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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나라 없는 백성 - 조일훈

작성년도 : 2003년 53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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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백성

- 조일훈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참으로 좋은 지난 4월이었다.

메이커 캐주얼 복장에 가방을 메고 인천발 중국 심양행 비행기에 오르니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있는가. (북한) 쪽에서 보낸 세월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 건너 와서 조차도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 비행기인데 오늘은 내가 타고 중국으로 가는 것이다.

 

누가 어쩌는 것도 아닌데 공연히 어깨도 세워보고 나한테 이런 여행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마냥 바지랑 거리는데 마땅히 알아줄 사람이 없는 것이 서운하다.

심양 국제비행장에 내리니 멀리서 들리는 싸구려 장사꾼들이 악쓰는 소리가 오히려 정겹기만 하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떡이며 과일이며 군 닭, 군 오리...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런 것쯤 거들떠볼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를 잔뜩 내말고 폼잡아 걷는데 저만치 택시 기사 한 사람이 게으른 하품을 하며 내 쪽을 본다. 까닥까닥 손목을 저어 그를 불렀다.

"어이 아저씨 나 무순에 가자고 그러는데 갈 수 있겠어?" 얼마 전까지만도 구르든 게 그 바닥인데 그 쯤한 말은 얼마든지 중국말로 번지고도 남으련만 우정 서울말 억양까지 흉내내며 거드름을 부려 본다.

 

"우순나? 호라 쌍처."

 

택시기사 대번에 눈이 커지며 차 문까지 열어 줬다. 아 얼마나 천대받고 멸시받던 그 바닥이던가. 내가 잡혀 개처럼 끌려갔던 곳이 서탑이니까 저 쪽 어디쯤 되겠지. 하지만 난 오늘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그 더럽고 천대만 받던 탈북자가 일년 남아 기거했던 곳으로 가는 것이다. 마치 항일투사 박영순이 전적지 탑사를 가는 것처럼.

 

택시는 여러 시간 달려 무순시에서 얼마 떨어진 싼마툰(가명)이란 곳에 멎었다. 마침 해질녘이라 밭일 나갔던 농민들이 주섬주섬 돌아오는 모습이 보이였다. 고즈넉한 저녁 햇살을 타고 마을 중심에 새로 큰 벽돌집이 들어선 것도 보이었다. 거기서 사람의 간을 녹일 듯한 중국 유행가가 흘러나오는데 간판에 쓰인 글 첫 자는 나무 목자이지만 그 다음 글자는 원래 한문지식이 얕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젠장 목단정쯤 이라고 해 두지. 이런 궁벽한 곳에 술집까지 들어서다니.

혼자 중얼거리며 마을에 들어서는데 누군가 유심히 나를 보며 마주 오는 사람이 있었다. 왕촌장이었다. 수수떡 같은 얼굴에 팥알 눈만 반들거리던 그 마을 촌장, 나의 옛 주인 왕촌장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왕촌장 아니십니까?"

별로 내킨 것은 아니었지만 알은 체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야 니스 쉐이야 니스 쩐 로우진나?"( 아야 너 누구야. 너 정말 김동무인가?)

왕촌장 얼굴이 금시 밝아지며 눈이 마주 붙어 없어지고 만다.

 

하긴 그럴 것이, 바로 일년 반 전 어떤 탈북자가 그 마을에 처음으로 모습을 나타났을 때에는 정말로 주릴 대로 주리고 지칠대로 지쳐 마른 장작개비에 비닐 박막을 씌운 것 같은 몰골이었으니까.

"그럼 내가 김이지 박이나 최겠습니까"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었다. 원래 그 곳은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 중국 사람들도 그쯤한 말은 별로 어렵지 않게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야 그런데 니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났소니. 한국이나 간 게오."

왕촌장이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내 위아래를 훑어보고 또 봤다.

", 그럼 내 한 평생 당신네 집에서 머슴살이나 할 줄 알았소. 나 지금 한국에 가 있소." 돈 한푼 받지 못하고 일년 넘게 죽을 고생을 했던 생각을 하면 다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속에는 나를 정말로 친동생같이 돌봐주던 박 무어라는 형도 보이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 익었다. 돌이켜 보면 일년이란 참 길고도 짧은 세월이 아니던가.

 

"그래 노 진나 니디 한국에 가서 무슨 일이나 했소?"

팥알 눈이 여전히 나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고 진저리나게 캐물었다. 하긴 그도 그럴 만하다. 그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이란 돈이 널려 있는 땅, 그래서 조금만 팔다리를 놀리면 돈이 저절로 주머니에 들어오는 땅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 한국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 가구?"

