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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잇몸에 대한 이야기

작성년도 : 2005년 68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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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에 대한 이야기

- 김성민

 

 

잇몸에 대한 이야기다. 치과의와 상담을 해 보니 잇몸병은 누구나 생길 수 있는 질환으로 본인이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부터, 심한 통증을 느끼는 경우까지 다양한 증상을 가지고 있는 병이란다. 발병 원인은 국소적 원인과 전신적 원인으로 분류되고, 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데 치아에 달라붙은 세균성 치석이 잇몸병을 일으키는 국소적 요인이라면 단백질, 비타민 등의 영양 결핍은 잇몸병을 일으키는 전신적 요인으로 작용한단다.

 

말이 좀 어려워서 직설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하는 이야기가 "양치질을 잘 하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요"하고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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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질을 하지 않아서라...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잇몸병은 양치질을 제때에 못해서 생긴 병 같지가 않다는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나의 어머니는 소금물에라도 양치질은 꼭 꼭 해야 한다며 선잠 든 나를 흔들어 깨우기가 일쑤였다.

 

칫솔이라고는 몽당비자루처럼 닳아빠졌고 치약을 대신한 것은 왕소금 몇 알이였지만 그래도 칫솔질만큼은 부지런히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가지런하고 새하얀 이발을 자랑으로 여겨왔던 바다.그렇게 자라서 열 아홉 살이 되던 해였다.

 

그러니까 군에 입대한지 2년이 되던 때였는데 체중이 48키로 밖에 안나가던 조선인민군전사는 열 하루째 계속되는 천리행군 도중에 덜커덕 쓰러져 버렸다. 도대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를 보고 분대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소리가 "꾀병을 그만 부리라"는 것이었다.

 

꾀병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병원으로 실려간 나는 영양실조라는 어이없는 진단을 받고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열흘 간을 침대에서 뒹굴다가 이제 막 퇴원하려는 날이였다. 갑자기 입안이 후끈 후끈 달아오르면서 어디라고 딱 찍어 말할 수 없는 아픔이 몸 전체를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눈알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고 머리끝에서 허리뼈가 끝나는 곳까지 송곳으로 마구 찔러 대는 듯한 아픔이 수시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퇴원수속까지 밟아놓은 사람을 돌보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퇴원하게 되니까 엉뚱한 곳을 가리키면서 아프다고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베갯잇 사이로 흘러들었다. 억울했다. 슬펐다. 피가 솟구치도록 입술을 베여 물고 신음소리를 씹어 삼켰다.

 

그렇게 온 밤을 꼬박 지새고 나서 남들이 보기 전에 병원을 빠져나오려고 서두르던 전사, 칫솔을 들고 세면장의 거울 앞에 선 전사는 너무도 달라진 자신의 모습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밤사이 볼이 푹 꺼지고 십리 밖으로 기어 들어간 두 눈 사이에 주먹만한 코가 덩그렇게 솟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으악-소리를 낼만큼 놀라운 모습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였다.밤새 아팠으니까...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버릇처럼 칫솔질을 시작하려는데 아픔과 함께 하는 섬찍한 느낌이 입안에서 물쿠덕 거리는 것이었다. 침을 뱉어보았다.

 

시커멓게 죽은 피가 덩어리로 튀어나온다. 반쯤 깨어진 세면장의 거울 앞에 또 다시 다가가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했더니!!! 잇몸이 내려앉은 사이로 이뿌리 전체가 훌러덩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가. 덜지도 더하지도 않은 그때의 심정 그대로라면 백주에 물이 질퍽한 해골을 빤히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기겁을 해서 눈길을 돌렸다가 설마 그럴까 하는 심정으로 깨여진 거울 앞에 다시 서야했던 그 억하심정...

 

''''''''''''''

그때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나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난 치과의의 말에 따르면 전신적 요인에 의한 잇몸병이 바로 그것이란다. 비타민 결핍, 단백질 부족, 필수 분배 양에 못 미치는 호르몬 결핍... 또다시 알아듣기 어려운 의학용어가 난무하는 바람에 이마 살을 찌푸렸다.

"잘 만큼 자지 못하고 먹을 만큼 먹지 못하면 그런 병이 생긴다는 소리지" 역시 퉁명스럽게 내뱉는 이야기이지만 끝 부분만큼은 다분하게 젖어있던 목소리... 그날 이후로 헛된 몸부림 하나가 사라져버렸다.

 

남들 앞에서 잇몸을 보이지 않으려던 필사의 그 몸부림. 세상의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조차 보이기를 꺼려하던 아픈 과거의 역력한 흔적.

 

동질성 확인이랄까. 그때부터 친구들의 잇몸을 유심히 살펴보는 특이한 버릇이 나에게 생겼고 이빨을 사려 무는 친구들은 자꾸만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512월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2005-12-13 13:40:2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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