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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내가 찾은 자유 - 유화

작성년도 : 2004년 58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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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자유

- 유화

 

 

어두운 밤 초조와 불안, 고도의 긴장으로 가슴을 조이는 위험한 시간들은 더디고 지루하게 흘렀다. 드디어 밤12, 나는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공항 개찰구를 벗어나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난생 처음 비행기에 올랐지만 그 희한하고 굉장한 충격은 느끼지도 못하고 그 순간에도 누군가 뒤에서 따라 올라와 뒷덜미를 잡을 것만 같은 긴장으로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뒷좌석에 앉아 출구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제발 비행기가 빨리 뜨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비행기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고도의 상공에서 기체의 동음이 들려올 때에야 나는 목석같이 굳어있는 자신을 의식하였다. 그러면서도 혹시 이 비행기가 북한으로 가지 않을까. 내가 잘못 타지나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다시 긴장을 해 주위를 둘러보았고 가까이 보이는 승객들의 얼굴을 조심히 살폈다. 틀림없이 서울행 비행기였고 그 누구도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귀로에 오른 승객들이 주고받는 고국에 대한 이야기, 친근한 벗들과 나누는 즐거운 한담, 안내원의 상냥한 말소리, 그 모든 것은 분명히 새로운 삶의 세계를 예고하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나는 그제야 오랫동안 쌓였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왔다. 얼마나 기다리던 날이던가! 이날을 위하여 바친 길고 지루한 시간 속에 녹아버린 고달픈 나날들…… 억울하기 그지없는 운명에 대한 설움인지도 모를 비감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가 엉엉 소리쳐 울었다. 그때 그리도 많이 흘린 눈물, 그때의 감정을 나는 지금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렇게 한동안 소리쳐 울고 난 다음에야 자리로 돌아왔다. 법석이던 탐승객들은 거의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의자에 기대여 눈을 감았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벌써 3일째, 꼬박 이 시간을 위해 눈을 붙여보지 못했건만 잠은 점점 멀리 달아나 버렸다. 겨우 잠이 들려 했지만 눈앞으로 지금껏 걸어온 무수한 추억이 아른거려 끝내 잠들지 못했다.

 

창밖에 환해졌다. 안내원이 김포비행장이 가까워 왔음을 알렸다. 자그마한 창문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그야말로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온 밤 추억과 현실 그리고 고뇌에 모대기 던 잡념을 털어 버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 자유분방한 생각으로도 그려낼 수 없었던 낯설고도 새로운 세상에 나는 이렇게 왔다.

 

몇 달 후 정해진 질서에 따라 한국사회에 대한 정착교육을 수료하고 서울에 집을 배정 받았다. 그날이 바로 200023일이다. 나한테는 잊을 수 없는 날들이 많지만 이날은 정말로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 사회에 나오면서 나는 혹 현실에 어려움도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지나온 고통에 비하랴. 다시 붙잡혀 가서 악형을 받을 걱정이 없는 것만으로도 시름이 놓였으니, 다른 어려움이 있다해도 그에 비기랴. 헤쳐 나가리라! 아무리 어려움이 있다해도 그날의 각오로 헤쳐나가리라!며 굳게 다짐을 했다. 그때로부터 벌써 일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나는 그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서 자유는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나는 사실 여기에 오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자유는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정부적인 것으로까지 인식했다. 하지만 자유의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님을 나는 여기에 와서 깨달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초미의 조건은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직업선택의 자유, 여행의 자유, 인권의 법적 보호, 이런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유가 있기에 어렵고 힘든 것을 가리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일자리가 보장되어 있고 그로부터 유족한 삶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부여받는다. 또한 여기에서는 지금 나를 불러 강연회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생활총화에 늦었다고, 혹은 당정책 학습시간에 졸았다고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평화롭다.

 

문득 80년대 초엽 어느 날에 본 노신 작품의 중국영화 아큐정전이 생각난다. 그 때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아큐의 운명이 그리도 북한주민의 운명과 같은가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그날 밤, 나는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다. 그러자 남편은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 자신에게 차려진 현실에서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주제넘은 것이며 결국은 보위부에 잡혀가거나 죽는 길밖에 없다.

 

그러니 말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조심하라"고 엄하게 타일렀다. 진정 그랬다. 말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세상, 그 세상이 바로 내가 등지고 떠나온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그렇게 자상했던 남편도 이런 자유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버렸고 그밖에 많은 따뜻했던 분들, 정에 차 넘쳤던 분들도 다 뒤로 한 채 나만 홀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가끔 나는 넓은 도로를 걸을 때나 풍요로운 시장에서 장을 볼 때 떠나온 고향, 그리고 이웃과 친지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간 많은 동료들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비감으로 눈물을 흘리곤 한다. 어찌하여 세상은 이렇게도 공평하지 못한가? 우리 모두가 같이 한 조상의 핏줄을 물려받았고 한 나라 한 강토에서 살았건만 어찌하여 한쪽에서는 이토록 행복이 넘치는데 다른 쪽에서는 악몽 같은 세월이 끝없이 지속되는 것인가?

 

주체사상에서는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운명을 개척할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자기 운명을 개척해야 할 사람들의 손과 발을 얽어매 놓고 자기 운명을 자기 힘으로 개척해 나가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노력하면 한 것만큼 모든 것이 자기에게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일반적 이론이 철저히 구현된 사회이다.

 

나는 오늘 판이한 이 두 현실을 놓고 북에서 나를 억누르던 사람들 그리고 나한테 그 진리 아닌 진리를 가르친답시고 무던히도 거만하게 굴던 사람들과 마음놓고 논쟁이라도 하고 싶다. , 보라! 이래도 사회주의는 버리면 죽음이고 지키면 승리인가?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사회주의는 지키면 죽음이고 버리면 승리다.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를 억누르던 그 사람들과 나를 괴롭히던 그 사람들에게

 

탈북자동지회 12월호 수기

 

 

2004-11-19 04:05:52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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