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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어느 한 아줌마의 정착이야기 - 이영희

작성년도 : 2005년 55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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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아줌마의 정착이야기

- 이영희

 

 

나만의 착각

 

2년전 어느 겨울, 나는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칼바람이 부는 중국과 몽골의 국경을 필사적으로 넘어 한국행을 성취하였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달프고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든 역경과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등에 업힌 내 아이만큼은 이 못난 어미와는 달리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보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땅만 밟으면 < 인생 만세 ! > < 인생 역전 ! > 이 되는 줄 알았다.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내 눈에 비춰진 대한민국의 발전상은 상상 이상이었고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중국 보다 생활수준이 월등히 높으니 한국에만 가면 국가에서 모든 것을 보장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하나원 수료후 대한민국은 < 인생 만세 ! > < 인생 역전 ! > 은 고사하고 나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주었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번듯한 직장은 둘째 치더라도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내가 이러려고 이 고생을 해서 한국에 온 게 아닌데

 

한국 아줌마의 힘

 

아기를 껴안은채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아기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아기를 볼 면목도 없었다. 못난 나 자신을 한없이 탓하였다.

 

하는 일없이 집에서 지내다보니 생활비는 점점 떨어져갔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이대로 지내다가 두 모녀가 굶어죽기란 시간문제였다.

 

우선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무작정 일자리를 찾아 서울시내로 나갔다. 아직 대한민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나로서는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고 힘이 들었다. 지금까지 30여년간 살아온 북한땅과는 모든 것이 너무나 달랐다.

 

북한에서는 모든 일을 국가에서 결정하다 보니 본인의 생각과 의사는 안중에도 없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당에서 지정해주는 직장에 나가면 되지만 이곳은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는 사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생각과 의지는 뒤로한 채 항상 국가와 당의 명령에 의해 순종적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부딪혀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일궈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힘들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이국땅 아닌 이국땅에서 홀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들었다. 무엇보다 갓난아기를 돌보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자 하였지만 그러한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에 무슨 일이든 일자리를 구하는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조건을 달아가며 일자리를 구할 처지가 못되었기 때문이다.

 

핏덩이 같은 아기를 등에 업고 아침에는 신문과 우유 배달, 낮에는 틈틈이 전단지 배포 등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였다.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아이 하나 업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한 아줌마의 삶의 의지에 하늘도 감탄했는지 여기저기서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인간적인 면도 없이 살아가는 줄만 알았다.

 

북한에서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 한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을때 이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기에 무슨 의도로 나에게 접근하나 하는 거부감마저 들었다. 자원봉사라니 당장에 먹고살기도 힘든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차츰차츰 한국사회를 이해하면서 북한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분명 유일사상에 젖어 획일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북한과는 다른 사회다.

 

워낙에 다양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다 보니 지난 2년 동안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돈이 많다고 해서 없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 권력이 있다고 해서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하염없이 자신을 낮추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 특별히 가진 것은 없지만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

 

뉴스나 신문에는 좋은 소식보다는 항상 사건, 사고로 지면을 장식하고 각종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 그러한 사회가 바로 내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내가 아직까지 한국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측면에서 비롯된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해하고자 해도 이해 못한 나라 대한민국, 나에게 대한민국은 꿈과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이기도 하다.

 

검침원 아줌마

 

지난 2년의 시간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안정된 직장과 구청에서 마련해 준 따뜻한 보금자리를 얻어 아들과 함께 그전보다는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3살이 되는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놀이방의 귀염둥이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올해에는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도전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과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한번 더 도전해 볼 생각이다.

 

힘들고 지쳐 점차 나약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지난 삶을 되돌아보곤 한다.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분명 내가 선택한 한국행에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200512월 이영희

 

 

2005-12-27 13:09:34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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