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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북한청년들의 정신상태와 행동 - 푸른바다

작성년도 : 2006년 562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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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청년들의 정신상태와 행동

- 푸른바다

 

 

나는 이따금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고향을 떠나온 지는 1년도 넘지 않았지만 지금 나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 길지 않은 나날동안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외관적으로는 스타일이나 말씨 행동까지도 많이 변하여 전형적인 북한과 남한사람들의 중간 형태로써 즉 짬뽕이다. 스타일도 짬뽕이요, 말투도 짬뽕이요, 지금 완전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진화중이다.

 

지금의 내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보면서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종종 가져보군한다. 짧은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정장바지에 구두를 신고 스포츠가방을 둘러메고 떠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샤기컷이라고하는 새로운 헤어스타일에 왁스로 떡을 만들면서 찢어진 청바지에 목걸이를 걸고 다닌다.

 

내가 생각해봐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다. 과연 1년 전의 내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외관적으로 많이 변해버린 내 모습에 비해 정신 상태나 사고수준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참 이상하고 요지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스타일은 북한에 가면 또다시 한두 달 내로 고칠 수 있는 것이고 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살 수 있는 땅이라 어쩔 수가 없겠지만 세계관이나 객관적인 사고가 그대로 변하지 않은 것은 먼가 문제가 있는게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여기 한국에 첫발을 내디디고 새 삶을 시작했을 때의 방황을 잊을 수 없다. 자유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가 있을 것 같고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심에 충만해있던 나에게 이 사회는 너무도 냉혹한 경쟁시대를 보여주었고 나보다 까마득히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실망과 타락 자신심의 부족함을 심히 느꼈었다.

 

나는 이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고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 때문에 사실 지금도 방황하고 있다. 나는 과연 어떤 인간인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잘할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

 

결국 내 눈에 보이는 나의 모든 것은 모두가 결함으로 콤플렉스로 안겨와 사실상 나를 무력화시켰고 바보로 만들기에 충분했었다. 그러던 내가 종당에 생각하고 결심한 것이 일단 공부를 하자, 공부를 하면서 나의 앞길을 생각해보자 라는 간단하고 쉬운 결정이었다.

 

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마음도 편해졌고 그전과 같은 신경과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내가 확실히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냥 부닥치면서 살아가면서 하나하나 나를 찾아갈 것이다. 이것이 여기 처음 정착한 나만의 생활방식이기도하다.

 

처음 알 수 없는 외래어와 전부 영어로 장식된 네온사인에 정신이 없어 자그마한 슈퍼마켓가기도 부담스러웠었다. 그 무엇도 우리말로 쓰는 것이 거의 없었고 외래어와 영어로 나는 벙어리처럼 물건을 들고 카운터앞으로가서 그냥 내밀고 값도 물어보지 않고 오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그것도 살면서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공부는 둘째 치고 버스를 타거나 길거리를 걸을 때 가게들의 네온사인을 외우면서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 저건 패밀리마트 저건 바이더웨이 편의점 이런 식으로 빠짐없이 물건도 읽고 간판도 읽고 하니 조금씩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고 지금은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중이다.(사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면서 그냥 앉아있는...)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바로 나의 정신 상태이며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어떤 것이 어떻게 변하지 않았느냐 라고 구체적으로 묻는 다면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어떤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았는지 사회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하지 않았는지 나도 딱히 모르겠다. 그냥 변하지 않았다고밖엔 말할 수가 없는 나의 무식함에 다시 한 번 탄복하면서...

 

내가 살던 곳은 평양이었다. 주먹위주가 순위를 결정하는 소위 북한 놀새들의 무리에서 나는 친구들의 배경으로 늘 건방지게 살아왔었다. 골격표본을 자랑하는 날씬한 몸매에 나는 당시 주먹세계에서 알아주던 친구들의 덕분으로 당당하게 다닐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놀새들을 보면 분류가 있었는데 체육을 업으로 하면서 살아가는 스포츠맨들과 당시 장사를 하면서 고리대금이나 골동품장사를 하는 난봉꾼 애들, 대학가의 돈 많은 애들이 주류였다.

