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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더불어 사는 삶의 시작 - 김영일

작성년도 : 2001년 636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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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의 시작

- 김영일

 

 

베란다에 나와 불 밝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지금 대전에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앞으로는 유동천이 옆으로는 대전천이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고 천변도로에는 차들이 꼬리를 문 채 환한 불빛을 뿜어내며 힘차게 달려간다. 뒤로는 대전의 신시가지 둔산동의 고층건물들이 창마다 밝은 빛을 뿌리며 줄줄이 늘어 서 있다. 이젠 고향처럼 푸근하게 정이 든 모습들이다. 아마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꽃을 뿌려 놓은 듯이 아름다울 것이다. 두고 온 고향 하늘의 수많았던 별들처럼....

 

이름조차 몰랐던 이곳 대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지도 3년이 가까워져 온다. 이제 이곳은 내 삶의 터전이요 나의 새로운 삶을 이끌어 준 제2의 고향이다. 미숙하나마 여기 몇자 적어보기로 한 것은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회에 와서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 탈북자들과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국민들께 우리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침에 눈을 떠 저녁이 되어 눈을 붙일 때까지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살았다. 탄광노동자이셨던 아버지와 농민이셨던 어머니는 하루종일 나가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자식들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 끼니를 거르기도 했지만 미래의 희망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더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일한 노력의 대가를 받으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 떠나리라. 피눈물을 삼키면서 온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나의 타향살이는 그렇게 기약없는 미래와 함께 시작되었다.

 

누가 인생은 참아 볼 만한 것이다라고 했던가 내 인생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누가 감히 생각했겠는가. 2년전만 해도 굶주림에 허덕였고 미래와 삶에 대한 보장이 없어 남의 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으로 가리란 생각을 못했다. 타국에서 정처없이 떠돌면서 친척들이 나와 내 가족들이 살길은 한국에 가는 길이라고 수없이 얘기를 해도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했다.

 

내가 아는 한국은 힘없는 일반 국민들은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돈 많은 자들만이 살 수 있는 반인민적 국가였던 것이다. 그즈음 TV를 통해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경제가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 소식 이후에 곧바로 전 국민이 동참한 금 모으기 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아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토록 경원시했던 그곳의 그 사람들이 내 한민족이란 말인가. 감동과 동시에 괴로움도 함께 했다. 저 땅에서 내가 태어났더라면 저 곳에서 내가 미약한 힘이나마 바쳤다면 난 얼마나 떳떳할까. 가리라 나의 또 하나의 조국 한국에 가리라고 굳게 결심했다.

 

햇살이 따뜻한 5월 봄에 열망하던 한국으로 왔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관계당국에서 나온 분이 잘 왔다며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공항을 나와 서울시내로 향하면서 차창 밖으로 조용하고 아득이 뻗어나간 도로와 즐비한 건물들, 달리는 차들을 감상했다. 나를 마중 나오신 분이 도착한 첫 소감이 어떠냐고 물으시길래 거리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없느냐고 되물었더니 그 분은 웃으시며 큰길은 다 차를 타고 다니니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대답해 주셨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 진행하는 사회정착교육을 받으면서 지방도시와 농촌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는데 농촌 구석구석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있었고 집집마다 자가용 승용차와 각종 영농기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정치경제학을 조금 배운 적이 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우선 도로 교통망이 발전되어야 하며 그래야 다른 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발전된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자신들의 피와 땀을 바친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경외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이 땅을 위해 내가 해 놓은 일이 없다는데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다짐을 했다. 나도 이젠 열심히 살아서 나를 받아준 국민과 이 나라를 위해 적은 힘이나마 다하리라 열심히 사는 것만이 정착을 염려하고 지원해 주신 것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정착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듣는다. 내가 이 사회에서 정착을 잘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뒤에서 말없이 도워주고 계시는 정부와 종교계 등 많은 선생님들과 이웃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항시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담당관을 지정해 주셨고 종교계는 우리가 외롭지 않게 지방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주셨다. 그리고 담당관계서는 친 형님처럼 밥이라도 굶고 다니지는 않는지 챙겨주시고 명절에는 내가 외로울세라 자신의 고향에 가자고 이끌고 나를 한집안 식구처럼 대해 주셨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사랑에 보답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직 하나 내가 남들에게 누가되지 않고 잘 사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몇가지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 신념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른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탈북자들은 받기만 하고 줄줄 모른다는 소문이 생겼다 한다. 가슴이 아프다. 세상사람들은 누구나 다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속에서 사람들의 정이 오가고 본인을 위해 하나라도 해주어야 한다. 그런 속에서 사람들의 정이 오가고 본인을 위해 하나라도 해주고 싶어한다. 나는 적지 않은 직장동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내가 직장에서 부담없이 내 앞에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열심히 듣는 것이 좋다. 사람들은 자기 말을 잘 들어주면 마음속에 있는 생각까지도 말해준다. 그러면 서로의 유대관계도 좋아지고 한가지라도 더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둘째 잊을건 빨리 잊어야 한다. 하루빨리 지난날의 가슴아픈 과거와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누가 나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남들이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남들이 도와주리라고 기대만 하고 있다가는 쪽박을 차는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이다음 통일이 된 후에 부모형제, 친구들 고향사람들 앞에서 한국에 가서 한게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당당히 "나는 북한을 떠나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열심히 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절약하는 정신을 가져라. 무엇을 얼마나 버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절약하는가 하는 것이 재산을 늘리는 방법이다. 절약끝에 웃음이다라는 말이 있다. 조상님들의 말이 틀리는게 없다. 정말 하나도 쓰지 말고 벌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알고 자기 분수에 맞게 쓸건 쓰라는 것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 하다가는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넷째 거울을 보라. 아침저녁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 물어보라. 너는 누구인가 그러면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고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다섯째 종교를 가져라. 사람은 혼자 힘만으론 자기마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가 없다. 때로는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마음적으로 의지할 곳이 적은 탈북자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에 나간다. 교회에서 사랑을 배우고 나를 수양한다. 그 곳에서 나를 돌이켜 보면 마음에 평안이 옴을 느낀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살아나가는 방식 또한 다르다. 이 다섯 가지는 내가 이 사회에 정착하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다. 지금 새로운 출발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지금 대전 중구청 보건소 건강증진계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화시대를 맞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복지시설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아직까지 손이 못 미치는 부문이 적지 않다. 독거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목욕시키는 일을 맡아 하고 있는데 목욕을 시키면 좋아하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의 얼굴을 보면 보람과 긍지가 생긴다.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 아니 이 사회를 위해 이 국민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 이 사회에 짐이되는 사람이 아니라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2001.4 김영일

 

 

2004-11-18 00:24:4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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