 

문득 대한민국 국민이 된 건 사실이지만 속은 달랑 빈 대학생이란 말을 하기 싫어졌다.

"그래 니디 한국에 가서 무슨 일이나 했소?"

"사업을 하오. 여기 말하면 그 뭐라고 할까 크지 않은 공장 창장쯤 하는 셈이지."

"뭐 니디 공장 창장이라고 했소?"

 

왕촌장의 몸가짐이 다시 한번 달라졌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아첨을 감추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너 보구 내 집에서 일년도 넘게 머슴살이하던 그 비루먹을 북한 놈이라고 하더냐. 나는 그때부터 벌써 네가 언제인가 큰 일 할 사람인 줄 알았다였다. 왕촌장이 당장에 나를 자기 집으로 끌더니 마누라 아들 며느리까지 모두 불러내서 인사시키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는 아예 마을로 들어오면서 보았던 벽돌집, 내가 목단정이라고 이름 붙인, 그 집에 시키었다. 시에서 나왔다는 세무국 뭐란 사람을 비롯하여 파출소 소장, 당서기, 동석자들도 노상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작자들이었다. 아무튼 그 징그러운 옛 주인 때문에 내 계획이 몽땅 물거품이 된 것만은 사실이었지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 요리, 그리고 이름조차 모를 갖가지 남방과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독한 술 몇 잔이 연거푸 들어가자 갑자기 간부가 된 듯 불편하기만 하던 그 자리도 당장에 편해졌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세상이 정말로 녹두알만 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또 몇 잔 더 들었다. 그쯤 해서는 저승사자 같게만 보이던 파출소 소장도 손아래 동생쯤으로 생각되었다.

 

왕촌장이 술집 노반을 불러 귓속말을 하는 소리가 들리었다. 한국에서 온 귀한 분이니 제일 예쁜 꾸냥을 붙여주라는 것이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장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끝없이 무너지는 나를 부축하여 식당 뒤 어느 한 방으로 데리고 갔다. 붉으스름한 불빛, 코를 찌르는 싸구려 향수내, 그런 곳이라면 나한테는 그리 낯설지는 않은 곳이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친구들과 더불어 자본주의를 실물 체험을 한다고 청량리 588이며 미아리 택사스촌에 몇 번 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에라 차라리 잘 되었다. 내가 그렇게 짖밟히던 중국 땅인데 오늘은 나도 실컷 짖밟아 주리라." 내 뒤를 줄레줄레 따라오던 주정뱅이 영감쟁이들은 이방 저방 찾아들어 가고 나만 따로 제일 으슥진 한 방으로 안내하였다.

 

방문 앞에 이르러 사장이 한발 먼저 들어갔는데 안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무엇을 하던 중이었는지 깜짝 놀라 허둥거리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고 사장이 낮으나 독기 어린 음성이 한 두 마디 들리었다.원 저럴 것까지 없는데 어차피 그 짓거리를 할 여자한테 욕할 것까지야.

이어 사장이 나오고 언제 그런 적이 있었더냐 싶게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나보고 어서 들어가 보라는 것이었다. 그런 곳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척 들어갔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서던 나는 그만 깜짝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곳에 아가씨가 있을 것이며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모르고 들어 간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아가씨가 나를 맞아 주는데는 정말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본인은 한국에 온 초기 실제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이해한답시고 그런 곳에 몇 번 다녀 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어디를 가 보아도 그렇게 실 한 오리 걸치지 않고 "손님"을 맞는 "아가씨"들을 본 적이 없다. 최소한 "편의"를 위하여 속옷은 입지 않았을지라도 겉옷만은 그래도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곳으로 찾아들어 가는 남자들이라면 바라는 것이 그것이고 기대했던 것도 그것 일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여인이 울었던 듯 흐느끼며 다가와 옷을 벗기려 했다.

 

"아 쇼제 니 덩이덩라."(아가씨 잠깐만 기다려라.)

잠시 당황해 진 숨을 고르기 위해 아가씨를 제지하고 침대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그 방이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이라고는 아예 없고 내가 방금 들어 온 복도로 통하는 출입문이 전부였다. 가구라는 것도 내가 걸터앉은 다 낡은 나무 침대와 그 옆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자그마한 탁자가 전부였다. 철창이 없으니 말이지 참으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감방 같은 곳이었다. 꾸냥은 소리 없이 침대에 올라가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누웠다.

