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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말기암 환자와 북한 - 이애란

작성년도 : 2004년 57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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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에 "망해도 곱게나 망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약 2년전에 함경남도 부전군에 외화벌이용 금을 사러 갔다가 식도암 말기환자를 만났었다.
석자 막대기를 휘둘어도 걸릴 것이 없는 휑뎅그렁한 방에는 걸그렁거리면서 힘들게 숨을 톱아 올리는 환자의 신음소리만이 넘치고 있었다. 언제 세탁을 해보았는지 원색을 찾아볼 수 없이 더러워진 이부자리에는 사방에서 이들이 줄을 지어 행진을 하고 있었고 퀭한 눈에 희다못해 누렇게 뜬 얼굴, 사람이라기보다는 나무막대기를 조립하여 만들고 그 위에 껍데기를 씌워 놓은 것 같은 환자의 모습은 마주 보기조차 애처로웠다.
5년째 식도암을 앓고 있는 그 집주인은 이제는 시한부 운명을 살아가고 있지만 늘 옆에는 자기가 복싱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을 회고하며 그 시절의 젊고 튼튼한 미남의 사진을 놓아두고 있었다.
결혼초기에는 자기가 상당히 밑진다고 자부하면서 얻은 아내에게 이제는 더 이상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조차도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못생겼다고, 변변치 않게 생각했던 그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 집주인은 벌써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만 그렇게 충성스러운 아내도 이제는 지쳤을 모양이었다.
집 가산이라고 별로 돈 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시집 올 때 해 입은 첫날 옷까지 팔아가며 남편을 구원하였다.
금 광산 부 지배인으로 있던 아버지의 능력으로 그래도 마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던 것이 지금은 찢어진 비닐 창으로 1월의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그리고 장판지도 바르지 못하여 맨 봉당에서 사는 처지가 되었다.
아들 둘, 딸이 하나인데 그 애들은 지금 누덕누덕 기운 옷을 대강 걸치고 얼굴이 들여다보이는 멀건 죽물을 후룩후룩 마시면서 아버지의 밥그릇을 넘겨다보고 있었다.
진통이 오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아편주사를 맞고서야 진정이 되곤 하는 것도 벌써 2년이나 되었다.
때마침 외화벌이 때문에 아편농장이 생긴 것이 불행중 다행이어서 아편을 구할 수는 있었으나 돈이 만만치 않은데 돈을 꾸어서 쓰다못해 이제는 돈을 꾸어주겠다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과 아내의 생각은 더 망하기 전에 말기 암 환자인 아버지이며 남편이 빨리 갈 길을 갔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식도암 환자는 어서 빨리 죽는것이 아이들과 아내를 위한 최선의 방법 일 것 만 같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온 집안 식구가 무리송장이 날것만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었다.
살은 다 빠져서 백골을 상상케 하는 환자의 얼굴과 숨도 제대로 톱아 올리지 못하는 너무도 가엾은 모습을 지금껏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북한도 아마 이 암 환자와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북한을 생명체라고 생각한다면 그 동안 북한땅에 뿌리내린 "우상 암"은 너무도 많이 자랐고 그것은 더는 치유할 수 없는 말기까지 왔다. 이 악령의 혹은 온 나라의 숨통을 조이며 하루하루 세력권을 확장해 가면서 더는 솟아 날 수 없는 미궁으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을 휩쓸고 있는 기근과 경제불황은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고 사방에 시체산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동맥인 철도는 전기난과 기관차난으로 매일 정시로 달려야 할 기관차가 연착을 반복하고, 그나마도 사흘에 한번 나흘에 한번 들어오기가 일쑤이다. 해주에서 떠난 열차가 혜산진에 도착하기까지 15일간이나 걸렸다고 하면 한국에 계시는 어느분이 믿을 수 있겠는가?
나라의 신경인 통신이 단절이 되어 전화 연락이 되지를 않다 보니 떠나면서 마중나와 달라고 친 지급전보가 갔다가 돌아올때까지도 도착을 하지 않는 희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고철이면 고철, 통나무면 통나무 있는 대로 강냉이와 바꾸어 먹다보니 시내의 하수도관 뚜껑까지 이웃나라와의 밀가루 교환용 파 철 더미에 실려가고 산은 벌거숭이가 되어 대머리 환자와 같이 되어가고...
한창 배워야 할 어린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는 장사를 하느라고 물 컵이나 고춧가루 봉지가 쥐어져 시장바닥을 헤매다 보니 이제는 한 학급의 3/1이 이름자도 재대로 못 쓴다니 새로운 천년을 향해 나가는 이 시대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원료, 자재가 보장이 되어 우리가 다시 일어 설 수 있다고 하여도 우리는 전쟁을 겪은 것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어야 하며 모든 기계설비를 새로 갖추지 않는 한 경제희생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폭격에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에 깨버리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됐었지만 지금은 모든 공장들이 고철 더미나 마찬가지여서 폭격을 하던 무엇을 하던 간에 다 깨어버리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 무너져 가는 오막살이는 아무래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고 밥한끼를 얻어먹기 위하여 사기를 치는 사기단까지 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목숨을 걸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하고 있는데도 북한당국에서는 그들의 사정을 고려하기는 커녕 "사회주의와 당과 수령을 배반한 민족반역자, 반동"등 별의별 감투를 다 씌워 쇠줄로 코를 꿰어다가 처형하는 만행을 감행하고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을 사형장으로 만들기 전에, 도둑질하였다고 재판도 없는 공개 처형을 단행하기 전에 북한당국은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하여 함께 굶어보아야 할 것이다.
강냉이 뿌리와 벼 뿌리, 가랑잎을 먹는 방법을 고안해내고, 사상 최대의 인권탄압이 능사는 아니며 위기에 몰릴때마다 휘두르는 "미사일"과 "핵"도 북한을 구원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악성 말기암에 걸려 만신창이가 된 북한은 이젠 정말 끝장이 나야한다.
어린아이들의 조그마한 창자도 채워주지 못하는 "배고픈 사회주의"는 이젠 제발 자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북한인민의 생활이 개선되고 내조국의 절반 땅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암 부위를 도려내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더는 없는 것이다. 병의 근원을 제거하는 길만이 생명을 보존하는 길 일 것이다.
북한으로 실려가는 "비료", "쌀", "돈"은 마치 암 말기에 봉착한 부전군의 그 사람이 진통이 있을때마다 맞곤 하는 아편주사와 같이 진정제의 역할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의 북한을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전 땅의 암 환자가 빨리 가는 것이 남은 가족을 위해서 최선의 방법이듯이 썩을 대로 썩고 병들대로 병든 북조선도 빨리 망해버리는 것이 가장 최선의 선택이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해야 할 삼천리 반도를 위하여 경제적으로도 많이 효과적일 것이다.

--- 이애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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