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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침술의 의미 깨닫기 - 이충국

작성년도 : 1999년 50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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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8년 11월 양강도 김형직군에서 고등중학 교사였던 아버지와 인민학교 교사이던 어머니 사이의 4녀 1남중 막내 외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중학까지 마치고 나서 84년 평성이과대학(7년제) 생물학부 생화학과에 입학하였다. 동 대학은 67년 김일성 지시로 자연과학원이 있는 평성에 설립되어 수학,생물,화학,물리 등 자연과학만을 가르치는 북한내 유일한 대학이다.

4학년 재학중이던 90년 9월 군에 입대하여 인민무력부 핵화학방위국 산하 반핵반원자분석소(평양시 서성구역 소재) 소속 계산수로 군 생활중 출세가 보장되는 군관직발(발탁인사)을 희망하였으나 좌절된 후 북한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 93년 겨울 북한을 탈출하였다.

당시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누님들은 모두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의 귀순으로 인한 가족들의 큰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 비교적 홀가분한 마음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많은 탈북자들이 두고 온 가족 때문에 괴로워 하지만 나는 이런 문제로 인한 걱정은 덜한 편이다.

94년 한국에 온 후 몇 개월간의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오고 보니 나처럼 기술도 없고 학벌도 없는 탈북자가 할 마땅한 일이란게 있을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호텔 웨이터로 첫 출발을 했다. 당시 받은 정착금 1,400만원으로는 지하방 전세도 얻기 힘들어 호텔에서 숙식하며 한푼도 안쓰고 열심히 일했다. 그랬는데도 2개월후 내손에 쥐어진 돈은 56만원이 전부였다. 자본주의사회의 치열함을 깨달았다.

결국 웨이터를 그만두고 그해 10월 당국의 도움으로 수협에 입사, 일에만 매달리면서 장가가기 전 내집이라도 마련하자는 각오로 회사에서 마련해준 기숙사에 숙식하며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하였다. 그렇게 한 덕분으로 귀순 3년만에 잠실에 25평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내 자신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생활이 어느정도 안정되자 혈연,지연,학연이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이곳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지 않은 내가 조직사회에서 커 나갈 수 있는 길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 장래를 보고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많은 직업들중 나에게 가장 매력을 준 것은 한의사였다. 또한 실력만 겸비하면 쉽게 성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과감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의과대학에 입학 하기로 하였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소설 "동의보감"의 영향도 나의 한의대행을 부추겼다.

결심을 굳힌 나는 취약점인 한문과 영어공부에 매달려 96년 4월 드디어 한의대 예과 2년에 특례입학하였다. 입학 한달도 안돼 정부의 약사의 한약 조제자 시험 허용으로 인한 한의업계의 반발로 1년이상 수업이 차질을 빚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하에서 나의 권리와 남의 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달았다.

입학후에는 북한출신으로 어학 등 취약점 때문에 낙제를 면하기 위해서는 일반학생들의 2배 이상 노력이 필요했다. 나의 필사적인 학점투쟁에도 불구, 인체발생학과 의학영어 두 과목이 과락되어 재시험을 쳐서 간신히 학점을 따기도 했다.

한 때는 한의학에 대한 공부가 쉽지 않은데다 한의가 과연 환자를 고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본과 2학년 여름방학때 전국 한의대생 대상 40일 침술강좌(사암침법)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서 배운 여러 가지 인체경락구조와 그것을 주역으로 설명한 금오 김홍경 선생의 강의는 한의학에 매력을 잃고 방황하던 나에게 특히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이후 가까이 지내던 한 분이 허리를 다쳐 화장실도 못 간다는 말을 듣고 침을 시술하였는데 신기하게도 눈앞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사암침범의 우수성을 다시한번 깨달은 후부터는 한 눈 팔지 않고 학업에만 정진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이론적 기초와 임상경험을 충분히 쌓아 실력있는 한의사가 되어 고통받는 주변사람, 나아가 북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길이 나의 귀순 의미를 살 리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 현재 본과 3학년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고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1999년 11월 이충국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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