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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나도 이제 할 수 있어요 - 서지영

작성년도 : 2005년 58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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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제 할 수 있어요

- 서지영

 

 

나는 올해 26살의 새내기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이 26살에 새내기라면 무언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지금 새내기의 풋풋함을 간직한 채 대한민국에 대한 호기심과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갖고 도전하는 탈북자이다.

 

그 누구처럼 큰 성공을 이룬 사업가도 아니고 남 앞에 내세울만한 학벌이나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서 높은 직책에 있었던 중요 인물도 아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탈북자에 지나지 않지만 소박한 꿈에 도전하는 한 사람으로서 감히 이 글을 쓰고자 한다.

 

홀로서기

 

탈북자라면 모두가 공감하고 느끼는 점이겠지만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장벽과 사회와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남몰래 눈물 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우선 무엇인가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지 않고선 홀로 서기가 힘들다는 생각에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생소한 컴퓨터 용어는 나로서는 넘기 힘든 산이었다. ‘여기서 그만둘까?’라는 생각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든 나로서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마저도 들었다.

 

내가 왜 이럴까? 한국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누구를 탓 할 문제가 아니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나태함이 문제였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타성에 젖어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찾았던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하듯이 지난 시간의 힘들었던 기억과 나의 각오는 점차 희미해져갔고 나태해져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렸다. 2개월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각오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노력끝에 자격증을 취득하였는데,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무슨 대단한 자격증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단순한 자격증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 자격증은 나도 대한민국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지금의 내가 설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방인 아닌 이방인의 슬픔

 

북한과 달리 대한민국은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본인의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내가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혹은 가더라도 대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당장 내년에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니 설레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도 북한에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대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민국 정부와 대학에 마음속 깊이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는 내 인생의 크나 큰 행운이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경제적 난관에 부딪히다 보니 공부보다 일용직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취업을 못해 실업자가 많다보니 우리 같은 탈북자들이 취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북한의 억센 사투리를 쓰다보니 항상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회사 내에서도 직원들과의 융화가 어렵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다보면 다른 직원들과 손님들의 핀잔은 기본이고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낼 때면 삶의 의욕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을 견디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는 탈북자들의 한을 그 누가 알아줄 것인가? 이렇게 언어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동료들을 볼 때면 갑갑한 심정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10여년을 성실히 생활하고 있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나의 경험은 정말 보잘 것 없지만 새출발 하는 동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엄격히 통제된 북한에서 생활하다 보니 규정된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탈북자들이 많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다. 한번에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을 버리고 북한사람 특유의 고질병인 급한 성격부터 바꿔야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 문화를 익혀야한다. 그리고 한가지 더, 우리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깨달아야한다.

 

우리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에서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완전한 자유란 없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 질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임을 깨달아야한다.

 

또한 북한을 떠나 힘들게 3국을 떠돌며 가슴 조린 세월 속에서 찌들어버린 몸과 마음을 달래야한다. 그리고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길만이 값진 삶이라 생각한다.

 

이 시대가 낳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분단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해서는 탈북자들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꿈은 이루어질 것이니 항상 도전하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나 자신도 스스로를 채찍질 해본다.

 

200511월 서지영

 

 

2005-12-19 10:06:18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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