들 생각도 나고, 또 낯선 이 땅에 정착하면서 겪은 서러운 기억도 떠오르고 해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정말 간절해지는 때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이름 그대로 오리깃털처럼 푸르고 수정처럼 맑은 압록강 기슭의 어느 마을이었거든요. 그곳에서 자라 교원 생활을 하던 제가 지금처럼 변할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설날 저녁에 책상에 앉아 무심코 지내 온 일들을 떠올리다보니 문득 사장님 생각이 나더군요. 제가 한국 땅을 밟고 나서 만난 가장 고마운 분이었는데 그동안 변변히 감사하단 말씀도 못 드렸어요.
그런 마음의 짐을 벗고자 이렇게 뒤늦은 감사의 글을 띄웁니다.
사장님.
제가 처음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편의점을 찾은 날 기억하세요?
사실 제가 편의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답니다. 저 같은 탈북자들은 오로지 인간다운 삶을 꿈꾸며 사선을 넘어 낯선 땅까지 오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낯선 땅에 정착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저 역시 막연한 두려움에 정신적 갈등을 많이 겪었습니다. 북한에서 입버릇처럼 들어오던 썩고 병든 자본주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는 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기왕 정착할 사회라면 먼저 몸으로 부닥치는 게 상책이다 싶어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그러다 찾게 된 것이 바로 사장님네 편의점이었습니다. 사장님의 첫인상은 마음씨 좋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 같았어요.
운 좋게도 일자리는 쉽게 구했지만 막상 첫 출근날부터 걱정거리가 많았습니다. 내가 이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근무 첫날 옆의 동료직원이 "어디에서 왔니?"하고 묻더군요. 순간 저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얼굴만 붉힌 채 대답도 못하는 저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조심스레 쳐다보는 그녀의 눈길이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도 모르게 그만 "나 강원도에서 왔어"란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모면하기는 했지만 제 거짓말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편의점에 있는 물건들 중 이름을 아는 것이라고는 라면, 과자, 물, 음료수가 고작이었지요. 손님들이 와서 외래어로 물건을 찾으면 어쩔 수 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여기 칵테일이 어디 있죠?"
"칵테일이요? ……… "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부터 저는 편의점에 있는 모든 물건을 유심히 살펴보고 이름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누구한테 물어 볼 처지도 못되어 언제 또 난처한 일을 당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 가슴 졸이는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장님이 오셔서 물건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친절하게 이것저것 구체적인 용도까지 알려 주셨지요. 그때 정말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릅니다.
그때 사실 제가 북한에서 왔다고 고백해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사장님. 제가 시골에서만 살다보니 이런 거 잘 몰라요."
또다시 거짓말로 순간을 지나쳤지만 두고두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나 자신이 왜 이런 소외감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한국 사람 흉내를 내며 행복한 척 살고 있지만 정작 마음은 늘 편치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 사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내 자신이 더 두려워졌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사장님을 찾아가 솔직하게 사실 얘기를 하게 되었지요. 이 사회에 와서 내가 북한 사람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놓는 순간이다 보니 사장님의 반응을 살피느라 말하는 내내 사장님 눈빛만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사장님에게서 뜻밖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후후, 나 이미 알고 있었어.
이력서하고 같이 제출한 주민등록등본이 우리 것하고는 조금 다르길래 눈치 챘었지. 알면서 직접 말할 때까지 기다렸거든.
실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실례가 될까봐 말 못하고 있었단다.
야, 우선 대한민국 사람이 된 거 진심으로 축하해."
그때 제가 얼마나 감격했는지 사장님은 잘 모르실 거예요.
사장님이 이제껏 서툰 말투로 한국사람 흉내를 내던 저를 묵묵히 믿고 기다려 주셨다니 한편 부끄럽기도 했지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후로도 사장님은 틈나는 대로 한국 사회가 어떤 곳인지, 또 여기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한국 땅을 밟고 나서 처음으로 진한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제게 그해 겨울이 얼마나 따듯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후 제가 이 사회에서 좀 더 당당한 위치를 찾고자 대학진학을 결정하고 편의점 일을 그만 두게 되자, 사장님은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서운하다 하시면서 못내 아쉬워 하셨지요.
저 역시 아쉽긴 했지만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서 부득이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장님.
제가 요즘 대학생활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저 벌써 2학년에 올라갑니다.
의사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선택한 의대생활이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물론 학교생활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차근차근 교육을 받은 남쪽 학생들에 비해 저는 모든 것이 부족했거든요. 낯선 과동기들에게 말을 걸기조차 처음에는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예전처럼 먼저 겁부터 내지는 않았습니다. 남들이 내게 다가올 것을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그들 앞에 다가서기로 용기를 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말을 건네고 나니 예상 밖으로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거예요. 저는 탈북자임을 떳떳하게 이야기했고 친구들도 아무런 편견 없이 저를 따듯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저는 점점 외로움의 덫을 벗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공부만큼은 힘들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러시아어를 배운 탓에 영어는 정말 어렵더군요. 영어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여기서 무너지면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강의시간마다 결석이나 지각은 생각할 수도 없었고 강의내용을 녹음해 두었다가 집에 와서 다시 복습하는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강의수준을 따라 갈 수 있었고 이제는 어느 정도 실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참, 사장님, 제가 우리 학교 인기스타인 것 모르시죠?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은 정말 자유롭고, 누구나 배우려는 열정만 있으면 뒷받침되도록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더군요.
지난 가을에는 대학축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노래자랑에 나가 당당히 인기상을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노래 잘 부르는 늦깍이 여대생으로 소문 나 저도 모르는 새 학교 안에서 인기스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어려움도 많았지만 정말 보람되고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게 도전의 연속인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도전 속에서 보람을 찾다 보면 마침내 행복도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저도 꽤 성숙해졌지요?
사장님, 저 요새는 좋은 일도 하고 있습니다.
저야 국가에서 혜택받고 편하게 공부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는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많더군요. 그래서 한국사회의 밑바닥도 체험하고 제가 누리고 있는 행복도 함께 나눌 겸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CGL기행이란 자원봉사단체를 통해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해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들과 똑같이 운동하고 싶어 하지만 장애로 인해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법도 가르쳐 주고 말동무도 되어주고 있어요. 한국 땅에 와서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장님!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이곳 생활이 이제는 어느덧 안정되고 여유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장님처럼 따듯한 관심과 정으로 도와주신 주변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란 것 잘 압니다.
비록 표현에는 서툴지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구요, 또 제가 보답하는 길은 앞으로 더 열심히 사는 것 밖에 없다고 믿고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설날을 맞아 새해 인사 드린다는 것이 너무 두런두런 제 이야기만 늘어 놓은 것 같군요. 편지에 그치지 않고 조만간 한번 찾아 뵙도록 하지요. 사장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구요, 또 편의점 장사가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남은 학업 잘 마치고 이 사회에서 당당히 자리매김할 때까지 계속 지켜 봐 주십시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2004년 설날 저녁 주혜순 올림
2004-11-19 20:55:49
출처 : 탈북자동지회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