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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북한 동무, 남한 친구 - 김새벽

작성년도 : 2004년 67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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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동무, 남한 친구

- 김새벽

 

 

북한 동무, 남한 친구

 

엄마 · 아빠를 따라서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새벽이다. 내가 북한을 떠난 것은 7살 때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라는 이름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느날 밤, 엄마·아빠는 잠을 자고 있는 나와 동생을 깨우면서 "어디 먼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거기가면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겁을 주었다. 나는 정말 무서웠지만 동생 손을 꼭 잡고 엄마·아빠를 따라갔다.

 

엄마·아빠는 나중에 여기가 중국이라고 했다. 중국에 있을 때는 처음으로 말도 타보고 재미있는 텔레비젼 방송도 볼 수 있어서 즐겁게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엄마는 우리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 조금만 참아라" 고만 하셨다. 엄마·아빠를 따라서 여기저기 계속 밤길을 걸어다닌 적은 있지만 그래도 동생하고 '중국말 따라하기 놀이'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보냈는데 그때 왜 엄마가 우리한테 미안하다고 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아빠를 따라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꼭 떨어질 것 같아 무서웠지만 예쁜 누나들이 비행기 안에서 공짜로 주는 오렌지 쥬스도 맛있었고 더 신기했던 것은 아주 멀리 있는 줄만 알았던 '남조선'이 학교수업 두 번 정도 받으면 올 수 있는 시간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야 인기짱 가짜회장!

 

북한에 있을 때는 학교를 1년도 못다녔었는데 한국에 와서 지금은 벌써 2학년이다. 처음에는 학교에 가기가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말도 다르고 자기들이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우기는 아이들 때문에 매일매일 친구들과 싸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회장이다. 그것도 "가짜"회장이다. 2학기 회장은 다른 친구이지만 내가 1학기 때 회장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원래 회장은 친구들 사이에 공부도 잘하고 발표도 잘해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회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난 기분이 너무 좋다. 지금 회장한테 회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회장이 끝났는데도 친구들이 나를 "회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내 인기가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이런 나보고 "인기짱"이라고 하신다.

 

내가 인기짱이 된 것은 내 생각에는 내가 발표를 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조원들은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기 싫어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먼저 나서서 발표를 하니까 친구들이 날 좋아하는 것 같다. 난 뭐든지 먼저 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먼저 하면 기분이 좋고 또 선생님한테 칭찬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공부만 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애들은 인기가 없다. 그 애들은 너무 조용해서 수업시간에 종이접기를 도와달라고 해도 안도와주는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나보고 도와달라고 한다. 난 그냥 내가 아는 대로 가르쳐줄 뿐인데 친구들은 그럴 때마다 나보고 참 고맙다고 해서 신이 나서 더 잘 도와주고 싶다.

 

, 우리 선생님은 심부름시킬 때 다른 아이들은 안보내고 나만 보내신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믿기 때문에 보내신다고 하셨다. 북한에 있을 때도 선생님이 계셨지만 날 그렇게 예뻐하지는 않았는데 여기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날 예뻐해 주셔서 선생님이 너무 좋다. 그래서 난 나중에 커서 선생님 은혜에 꼭 보답하고 싶다.

 

그런데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선생님이 한 명 더 있다. 나는 엄마· 아빠가 공부를 하시기 때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 안계실 때가 많다. 우리 집은 나와 동생들을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되어서 학원에는 가지 않지만 그래도 난 외롭지가 않다. 왜냐하면 내 공부를 도와주는 자원봉사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자원봉사 선생님을 너무 고마워해 하신다.