 

스포츠맨들은 주먹을 알아줬고 장사를 하는 애들은 입담을 알아줬으며 돈 많은 애들은 역시 돈을 알아줬다. 그때 상당히 유행되던 유머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난다.

 

물에 빠지면 주머니부터 뜬다.” 뭔소린고 하니 결국 돈이 기본이라는 말이다. 펄럭이는 건 기발이 아니고 지페이고 물에 빠지면 돈이 없는 주머니가 가벼워 그 어느 것보다도 먼저 떠오른다는 얘기로써 돈의 힘을 간단히 표현하는 말인 것이다. 결국 돈으로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뜻을 내포하고있는 것이다.

 

북한에는 은행에 돈을 맏길수가 없다. 강제 저금이란 것이 있어서 월급에서 매월 얼마씩 공제되는 게 있긴 하지만 그건 찾을수가 없는 것이다. 거기다 자신이 번 돈을 저금한다고 하면 그것은 강도에게 돈을 쥐어 주며 잠깐 봐달라고하는 식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옛날에 말하던 뒤울안 살구나무 밑의 오지단지에, 즉 개인금고를 집의 장롱이나 가구 밑에 숨겨놓고 든든히 자물쇠를 잠그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 아들놈들은 이것을 용서치 않고 술 마신 아버지가 취해서 잠든 다음 키를 찾아들고 금고습격전을 벌린다. 금고를 열면 달러가 어느 정도 쌓여있고 아버지는 내일아침 그걸 점검할 것이다. 그러면 아들놈의 호주머니에서 위조화폐가 나오고 결국 진짜와 가짜가 바뀌어 며칠 동안 호화식당과 여자애들을 달고 시내를 누빈다.

 

그러다 그것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 아들놈은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터지고 며칠 동안 벌을 선후에야 겨우 용서받으며 그 순간 금고의 키는 바뀌나 그것도 몇 달갈수가 없다. 도둑 한명을 10명장정이 못 지킨다는 얘기가 이래서 나온 소리가 아닐까?

 

그리고 사회생활이나 대학생활을 하는 애들과 군대에간 애들 간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는바 고등학교친구들도 몇 년 후 군에 갔다 온 친구들을 만나면 서먹서먹해지거나 결국 친구로써의 진정한의미를 상실할 때가 많다.

 

당시 우리또래아이들이 군대를 부르는 말이 상당히 엽기적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공산군이다. 인민군대를 우리는 공산군이라고 불렀고 군인들은 공산군 아저씨라고 불렀다. 또 군인이 많은 지방에서는 군인들을 토비또는 공비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즉 도둑질과 강도질을 잘해서 붙은 애명이라 보겠다. 그러나 이들도 어쩔수 없는 일,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그 길밖엔 없는 것을...

 

또 당시의 패션도 상당히 웃긴 거라 말하지않을수가 없다. 그때 가장유행이었던 드라마가 가을동화, 겨울연가였다. 여자아이들은 그때 송승헌이나 배용준을 매력투성이라고 불렀으며 당시 영상앨범들도 많이들어와 그것을 보는 게 사회적 풍조로 되었다.

 

또 서울말씨가 유행으로 번져져 전화를 걸면 상당히 이상한 억양(너무도 짬봉이라서 상당히 듣기가 부담스러운)이 많이들렸다. 당시 액션영화를 좋아하던 남자애들도 친구들끼리 모여앉아 며칠 밤을 새면서 드라마를 볼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과히 하늘을 찔렀다.

 

친구의 생일이나 모임때 북한노래는 거의 듣을수가 없었으며 남한의 발라드나 트로트가 널리 애창됐다. 그때당시 나도 애모, 존재의 이유등 여러 가지 남한노래를 불렀으며 지금도 즐겨듣는다. (그러나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죽어도 안 부른다. 불렀다간 순간에 촌스러움의 극치가 되기에...)

 

또 패션도 근사하게 유행되어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이 입었던 외투스타일이 유행으로 되어 수많은 부모님들의 돈을 앗아갔다. 여자애들은 달라붙는 쫄바지를 입고 다녔고 생머리를 하고 싶어 난리도 아니었다.

