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황해제철소에서는 - 정철민
본문
그날 황해제철소에서는
- 정철민
나는 얼마 전에 탈북하여 대한민국에 온 정철민이다. 내가 나서 자란 곳은 여기 서울에서 얼마 멀지도 않은 황해북도 송림시이다. 송림을 생각 할 때면 나는 내가 나서 자란 고향이라는 애틋한 정에 앞서 몸서리치는 추억이 먼저 상기되곤 한다.
새벽 정적을 찢은 탱크의 굉음
1998년 2월 말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새벽 정적을 깨뜨리며 탱크의 무서운 굉음이 송림시 거리를 발기발기 찢었다. 그 전날 식량을 구하러 갔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탱크와 장갑차들이 수도 없이 도로를 메우고 몰려들고 있었다. 전쟁이다. 그토록 전쟁 전쟁하더니 드디어 일어났구나.
처음 한 순간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지겹게도 연습을 하였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우선 비상용품이 든 배낭과 목총부터 메고 직장으로 달려나가야겠지. 아니 그 보다는 먼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해.어떻게 생각하면 조금은 기쁘기까지 하였다.
더는 식량을 구하러 농촌으로 어촌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 분명하였으니까. 아무튼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다급해 졌다. 그러나 우선은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여기저기서도 창문이 열리고 놀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탱크와 장갑차 대열이 집 앞까지 다가왔다. 철갑모를 쓰고 총창까지 비껴 든 군인들 모두가 하나같이 살기 띤 얼굴들이었다.
장갑차에 건 기관총들은 금시라도 불을 토할 듯 누런 탄띠가 뱀처럼 물려있었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전쟁이 일어났으면 이 군인들이 북에서 남으로 나가야 하겠는데 남에서 북으로 쳐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게 도대체 웬 일인가 혹시 미군이나 남조선 군대가 인민군대로 가장하고 쳐들어오는 것은 아닌가. 가슴이 섬짓했다.
하지만 분명히 미군도 남조선군대도 아닌 빼빼마른 인민군대들이었다. 아무튼 눈알까지 노랗다는 미군도 남조선 군대도 아닌데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들이 만약 미군이나 남조선 군대라면 무고한 인민들도 마구 학살한다는데 적어도 작업반 부반장인 나를 그냥 살려 둘리는 없으니까. 다행이 눈알까지 노랗다는 미군도 남조선 군대도 아닌 인민군대여서 우선은 마음이 놓였다.
노인네들도 젊은이도 아이들도 눈을 비비며 도로에 달려나갔다. 무슨 굉장한 구경거리나 생긴 것처럼. 그런데 그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중무장을 하고 쳐들어오는 것인지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훈련이라도 하는 것인가? 분명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군인들이 훈련하는 모습은 많이 보아왔어도 그렇게 실탄까지 장전하고 훈련하는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니까.
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좀 색다른 것을 알아차리고 두려움에 젖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거리는 개미 한 마리 없이 조용해졌다. 그 이상한 정적 속으로 우리 군대라고 생각했던 인민군대가 중무장을 한 채 적에게 쳐들어가듯 시내를 점령해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령군은 송림시 한가운데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황주, 강남, 오류동으로 통한 찻길, 뱃길을 모조리 막아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정전 때문에 방송조차 들을 길이 없었다. 혹시 어디서 반혁명 군사정변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송림시민들은 들어라!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방송차가 시내 곳곳을 질주하며 갈린 목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했다."시민들은 들으라! 모든 시민들은 이제부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철산광장에 모여야 한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광장에 나갔다. 광장 입구며 산등성이며 주석단(내빈석) 둘레에까지 벌써 완전 중무장한 군인들이 탱크포와 기관총을 걸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알지 못할 불안으로 가슴 떨며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전투복 차림에 음침한 얼굴을 한 인민군 대좌 한 사람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송림시민들은 들어라. 이제부터 황해제철소에서 석탄 한 배낭, 못 한 개라도 훔쳐 간 사람은 모두 자수하라. 1주일간 시간을 주겠다. 그 안에 자수하지 않으면 그 대상이 누구든 관계없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별로 크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수 없이 많이 모인 군중들 제일 뒤에 선 사람까지 모두 얼어붙게 하는 목소리였다. 갑자기 다리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이건 전쟁도 반혁명 군사정변도 아닌 인민들을 상대한 계엄령이었다.
당시 황해제철소는 이미 생산이 멎은지 오래 되었다. 1994년 김일성의 죽음과 때를 맞춰 서서히 멎기 시작하던 굴지의 야금기지 황해제철소가 96∼97년부터는 완전히 멎어버린 것이었다. 원인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은 원료가 공급되지 않았다. 황해 제철소의 주원료인 철광석은 은률광산과 재령광산에서 받는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광석을 캘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콕스탄 공급도 중단되었다.