 

자원봉사 선생님 집에 공부를 하러가면 선생님은 때로는 귤도 주고 고구마도 주고 맛있는 것을 많이 주시곤 한다. 공부까지 가르쳐 주시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는 선생님이 나는 참 좋다. 그래서 용돈을 모아 선생님께 필통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추석 때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선물로 주셨다. 어떨 때는 자원봉사 선생님이 우리 엄마·아빠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에 내가 눈이 많이 아팠는데 선생님은 아픈 나를 데리고 병원도 데려가고 약도 사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마운 선생님들 때문에 한국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북한동무 · 남한친구

 

북한에 살 때 우리 앞집에 '남일'이라는 친구가 살았다. 남일이 하고는 수업이 끝나면 잠자리도 같이 잡으러 다니고 겨울에는 눈사람도 만들면서 재미있게 놀았었는데 싸움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남일이 하고 나는 싸움을 해도 금방 사이가 좋아졌기 때문에 싸움을 많이 한 것 같지는 않다. 가끔 한국에서 학교친구와 싸운 뒤 화해를 못하고 있을 때는 북한에 있는 내 친구 남일이가 정말로 보고싶어진다. 지금은 북한에 있을 때보다 훨씬 싸움을 적게 하는데도 화해하는 것은 더 힘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친구하고 싸운 뒤에 내가 먼저 사과할 것이다.

 

지금 내가 남일이를 만난다면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법도 가르쳐주고 두 명이 타는 자전거도 같이 타고, 공책이랑 문구세트도 선물하고 싶다. 남일이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연필과 지우개를 보여 주면 아마 믿지 못할 것이다. 북한에는 이렇게 좋은 연필과 지우개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 있을 때 공책을 다쓴 뒤 버리지 않고 내용을 지우고 다시 사용했다고 말하면 여기 친구들은 믿지를 않는다. 난 그것이 참 이상하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는데도 친구들이 믿어주지를 않고 나를 거짓말쟁이로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북한이야기를 많이 안하고 싶다.

 

한국에 와서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지금은 하루도 결석을 안하지만, 북한에 있을 때 나는 정말로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부잣집 아이만 좋아해서 부잣집은 선생님이 직접 찾아가서 공부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또 학교 꾸미기에 필요한 못이나 페인트 같은 것을 가지고 오는 숙제를 받는 날이면 그 다음날은 무조건 결석을 하였다. 난 그런 때가 정말 싫었다. 한번은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가 준비물을 가져가지 못해 결석하고 창고지붕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그래도 공기도 좋고, 친구들과 같이 할 놀이도 많고 인심도 좋은 북한에 있을 때가 가끔은 생각이 난다.

 

한국에도 친구가 많다. 그런데 그 애들 중에는 좋은 친구도 있고 나쁜 친구도 있는 것 같다. 처음 한국에 와서 같은 교회도 다니고 정말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친구는 내게 전화를 해서 "이제 친구 그만 하자"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내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 친구 때문에 한국은 컴퓨터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은, 정말 좋은 나라이지만 마음이 못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다.

 

반면에 좋은 애들은 이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나에게는 한국에서 사귄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김샘, 박정용, 이정민, 김용현 이렇게 사총사다. 그중에서 나는 김샘이 짱 좋다. 샘이는 성격도 활발하고 현장학습 갈 때 내가 멀미가 나면 자기 어깨에 기대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 샘이는 북한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참 많다. 내가 다닌 학교와 북한에 있을 때 친했던 친구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샘이는 '친구'라는 말보다 '동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북한에 있던 남일이 얘기를 하면 "남일이 동무"를 보고싶다고 말한다. 가끔은 나중에 통일이 되면 샘이랑 남일이랑 소개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둘 다 착하고 성격이 잘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나, 남일이, 샘이 이렇게 셋이서 재미있게 놀았으면 좋겠다.

 

나의 다짐

 

엄마·아빠는 나한테 북한에서 온 것을 숨기지 말고 떳떳하게 행동하라고 얘기하시지만 그것은 정말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어느 날,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얼굴을 전혀 모르는 형이 와서는 "너 북한에서 왔지?"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지만 그 형은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막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때 이후부터는 제일 친한 친구들한테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한다. 어떤 때는 그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내가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할 때 그 때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얘기해도 놀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꿈은 앞으로 커서 의사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우리 외할아버지가 의사였고 또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 좋은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우리 외할아버지 같이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담임 선생님과 자원봉사 선생님의 은혜에 꼭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래서 앞으로 내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을 엄마·아빠, 선생님, 샘이, 남일이한테 다짐한다.

 

2004. 11 김새벽 씀

 

 

2005-01-27 12:22:4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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