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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이제부터 시작이다

작성년도 : 2014년 90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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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2009년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던 대한민국의 자영업자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22.6%까지 떨어졌고 그중 2011년까지 36%를 차지하고 있던 40대 사장님의 숫자도 2013년 기준으로 32.6%대까지 줄어들었다. 대형마트가 골목까지 파고들고 사방에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영업점이 한집건너 자리 잡고 있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속에 하루에 10개의 사업체가 망하고 10개가 새로 생긴다고 할 정도로 경쟁력이 없이는 그야말로 살아남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 역시 현실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힘에 벅찬 개인 사업체를 차리고 끈기와 열정 하나로 버티는 많은 탈북자 사장님들이 있다.

이현철 씨도 그런 사람들중 한 사람이다.

아파트단지 입구의 18평 남짓한 가게에서 만 5년 째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퇴근시간은 밤 12.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16시간동안을 그의 부부는 교대로 직접 가게를 운영한다.

자그마한 가게에서 취급하는 품목은 무려 1,000여 가지. 요즘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가게와 다른 점을 꼽는다면 있다면 구태어 영업실적이나 물품 가격에 연연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품선택과 구입, 진열에 이르기까지 동네 주민들의 입맛에 맞게 다양한 방법으로 편하게 차려놓았다.

가게를 운영한 지 만 5년이 되어오는 지금에야 비로써사업이란 이런 거구나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이다.

2006년에 대한민국에 입국한 그의 고향은 함북 온성이지만 국군포로인 그의 아버지의 본적은 경남 함양이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간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탄광에서 고생하다가 끝내 고향에도 못가고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2000년대에 들어와 주변에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이현철 씨도 알고 지내던 중국쪽 지인을 통해 남쪽의 삼촌과 친척을 수소문하게 되었다.

TV와 라디오를 통해 북한상황을 눈여겨보던 삼촌과 가족들은 당시 중국 돈으로 4000원이라는 큰돈을 보내주었고 현철 씨가 먼저 북한을 떠난 후 20일후에는 아내와 두 아들도 무사히 탈북 하는데 성공했다.

중국에서 탈북자 6명과 함께 일명 바나나보트라고 하는 배에 올라 만 4시간을 달려 태국에 도착하여 태국 이민 수용소에서 3개월을 지내고 200511월 북한을 떠난 지 9개월 만에 가족과 함께 서울에 정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삼촌을 비롯한 친척들은 그들에게 부모를 대신한 든든한 버팀목이고 가족이상이다.

현철 씨에게는 큰 욕심이 없었다. 다만 지난 시기 북한에서 아버지의 죄 아닌 죄로 당한 억울함과 고통을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게 된 것에 한 없이 감사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그 생각뿐이었다.

3년 동안은 노가다 판을 전전했다.

곁에서 아직 젊은 데 대학도 가고 좀 더 확실한 직업에 도전해야 하지 않겠냐고 건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40대 초반에 들어선 그는 나름대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6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 때문에 당하는 형들의 억울함을 수없이 보면서 자란 그는 오직 자기 자식들의 미래를 위하여 자신은 희생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미용실에서 현철 씨 본인은 사우나 건설현장에서 등짐을 지기도 하고 불가마사우나에서 하루 10여 시간씩 참나무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받는 돈은 사실 얼마 도지 않았다.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그런 직업은 사실 노동력부족 상태였지만 현철 씨처럼 평생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평생 직업으로서는 뭔가 2%가 부족한 일이었다.

부부는 며칠, 몇 밤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드디어 가게를 내자는 데 동의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담력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보편적으로 거치는 부동산중개업소도 무시하고 직접 인터넷과 신문으로 지금의 가게를 찾았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더욱 몰랐다.

빌딩을 뒤덮은 간판세상 속에 자기의 가게 간판을 내걸었을 때야 현실이 직시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있었을까?

북한식으로 말하면 기차는 이미 떠났고 종착점은 기관사인 자신이 스스로 정해야 했다.

