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선생님의 영어수업 "에이 비 씨"
작성년도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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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선생님의 영어수업 "에이 비 씨"
- 이은혜
대한민국 국민이 된 지 겨우 1년이 되나마나한 제게 정착경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의 꿈을 저 높은 푸른 나무라고 하면 현재 위치는 그 아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작은 개미 무리중의 한 마리라고나 할까요?
부담스런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저의 소박한 글이 탈북 동포 여러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낯선 생활과의 만남
제가 자유의 땅, 대한민국을 찾아 온 것은 지난 해, 초가을의 향기가 한여름의 더위를 몰아내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표현하기 힘든 뒤엉킨 감정 속에 정신없이 인천공항의 문을 나서던 그 때가 벌써 아득해 집니다.
「하나원」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눈이 내리던 어느 날, 품안에 주민등록증을 받아 쥐고는 새로운 삶의 회오리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무런 각오 없이 찾아 온 땅은 아니었지만 정작 맞닥뜨리고 나니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내 나이 벌써 사십을 바라보는 때였고, 북에서는 부유한 가정에서 근심없이 자라다가 출가 후에는 남편을 따라 15년 넘게 해외생활을 하면서 편하게 살던 나로서는 정말 치열한 경쟁사회의 적응이 만만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한 달 가고 두 달 가고 시간이 흘러도 막상 뚜렷한 돈벌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디 오라는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국수집이나 순대집을 차려 볼까도 생각했지만 요리솜씨에 영 확신이 서지 않아 그만 두게 되었고, 그 무렵 경제불황이 밀어닥쳐 새로이 가게를 차린다는 것은 엄두를 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찾은 자유의 땅에서 정말 일어서느냐 아니면 절망 속에 영영 빠져드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였고, 정신적 갈등은 건강까지 위협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어. 내게는 나를 원망하거나 비웃는 북한의 그 어떤 사람 앞에서도 내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할 의무가 있어."
단호하게 마음을 다그치고는 생활의 탈출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이 오직 북에서 배운 영어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미국식 발음법을 쓰는 한국영어교육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데다 북한에서 온 사람이란 이질감이 저의 발걸음을 주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담하게 도전해 보기로 하고 한 이웃의 추천으로「한솔교육」이라는 학습지 회사의 영어교사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11시가 넘다보니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녹초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남들 모를 서러움까지 겪기도 했습니다.
눈물로 시작한 첫 수업
처음 연수를 받고 나서 지역 배치를 받을 때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지국에 배치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만, 정작 결과는 버스를 타고 한시간이나 가야 하는 인근 지국이었습니다.
양쪽 지국장님들이 찾아 와 배치 경위를 구구히 해명하였지만, 대상자 두 명 중 하필 아이가 달린 나를 먼 곳에 보내는 것인지 서러운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습니다. 순간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도 나고 좋은 대우받으며 살던 예전 생활이 떠오르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해당 지국장님이 몇 달만 같이 일한 뒤 가까운 지국에 자리가 나면 꼭 보내 주겠다며 간곡히 달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믿고 받아주는 지국장님 앞에서 나이 사십에 구차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지국에 와서 교실을 인계받을 때였습니다. 저를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놓고 선생님들간에 이견이 많았습니다. 그 때 지국장님이 "북한 사람이라고 밝혀야 한다. 그래서 지국이 손해를 보는 것은 할 수 없다. 나는 선생님을 믿는다."라고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고마웠고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학급을 인수하다보니 무더기로 결원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영어실력은 둘째이고 귀한 자식들을 북한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수업은 단 한번 받아 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때 저를 믿고 데려 온 지국장님과 지국 선생님들에게 몹시 미안했습니다.
"꼭 잘 할 수 있었는데……"
거의 한 달을 우울증에 시달리며 수업시간마다 간신히 버티곤 했습니다. 또한 제게는 육체적인 피로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편한 생활에 익숙해 있다보니 갑자기 늦은 시간까지 버스를 갈아타면서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이 여간 힘겹지 않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현기증에 어찔어찔하다 구토를 한 적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영어교사라 하면 정숙한 대학강단 같은 데서 가르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매일같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려야 하는 현실에 자존심도 적잖이 상했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처음에는 다 그런 것이니 힘내라고, 웃어 보라며 위로해 주고 심지어는 제 수업시간에까지 동행하여 제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정성어린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의 따듯한 배려 속에 마침내 저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나를 위해 애써주는 분들이 있구나. 나를 믿어달라고 백 번 말하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나를 믿도록 만들어야 한다."
생각이 환경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고 나니 그토록 깜깜하게 느껴지던 주변환경도 하나 둘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따로 없다. 이 사회를 배우는데 집집마다 방문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처음부터 힘들게 배워야 나중에 쉬워지는 법이다."
힘들게 배우기로 결심하고 나니 막상 힘든 일도 쉽게만 느껴졌습니다.
잘 안 되는 한국말 발음을 익히기 위해 카세트를 옆에 끼고 남이 이상스레 쳐다 볼 정도로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늦은 밤이면 가르치는 아이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그들에게 맞는 교수법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교육을 하는데 있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르치는 애들을 요구수준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두 내 자식을 가르치는 심정으로 진심을 바쳐 일했습니다.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의 궁금증이 다 풀릴 때까지 충실히 반복해서 가르치고 학부모들과도 친밀해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다보니 처음에는 제가 못 미덥다는 이유로 수업을 취소했던 많은 인원들이 다시 제 수업을 받겠다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기뻤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마다 항상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한 결과, 그렇게 차갑고 멀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이 이제는 인정미가 넘치는 부모형제, 친지처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우리 애 중학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 우리 애 형, 누나도 같이 맡아 주세요."
회사 규칙상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런 제안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기쁘고 긍지가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시작하였던 저의 수업이 이제는 7개월만에 그 배를 넘게 되었으며 오히려 수업을 다른 선생님한테 나누어 맡겨야 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제는 지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정받게 되었고 오랜 경력을 가진 다른 선생님들 못지 않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참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당당해 지는 길
저는 지난 8개월 동안 참 귀중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설 자리가 있으며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만 하면 그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는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진심을 바쳐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어느 환경에서든지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TV나 신문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처럼 큰돈이나 목돈을 바라기보다는 이 경쟁사회의 흐름 속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스스로 당당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정착생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탈북 동포들이 있다면 이 점을 일깨워 드리고 싶고, 앞으로 꼭 보람찬 결실 거두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또한 이제까지의 작은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누구한테나 인정받는 영어 선생님이 되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할 작정입니다.
감사합니다.
2003. 12. 이은혜 씀
2004-11-19 20:54:57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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