 

이 아가씨는 도대체 어떻게 된 아가씨일까. 힘든 일은 하기 싫고 그러나 돈은 벌어야 되겠고 농촌에서 도망쳐 나온 아가씨일까.처음으로 무척 아름답게 생긴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 두 세살 되었을까. 흰 살결, 동그스름한 얼굴, 자기 마음대로 부끄러운 곳도 감추지 못한다는 수치감 때문인지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매력은 오히려 남자들의 성적충동을 불러일으키고도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꾸냥은 역시 중국 아가씨이다. 우리나라 온성, 회령에 나와 그렇게도 잘난척하면서 그 잘난 나일론 천 쪼박지들을 휘둘러 수없이 많은 처녀들을 유린하던 중국놈들과 같은 족속인 것이다.그래 어차피 들어 온 걸음인데 얼른 일을 치고 나가자.

잠시라도 약해졌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용기를 내어 일을 치려고 서둘다가 그만 탁자에 놓였던 컵을 떨구어 깨뜨리었다.

 

"어마나!"

문득 죽은 듯이 누워있던 꾸냥의 입에서 가느다란 놀란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 어마나? 니쓰 쒜이야? 아니 너 누구야?"

깜짝 놀라 물었다. 중국 꾸냥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아니었다. 여인도 일어났다. 그도 놀란 얼굴 표정으로 미루어 뜻밖인 것이 분명했다.

"아니 너 누군가 말이야? 너 조선족이야?"

다시 물었다.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숨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그가 조선족이 아니라면? 조선족이 아니라면?

"너 탈북자야?"

 

차마 말이 나가지는 않았지만 물었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하였다. 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알고 보니 그는 넉 달 전까지만 해도 함흥 교원대학 4학년에서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다. 아버지는 4년 전에 굶어서 돌아가고 단 한 분 남은 어머니마저 영양실조에 결핵까지 걸려 사경을 헤맸다고 한다. 아니 이젠 사망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때에는 마이실린 몇 병만 있으면 났는다고 하는데 그가 어디서 그런 약을 구하랴. 결국 그 것 때문에 혜산에 왔다가 중국 조선족의 꼬임에 들어 압록강을 건너고 거기까지 팔려 왔다는 것이다. 중국 돈 6천 원에 팔려왔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런 처녀들이 여러 명 더 있다고 했다. 하루 손님을 많이 받을 때에는 20명까지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현대판 종군위안부인 것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나 자신이 저주스럽고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했어? 에라 미친놈아 너도 사람이냐?

그 자리에서 뛰쳐나와 노반을 찾았다. 나한테 있는 돈을 다 털면 그 정도의 돈은 될 듯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노반은 방금 전에 나를 그곳에 안내하던 그 웃음기 잘잘 돌던 얼굴이 아니었다. 사오기는 6천 원에 사왔지만 지금은 4만 원을 내기 전에는 내놓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에라 이런 강도 같은 놈아. 세상 어디에 그런 법이 있느냐."고 소리쳐도 보고 사정도 해 보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아가씨가 너희 민족이기 때문에 그렇게 귀중할 것 같으면 왜 자기 나라에서 살게 하지 않고 중국으로 넘어오게 하였는가"하는 것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무지막지한 되놈이 하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중국 사람들이 언제 먼저 제발 조선 사람들이 건너와 줍시사 빌어서 왔다던가.

 

모두가 이렇게 저렇게 죽지 않기 위해서 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구태여 오라고 해서 온 땅도 아닌데 잘 대해 주지 않는다고 투정질 할 말이 뭐란 말인가.그랬다 문제는 중국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를 나서 자란 고향에서 살지 못하게 한 것도 우리 모두를 중국 사람들의 머슴꾼으로 성 노리개로 되게 한 것도 오직 한 사람, 그 가증스러운 한 사람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도 강 건너 저 쪽에서는 아직도 "검은 구름 몰아치고 유혹의 바람불어도 향도성 따라서 사회주의 나아간다"만 부르짖겠지. 생각하니 가슴이 터졌다. 그래서 나는 가슴속으로 소리쳤다

 

"아 김정일 너도 사람이더냐. 사람이면 말해보라. 우리 인민의 수 천년 역사에서 언제 이런 참혹한 수모를 겪었던 적이 있었더냐..."

(이후 필자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한 달여 호프집으로 주유소로 뛰고 뛰어 다시 그곳으로 갔다. 하지만 그 처녀는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간 다음이었다.)

 

200311월 조일훈 탈북자동지회 회보 "탈북자들" 200311월 호

 

 

2004-11-19 20:53:2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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