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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부르면 눈물날 것 같은 이름 아버지 - 명순

작성년도 : 2005년 63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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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면 눈물날 것 같은 이름 아버지

- 명순

 

 

부르면 눈물날 것 같은 이름 아버지 - 명순

 

 

먼저 초안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타자하여 글 올리다나니 서투르거나 초라해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아이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조선(북한) 청진 사람입니다. 인터넷이 정말 좋군요. 여직 숨기고 살았는데... 여기선 서로 서로를 모르니 이렇게 마음 놓고 내 마음의 글도 쓸 수 있고 말입니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너무 그립습니다. 이젠 저 땅에 묻혀 썩어 백골이 되였을 나의 아버지...

백골이 어떤 모습인지 너무나 잘 아는 나이의 저입니다만 아직도 아버지의 환하게 웃는 모습, 슬프게 날 안아주던 그 모습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처음 이 땅에 왔을 땐 하얀 이밥 한 그릇 봐도 아버지가 얼마나 생각나는지, 나의 목숨 같은 혈육들이 얼마나 서러움과 눈물 속에 떠오르고 생각 키우는지..... 이밥 한 그릇에 그렇게 많은 그리움과 눈물이 있으리라곤 여러분은 아마 느끼지도 생각도 안하고 사실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언니, 나의 남동생, 그리고 저, 저의 가족입니다. 어머니와 언니는 어머니의 언니 (큰 어머니 )집이 있는 조선 량강도로 떠나셨습니다. 떠나신지 30날도 됩니다. 나와 나의 남동생은 학생입니다. 아버진 직장을 다니셨어요.

 

언제나 아버지보다 먼저 하교하여 집에 오곤 하는 나는 그날도 저녁밥 지어놓고 동생이랑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7, 8, 9시가 다 되어도 아버지가 오시질 않습니다. 이곳처럼 전화가 있는 세상도 아니니 그냥 기다릴 수밖엔 없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동생이랑 그때서야 늦은 저녁을 합니다. 어머니가 집 떠나 친척 집 가신지 한달이 되다보니 쌀을 조금조금 사놓고 생활하는 저희에게 이젠 때시걱(끼니)도 걱정입니다. 어머니가 어서 오셔야 할 텐데...

 

이불 쓰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 깨어보니 아침입니다. 그제 서야 안 돌아오신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한번도 집 안 들어오신 적 없는 아버지인데... 걱정 가득 안고 학교로 갑니다. 어느새 저녁이 되였군요. 다시 밥을 하고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7, 8, 9...

자주 정전이 됩니다만 꼭 아버지가 없는 오늘에 전기가 안 들어오니 무섭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걱정 됩니다. 그러나 뭔 다른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초불로 에때우고(전기 불 대신 촛불로 밝히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또다시 아침입니다. 아버지가 어제도 안돌아 오셨어요. 눈물이 날만큼 두려워 집니다. “똑똑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가 안계시니 문 두드리는 소리도 무섭군요. 아버지의 직장동료분이세요.

 

떠듬떠듬 쭐나고(주눅 들고) 어리둥절한 저희를 보고 동료 분은 차마 말을 꺼내질 못합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계시는데 왜 내 가슴이 이토록 세차게 뛰는 것일까요. 왜 쥐어진 주먹이 떨리는 것일까요.

 

"...너의 아버지가 그저께 저녁에 기차 사고 당하셨어. 그래서 지금 시병원에 누워 있다. 크게 다치진 않으셨어."

!!! 휘청거려진다는 말을 책에선 많이 보았습니다만, 그때 정말 사람이 말 한마디에 휘청일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동생은 벌써 웁니다. 난 누나니까 울면 안 됩니다. 아버지가 크게 다치신 것도 아니라고 하잖아요.

 

동료분이 가시고 남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진 온 얼굴에 붕대를 감고 다리에 붕대를 감고 그렇게 누워 계셨어요. 붕대사이로 보인 아버지의 눈엔 피가 고여 있습니다. 우리를 본 아버지는 반가운 마음을 그런 눈에 가득 담습니다.

 

옆에 친구분들의 얘기를 들으니, 아버진 기차를 타려고 짐을 한가득 배낭에 메고 철로를 가로질러 사람이 탈수 있는 언덕에 오르시려 하다가 짐의 중력에 fp(철로)우에 넘어지셨다고 합니다. 기차가 들어오는데 철로를 가로 질렀으니 잘못된 것이지만 아버진 짐을 한가득 지셔서 다른 곳으론 오를 수가 없잖아요.