 

그에 발맞춰 단속대가 조직됐는데 이들은 9시부터 6시까지 길거리단속을 다녔다. 당시 청년동맹에있던 나는 그런 여자애들이 잡혀오면 간단히 대화하고 강제노동을 보내는 일을 맞고 있었는데 참 웃긴 건 나도 그 드라마나 노래를 부르고 내위에 상급들도 거의 같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여자애들에게 목걸이 귀걸이를 회수하고 쫄바지를 입은 채 진흙탕에서 일하게 만드는 그일은 내게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자칫하면 사회적인 내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나는 며칠 후 그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단속에 따른 대응법도 생겨 여자애들은 9시전에 출근했다가 6시 이후에야 퇴근길에 오르군했었다. 매직을 하고 싶어 엄청 안달을 떨던 여동생을 보며 약을 올리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하고싶어하는 그 모든 행동이 멋있고 세련되어 보이는 건 나도 마찬가지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긴 외투에 가방을 메고 눈 오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내모습을 상상하며 실없는 웃음을 짓기도 하던 그때였다.

 

생활총화시간이라고 하는 자아비판의 날 인 경우 뚱땡이로 넘기고 말씀전달이라고 하는 김정일의 개소리를 읽어주는 시간이면 턱방아를 찧는 건 모두 내 나이또래 젊은 애들이었다. 거기에 30대 후반까지도 속하기는 한다.

 

야회가 열리는 밤이면 감기에 걸려 열이 불덩이처럼 나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고 “6.25미제 반대투쟁의 날과 같은 집회를 하는 날이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나가는 애들이 바로 젊은이들이었다.

 

앞에서는 장백산 줄기줄기(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고 뒤에서는 당신은 나의 남자여(애모)”를 부르는 아이들이 바로 우리들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우리뿐이 아니었다. 남한노래를 부른다고 늘 나를 탓하시던 우리 아빠도 사실 애모이 노래를 엄청 좋아하셨다. 결국 딱딱하고 격식화되고 강요적인 사상교육도 이제는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감성적으로 살기를 원했고 자기개성을 연출하며 자유스럽게 살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회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고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됐고 자기들을 억압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표출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모든 공포와 가난의 주범이라는 것을 모를 뿐 이 세상에 자기들이 살고 있는 북한과 같은 나라가 더는 없다는 것을 모를 뿐 진정한 자유와 민주가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 자기들이 얼마나 개돼지보다 못한 구속에서 사는지 세뇌된 교육으로 인하여 자기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장애화가 됐는지 모를 뿐 이들은 자유와 개성을 바라고 있으며 또 하나하나 자기도 모르게 실천해가고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면서 아직도 김정일의 건강을 바란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김정일을 우러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그 지옥 같은 세상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실과 결여된 모든 거짓에 속아 고통스러운 생활을 강요당하는 그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움을 금할수가없다.

 

또 이렇게 말로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처지가 한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기의 발밑에 얼마나 거대하고 무서운 반항이 잠재해있는지 모르고 있다. 이들이 진실을 알고 자유를 알고 민주를 알게 된다면 그 힘은 실로 강할 것이며 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결코 그들이 무맥하고 무지해서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혁명을 몰라서 그렇게 앉아서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세뇌된 교육과 공포정치로 인하여 지금껏 유지되오고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 그 말로는 실로 얼마남지 않았다.

 

모두가 북한이 어떤 곳인지 바로 알 필요가 있다. 그 땅을 보면서 자유과 인권이 얼마나 귀중한지 또 어떻게 지켜야할지 새삼스러운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도 있다. 다시 우리에게 그런 세상은 오지않을 것이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려는 김정일의 발악을 수수방관할 수도 없다.

 

우리가 친북세력을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북한과 같은 세상을 만들려는 김정일의 생각에 동조하는 그들의 행동이 분하고 원통해서이다. 지금껏 굶어죽고 맞아죽고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이 우리를 보고있는것 같아서이다.

 

북한을 바로알자! 그리고 절대로 그런 세상이 올 수 없도록 노력하자!

 

2006825일 푸른바다

 

 

2006-08-29 15:39:29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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