일부 탈북자들은 정착을 위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드러낸다고 하는데 이현철 씨는 반대의 경우다.

요즘도 백화점이나 동네 마트에 혹시 들를 때면 예쁜 목소리에 친절하게 인사하는 직원들을 대하면서 저도 모르게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고 한다.

40여 년을 투박한 북방사투리에 막일을 하다 보니 은근히 외모에 신경이 씌어 손님을 대할 때도 편치 만은 않다고 한다.

현철 씨 가게가 있는 곳은 특히 사방 2km안팎으로 이마트, 홈플러스, 세이 브존과 롯데마트와 같은 대형매장이 밀집되어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현철 씨 가게에 들르는 고객은 대량물품구입은 대형마트서 하고 혹 잊어버린 한 두 개의 물품을 구입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란다.

그것도 평일에는 가물에 콩 나물 나듯 하고 주말이 되어야 약간 손님구경을 할 수 있다.

현철 씨는 지금 상황에서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다른 일도 아닌 서비스업 관련 분야 창업을 하는 탈북자들은 반드시 필요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고 싶단다.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동네가게서 가장 많이 나가는 품목 중 하나가 주류와 담배와 애들 간식 같은 거다.

하루는 한 손님이 들어오더니 느닷없이 팬티가 없냐?”고 물었단다. 24시 편의점 같은 데는 스타킹이나 팬티 같은 것도 혹시 진열되지만 현철 씨네 같은 동내슈퍼는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다.

망설임 없이 우리 가게는 그런 물건 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의 여운이 채 사라도 지기 전에 손님의 약간 불만스런 목소리가 울렸다.

여기 있잖아요!”

손님이 들고 온 것은 팬티가 아니라 ‘PANTENE'(팬틴)라고 하는 샴푸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금은 확실하게 골라줄 수 있지만 북한에서도 익숙했던 말보루란 담배도 한 가지가 아니라 터치, 블랙, 화이트, 미디엄, 레드 등 종류만 수십 가지고 거기다 국산담배는 그 종류가 기가 막히게 다양했다.

현철 씨 가게에는 다른 가게와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노트북이다.

영업에 대한 별다른 준비가 없이 가게를 오픈한 현철 씨가 가장 의지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 현철 씨는 지금 와서 보니 자기 같은 성격엔 서비스업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일단 시작한 거니까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관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인터넷이고 궁금한 건 하나부터 열까지 노트북으로 검색한다.

오기 하나로 시작한 가게가 다음 달이면 만 5년차에 접어든다.

첫해에는 경험부족으로 천만 원 가까운 손해도 봤지만 여기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학습비정도로 생각한단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자기 사업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버텨 한 달에 100만원씩 하는 월세를 빼고도 국민연금 가입하고 저축도 하고 두 아들 유학비 대고.

아직까지는 가게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OO입니다.”라는 몇마디 인사만 건네지만 엄청난 발전이라고 쑥스러워 하는 현철 씨.

그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새롭게 사업을 준비하는 후배들, 특히 서비스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좀 더 확실한 창업 준비와 함께 언어교육을 필수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건의한다.

남들은 3~4년을 준비해서 가게를 오픈하다지만 현철 씨는 무작정 사업부터 시작하고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것은 모험이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행운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날이 갈수록 더욱 과학화, 세분화되어가고 있는 사업은 욕심 하나로 되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조언도 하고 싶단다.

앉아서 편하게 가져다주는 물건을 받을 수 도 있지만 아침 첫 시간에 도매시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떼 오면서 이윤보다는 훈훈한 인심으로 사업을 키워가는 이현철 씨.

12시가 되어 퇴근길에 오르면서도 혹시 더 늦게 가게를 찾는 손님이 있을 가 봐 항상 미안하다는 그의 진심이 더 번창할 가게의 앞날을 그려보게 한다.

201411

 

 

2014-12-05 15:21:5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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