 

기차가 들어오니 아버진 혹여 다리라도 끊어져서 불구가 될까봐 온 몸을 웅크리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을 진 상태로 넘어지다 보니 몸이 짐 위에 솟구쳐 있지 않습니까. 바퀴 바퀴사이의 부속품들이 나의 아버지의 얼굴과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더군요. 들으려니 눈물이 납니다.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복도로 나왔습니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듭니다. 나의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사고 당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밥 한 끼 못 잡수셨다고 합니다. 식사할 수 있는데 직장에서 배급이 전달되지 않아서 이틀 넘게 굶으셨다는군요.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그 주위의 사람들이 미웠는지 모릅니다.

 

미친 듯이 집으로 가는 차를 탔어요. 집에 가서 밥해서 아버지에게 대접해야 하잖아요. 물론 집엔 입쌀(흰쌀)이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정말 이밥 대접하고 싶어 동네 어르신에게 사정하고 돈 조금 빌렸어요. 여자애가 돈 빌리러 다닌다고 눈치 주는 것만 같아 너무 창피하지만.

 

그 돈으로 쌀을 사려고 시장을 뛰어 갔습니다. 시장보고 불 때고 밥 짓고 다시 병원까지 가는데 왜 시간이 그렇게 많이 들까요. 아버지의 침대는 비어 있었습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해요.

 

어서 중환자 실로... 아빠 조금만 기다려요. “아빠 아빠......” 아버지의 손엔 닝겔(링거)이 꽂혀 있었습니다. 붕대는 다 풀어져 있고 숨을 쉽니다. 이제 깨어나시거든 밥 드시라 해야지. 이밥인데. 삶은 달걀도 있는데...

 

동생은 나에게 기대어 옵니다. 이럴 땐 형님도 아니고 연약한 누나지만 의지가 되나 봅니다. 아버지의 입에 거품이 물렸습니다. 그땐 철이 없어,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숨넘어가는 사람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 아버지의 그 모습이 어떤 순간이었는지 몰랐습니다.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보면서 동생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말입니다.

 

잠시 후, 남자 의사분이 들어 왔습니다. "너의 아버지시지? 엄마는 어딜 가셨니? 학교 몇 학년이니?" 아직 그래도 밝은 모습의 우리들을 보면서 의사님은 안색을 흐립니다. "너의 아버지가 조금 전에 사망하였단다..." 웃기는 의사입니다. 아니, 엉터리 의사예요.

 

조금 전에도 숨을 쉬였는데 죽다니. 우리 아버진데 사망이라니.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의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이 사람이 저의 아버지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이 죽었나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이 사람의 딸이거든요? 얘는 아들이고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죽었나요?” 의사는 한숨을 쉬며 나가버립니다.

 

, 사람이 죽으면 손발이 무척 차다고 했었지. 아빠의 갈퀴진 손을 잡았습니다. 코에 손가락을 대봅니다. 내 아버지의 손이 아버지답지 않게 너무 차갑습니다. 얼음장 만큼이나요. "아버지. 아빠..아빠아............."

 

어머니도 없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동네 어른들과 직장 분들과 주위에 살고 계시던 친척들과 함께 치렀어요. 아버지를 관에 안장하고 삼일 째 되는 날 산에 가서 묻고, 그동안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와서 이밥만 보면 아버지가 그리워 또 많이 울었어요. 이젠 이 땅에 정도 많이 들었고 나를 도와준 고마운 중국 분들 덕에 시름 놓고 살고 있어요. 피 떨어지는 그리움이 뭔지 정말 가슴으로 느끼고 있어요.

 

내가 지금 운다고 나약하다고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땐 절대 울지 않습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한이 있다면 아버지에게 그날 이밥 한 그릇, 달걀 한 알 대접하지 못하고 내 눈앞에서 내 바로 앞에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 딸 오늘 삼가 엎드려 용서를 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 그곳에서 잘 지내시길 이 딸이 비옵니다.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나를 품어 키우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 사랑해요.

 

끝으로 어쩌면 중국에 왔을지도 모를 언니와 동생, 어머니를 찾습니다.

mingwha@naver.com

 

200510월 명순

 

출처 : 자유북한방송 재중탈북자방

 

 

2005-11-21 18:48:4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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