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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내가 가고자 하는 길 - 김남길

작성년도 : 2001년 628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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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고자 하는 길

- 김남길

 

 

남에게 드러내어 자랑할 말한 일을 해 놓은 것이 없는 내가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솔직하고 진솔한 얘기들이 다른 탈북자들에게 조그마한 위안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나는 1961.5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출생했다. 대대로 군인집안이라 별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부모님 슬하에서 유치원,인민학교,고등중학교 등 교육과정을 마쳤다.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12년간 군복무를 한 후에 외화벌이 사업을 담당하게 되어 남들은 평생 한 번 가보기 힘들다는 해외도 다녀보면서 북한사회의 실체에 대해 점차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인간으로 태어나 가식없고 속박받지 않는 참된 삶을 살아보고자 탈북을 실행한 후 고난을 감래한 끝에 이 땅을 밟게 되었다. 북한에는 지금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제대로 거두지 못한 어린 자식과 고마운 벗들이 남아 있다.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한 죄스런 맘을 어떻게 전해야 할 지...

 

1996. 6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제일먼저 내 가슴속에 다가온 것은 어린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거리낌없이 뛰어 다니는 밝고 건강한 모습과 말쑥한 차림을 한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들이 진정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남한의 오늘을 일구어온 국민 모두에게 진심으로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고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한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많다. 그들중에 남한에서 오라고 해서 오는 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누군가 초청해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강제로 와서 살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요, 모두 자발적으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도착한 곳이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정부에서 집과 정착금을 주는데 액수가 얼마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차별없이 똑같이 대해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본다.

 

탈북자중에는 생활보조금이 적다느니 교회에서 잘 도와주지 않는다는 등의 불평들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한에서 살던 사람치고 집에 세탁기며 컬러TV, 냉장고 등을 들여놓고 생활하던 사람이 있었던가? 그러면서도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정착생활을 막 시작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것 보다는 이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젊은 사람에겐 어차피 북한에서 살아온 날보다 남한에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것 아닌가.

 

국내 입국후 실시된 하나원 정착교육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1999.10 남한사회에 대한 인식이 채 여물기도 전에 사회로 배출된 나는 기본적으로 남한의 지리와 사물을 익히기 위해 그 해 11월부터 중계동 청소년 수련원에 소속된 차량 운전사로 근무했다. 비록 수입은 변변치 않았지만 하나하나 배워나간다는 자세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서 틈나는대로 나만의 사업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2000.6 드디어 평소 꿈꾸어왔던 "S&N KOREA"라는 자그마한 회사를 하나 꾸렸다. 레저용 물갈퀴와 레저용 수중작업용 장갑 2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레저용품 제조 전문회사를 내 손으로 세운 것이다. 물론 모든게 하루아침에 그냥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개설된 회사창업과정에 등록해서 나름대로 공부도 했고 삼성생명,대한생명 등 대기업체에 무료로 근무하다시피 하면서 유통구조,무역거래,대인관계 등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작지만 소중한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시장에 도전한다는 목표로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어설펐던 시작도 제품개발, 시장성 조사, 개인사업자 등록, 특허 및 실용신안 등록 등을 거치면서 점차 틀을 잡아 나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업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주민등록증을 소지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북한사람이었다. 게다가 사회배출된지 1년이 안된 사람이 사업을 꾸린다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못미더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여하튼 사업의 신뢰성을 확보해서 자금을 끌어들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남한땅엔 기댈 수 있는 혈육, 연고자 하나 없었다. 물론 떳떳하고 당당하게 창투사에서 지원을 받은 자금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역부족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만남, 그리고 진실된 사람들과의 만남이 확대되면서 나에겐 큰 힘이 되었고 그 분들의 신뢰 와지지가 내 미래에 대한 확신을 점점 강하게 만들었다. 우리 제품은 주로 수입에 의존해 오던 물놀이 용품에 대한 수입대체 효과뿐 아니라 편의성과 재질 그리고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이 나라 국민들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에게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고 나아가 미래가 있는 사회,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탈북자들이 시작하면서 따르는 어려운 점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사회에서 오히려 가진 것 없고 순수한 사람들이 손해를 보거나 고통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또 개인적인 욕심으로 저마다 벤처니 주식이니 하면서 결국 회사에서 내침을 당하고 가정까지 파탄에 이른 사람도 보았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고 더구나 난 이사회에선 완전초보 아닌가! 살얼음판을 걷듯 매사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웅이 되기를 꿈꿀 것이다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등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겠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흐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게 내 나름대로 터득한 실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한 걸음씩 꾸준한 노력과 분수에 맞는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간직할 때, 또 남을 위해 배려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소중한 경험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 북한과는 달리 이 땅에서는 하루 세끼 밥은 먹을 수 있지 않은가. 그것 자체가 커다란 자산이라 여기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자기 자신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가지 남한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탈북자들을 자기만 살겠다고 부모와 형제 자식까지 버리고 온 사람으로 생각하는 남한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이제 깨어졌으면 한다. 언젠가 남한에서 정착한 지 오랜기간이 지났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탈북자가 쓴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자신이 사귀던 여자와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여자의 부모님을 찾아뵈었지만 그 부모님이 북한에서 저 한 몸 살자고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왔는데 앞으로 아내마저 버리지 말라는 보장이 있느냐며 결혼을 반대한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적은 것이 있었다. 같은 북한사회를 빠져나온 사람으로 참으로 착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 자신도 아픈 기억임에 틀림없지만 나 또한 그런 부분에선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들에게는 평범한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사연들이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가족과 운명을 같이해도 가족모두가 온갖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는 일도 있으며 또 피치 못할 사연도 있음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남한사람들도 그 점에는 우리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려는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남한사회 생활과 사업을 시작하면서 실패는 곧 죽음이요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실패도 있기 마련이지만 사업의 실패는 나 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식구들 모두에게 피해를 줄 것이란 생각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작은 것 어느 하나 주변도움없이 진행되는 것 없지만 그래도 나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또 그렇게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

 

입국시부터 탈북자에겐 각종 지원이 이뤄지는 만큼 우리 탈북자들은 이 땅의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나 역시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으로서 남에게 이러쿵 저러쿵 훈수한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일 수도 있지만 행여 나와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곳에 뿌리가 있는 사람들조차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고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우리보다 더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작은 성의가 이 땅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 땅의 국민들 모두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다. 또 내 주변의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 나라 경제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각오로 생활해 나갈 것이다.

 

2001.3 김남길

 

 

2004-11-18 00:24:1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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