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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단고기 먹고 힘내세요. - 마영애

작성년도 : 2002년 634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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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고기 먹고 힘내세요.

- 마영애

 

 

단고기 먹고 힘내세요.

 

지나간 40

 

내가 태어난 곳은 중국 흑룡강성이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군으로 참전했던 오빠를 찾기 위해 부모님을 따라 북한에 들어가게 되었다. 난 그 당시 너무 어려 북한에서 살아야 할 내 운명에 대해 가늠해볼 처지가 아니었다. 북한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내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그렇게 인생행로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난 북한에서 유년시절부터 남에게 뒤쳐지는 아이는 아니었다. 공부도 남 못지 않게 잘하는 편에 속했고 운동이며, 예술적인 재능가지 갖추었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출신성분 탓으로 대학진학이 좌절되었고 그 후로 직장에 취업을 해도 승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난 제외 대상이었다. 다행히 시집을 좋은 집안으로 간 덕에 노동당원도 되었고 중국으로 파견근무를 나가기도 했다.

 

내가 한국으로 귀순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중국에서 생겼다. 북한내부의 사정으로 파견생활을 열심히 하던 내게 불똥이 튀기 시작한 것이다. 반발심이 생겼다. 출신성분으로 차별을 하더니 이제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일 잘하고 있는 사람을 제거하려고 하다니. 북으로 다시 돌아간들 무엇하겠는가? 꿈이며 희망, 어느 것도 눈앞에 그려지는 것이 없었다. 결국 남한 행을 결심하고 몇 개월간의 은신과 도망 끝에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40년의 세월을 정리하고 다가올 인생을 설계하며 김포공항에 힘찬 첫걸음을 내딛었다.

 

다정한 친구, 포돌이

 

남한사회에 대한 첫 느낌은 매우 따뜻했다. 공항에서 날 안내해주시던 분의 따뜻한 목소리에 중국에서 두려움에 떨며 지쳐있던 내 몸과 정신은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한가지를 보면 열가지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서울거리를 처음 접하며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것은 파출소 앞에 익살스런 표정으로 서 있는 포돌이와 포돌이는 서울시민의 다정한 친구라는 문구였다. 북한에서 안전원이라면 죄가 없어도 그냥 피하고 싶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사정이 다른 것 같았다. 남한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그런 나라라는 생각이 들엇다. 포돌이는 내게 남한사회의 일면을 보게 해 주었고 그것을 통해서 이 사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남한 행을 결정한 내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이 사회에서 희망찬 내일을 준비하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40년을 구상하며...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보니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앞으로 남한에서 지금가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이 사회를 잘 모르니 구체적인 인생계획도 세울 수가 없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건설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 여자가 그런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남의 시선도 불편하고 일 자체도 힘에 부친다.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이보다 더 힘든 일이 닥쳐올 수 있는데, 그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선 일부러라도 어려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 몸을 단련시키고 내 정신상태를 강하게 하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몇 개월 동안 공사장에서 일해보니 이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자신감이 생겼다. 웬만큼 어려운 일은 쉽게 헤쳐 나갈 용기가 생겼고 그 용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박한 욕심도 났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살게 되었으니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어야 내가 남한에 와서 받은 여러 가지 혜택에 보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궁리를 해본 결과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식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위사람들은 먹는 장사가 최고라고들 했다. 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사업을 크게 시작하면 실패할 위험도 클 것이라는 생각에 작지만 실속있는 식당을 개업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며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일터 평양사철탕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 한다. 고기가 단 것처럼 맛이다고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 우리 평양사철탕에서는 단고기와 북한식 순대를 만들어 팔고 있다. 식당은 12평짜리로 작고 초라하지만 이곳은 내 꿈과 미래가 살아 숨쉬는 나의 소중한 일터이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얻은 것이 참으로 많다. 정착생활 초기에는 의사소통이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식당을 개업한 후 남한사람과 많이 접하면서 말투도 조금씩 바뀌고 이해를 못하는 말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또 단골손님이나 주위에 장사를 하는 이웃들과 같이 아는 분들도 많아졌다. 인간관계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이젠 나도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가는구나하는 소속감이 느껴진다. 식당운영으로 얻는 수입도 나쁘지는 않은 편이어서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남한에서 난 이렇게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나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이 식당을 열심히 운영하여 큰 외식업체로 키워 나가고 싶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성대하게 마치고 싶은 것이 내 욕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우선, 북한식으로 만들어지는 우리집 단고기 맛을 남한 사람들 입맛에 맞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서비스 정신도 많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공사장에서 일하며 겪은 어려움을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많은 분들이 남한에 입국할 당시의 초심을 잊지 말라고 충고하신다.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살다보면 이 작은 것 하나 마음에 두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득문득 이런 충고를 들을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뜨끔해지는 것은 내가 많이 나태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거니와, 그래도 삶에 대한 열정은 남아 있다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 힘들고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며 현실에 자족하지만 안주하지 않는 노력하는 삶을 살자. 그러다 보면 건실한 외식업체를 운영하고 있을 내가 되지 않겠는가?

 

맛있게 음식을 차려 놓을 테니 여러분들 많이 오시기 바랍니다. 단고기가 몸에 좋은 거 아시죠?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들, 공부에 지친 학생여러분, 세상살이가 그리 쉽지는 않죠? 모두들 단고기 먹고 힘내세요!

 

2002.9 마영애 씀

 

 

2004-11-19 04:03:07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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