그 때까지 콕스탄은 중국에서 수입하였는데 그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더는 콕스탄을 대치물자(거의 무료)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도 공급되지 않았다. 여러 해째 계속되는 가뭄 때문에 수자원도 줄었지 석탄생산까지 제대로 되지 않아 화력발전이 평상시의 삼분의 일로 줄어든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김일성 김정일 별장에도 겨우 전기를 공급하는 형편에 철을 생산하라고 제철소에 전기를 보내 줄 리는 만무하였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식량공급도 완전히 중단된지 오래였다. 그러니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철을 생산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슬금슬금 제철소의 설비와 자재를 뜯어내 팔아먹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은 제철소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배가 고프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한때 강철고지라고 불리던 또 하나의 1211고지(6·25때 인민군들이 많은 사상자를 내며 지키려고 했던 고지)라고 하여 밤낮으로 철을 생산하던 대야금기지가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철의 무덤이 되고 만 것이다.
황해제철소를 자동화의 본보기로 만든답시고 나라 지도자라는 사람이 직접 자기 집에서 쓰던 것을 떼어다 설치했다는 자동카메라도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런데 그 황해제철소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석탄 한 배낭, 못 한 개 가져간 사람도 모두 자수하라고? 한 주일 시간을 주겠으니 그 기간에 자수하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기가 막혔다.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나라 최고 지도자라는 사람의 여동생 김경희가 불시에 왔다 간 생각이 났다.
참으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온다는 소문도 없이 갑자기 왔다가 갈 때에도 올 때처럼 갑자기 가 버렸다. 와서 무엇을 하고 갔는지는 모른다. 다만 불이 꺼진지 오랜 철의 무덤 황해제철소를 한 번 돌아보고 갔다는 소문이 돌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이런 미친 돌개바람을 몰고 왔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밖에 다른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굶주리는 인민들에게 식량을 준 것이 죄인가.
아무튼 완전 전투 복장을 한 인민군 대좌가 사형 선고하듯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 다음부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최종 선고에는 틀림없이 한 주일이라 해 놓았는데 괴이한 일들은 그 날 밤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날 밤으로 송림시 당 선전부장, 송림시 안전부장, 관개관리소장 등 5명이 체포되어 갔다. 장날 아침 무렵에 첫 총성이 송림시 골 안을 울리었다. 그들이 총살당한 것이다.
이날부터 거의 매일 하루 평균 5∼7명씩 총살당하였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신계, 곡산, 린산, 연탄 등 심심산골 오지로 추방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사람들 모두가 남조선 간첩과 연관이 있어서 총살한다고 했다. 그 때 송림시에서는 식량공급이 끊어지면서 고철을 모아 신의주에 가서 중국에 넘기고 얼마간의 통강냉이와 밀가루를 바꿔다 주민들에게 공급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남조선 간첩이 끼어 들어 황해제철소가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설비들을 훼손시키도록 의식적으로 조장하였고 그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거기 놀아났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황해제철소가 멎은 것은 남조선 간첩의 손에 놀아난 그 사람들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경희가 황해제철소에 왔다 간 것은 그 얼마전 일이지만 가동이 멎은지는 그 보다 훨씬 오래 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첨꾼들의 말만 믿고 계속 잘 돌아가는 줄 알고 있다가 나와 보니 멎어있자 이건 분명 간첩의 작간이라고 판단한 사람 때문에 이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말이 나가지 않았다. 아무튼 그 무분별한 판단 때문에 간첩집단을 색출하고, 황해제철소 정상가동을 보장한다고 인민군 탱크부대까지 들이밀고, 사람들의 머리위에 총살의 검은 돌개바람을 몰고 온 것이다.
그 후에도 살인적인 고문과 총살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그때 조사실로 사용하였던 낡은 2층 여관에서는 밤낮으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멎을 날이 없었다. 그 과정에 고문을 당하다 죽은 사람만도 십 여명에 달한다고 했다. 심지어 어쩌다가 점 한 번 봐준 사람, 신수 한번 봐준 사람 등 관상쟁이들까지 조사대상으로 끌려가 무참하게 죽어 나왔다.
참으로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쳐 진다. 사실대로 말해서 굶고 있는 인민들한테 얼마간이라도 식량을 주려고 고철을 모아다가 통강냉이 밀가루를 바꿔다 준 사람이 잘 못인가. 그 과정에 남조선 간첩이 끼여 있었다고 해도 아무튼 그 사람들이 가져다 준 식량을 가지고 얼마간이라도 송림 사람들이 고픈 배를 달랜 것을 사실이 아닌가.
정말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만 든다. 그런 것을 문제삼아 총살까지 한다면 남조선 최고 높은 대통령을 만나고 그로부터 엄청난 돈까지 받아먹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2003년 10월 정철민 탈북자동지회 회보 "탈북자들" 2003년 10월 호
2004-11-19 20:53:39
출처 : 탈북자동지회
댓글목록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