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기까지 > 탈북민 수기

본문 바로가기

탈북민 수기

자유를 찾기까지

작성년도 : 2016년 828 0 0
  • - 별점 : 평점
  • - [ 0| 참여 0명 ]

본문

자유를 찾기까지

 

하늘에서는 비가 소리없이 내리고 있고 사람들은 알록달록 색색이 우산을 쓰고 바쁜 일상 속에 어울러져 모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져 살아가는 복잡한 서울의 중심에서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수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은 한 여인이 지난날을 추억한다.

특히 비오는 날이면 다른날 보다 더욱 고향에 대한 추억과 지나온 나날을 돌아보며 여인은 태어나서 소녀로, 그리고 처녀로 자라면서의 추억에 잠기게 된다.

이제 이 여인의 지난 삶과 선택 그로 인해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추억의 한 장을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70년대 평범한 가정의 둘째딸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소녀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힘든시기를 겪게 된다.

소녀가 5살 때 태어난 동생은 가족의 행복과 기쁨이었고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 소녀는 5살이었지만 더 없이 행복했다.

그것은 북한의 남존여비사상으로 물젖었던 소녀의 아버지가 가정에서 아들을 너무 바라고 그 아들인 남동생이 태어나는 것이 더없이 기쁜일로, 행복한일로 소녀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온 동네를 다니면서 5살난 소녀가 엄마가 남동생을 얻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철없던 누나의 기대를 안고 태어난 소녀의 동생은 소녀의 가족에게, 소녀에게 힘든 고통을 선사하게 되는데 그것은 태어나서 6개월만에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집안에 유일한 아들인 동생이 장애를 얻자 소녀의 가족에게는 큰 고통이었고 어머니는 아직 어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린 5살짜리 딸과 남편을 두고 전국으로 용한 의사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5살 어린나이에 직장에 다니시는 아버지와 지내던 소녀에게 유일한 낮잠 자리는 아파트앞에 있던 창고의 가마니 밑이었습니다.

어머니 손길이 미치지 못했던 어린 소녀는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고 그런 상태인 소녀를 봐주겠다고 나서는 동네주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4년을 지내다나니 소녀는 자라서 유치원에 가고 어느덧 소학생이 되게 되었고 스스로 자기를 챙기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항상 다른 친구들처럼 어머니가 자신을 봐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던 소녀는 유치원에서는 남자친구들도 모두 꼼짝 못하게 하는 무서운 소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소녀를 유치원선생님들은 항상 혼냈고 더 나아가서는 매질도 서슴없이 하였으며 그런 상태로 인하여 소녀는 심장병까지 얻게 된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힘들었던 소녀에게 드디어 어머니가 동생의 치료를 포기하고 돌아오게 되었고 소녀는 동생은 고칠 수 없는 것은 안타까웠지만 어머니가 곁에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4년을 병을 고치러 다니면서 다른 동네사람들의 돈을 많이 빚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북한정권에서 그처럼 하지 말라는 장사의 길에 나서게 된다.

그러다나니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웠던 소녀에게 어머니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항상 집을 비우고 다녀야 했고 그런 어머니를 소녀는 그리워밖에 할 수 있었다.

어린시절 집에 어머니가 계시는 날이면 너무 행복했고 어머니가 집에 안계시면 집안은 너무 어두웠다.

그러다 소녀는 소학교에 다니면서 조선소년단에 가입하게 되고 드디어 조직생활을 하게 되면서 그런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소년단 생활총화에서 항상 다른 친구들이 소녀에게 소녀의 어머니가 장사를 하기 때문에 부르죠아 사상에 물젖은 가족이며 돈벌레라고 비판을 하게 된 것이다.

9살 소녀는 북한의 정치사상교양을 받으면서 우리 어머니는 부르죠아 사상에 물젖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어머니가 밉고 창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항상 바쁘셨던 소녀의 부모님들은 학부모회의 등 모든 학교 행사에 참여 할 수 없었고 급기야는 소녀의 소풍날짜도 까먹게 된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소녀는 너무 미웠고 어린 나이에 자기의 삶을 한탄할 정도로 힘들고 아팠다.

그리고 소녀는 더 커서 중학생이 되고 스스로 모든 생활과 학교생활을 해나갔고 그 누구보다 더욱 굳세여져 갔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 북한의 사정이 안 좋아지고 배급이 밀리면서 배급소에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면서 소녀는 그 어느 가정보다 편한 삶을 살게 된다.

왜냐하면 국가만 믿고 소녀의 어머니처럼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부르죠아라고 비판하던 사람들은 굶고, 식량 얻으러 다니게 되고 소녀의 어머니처럼 발 빠르게 자본주의 시장에 뛰어 들었던 사람들은 이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배워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여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일명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우던 시절 수 많은 사람들이 국가를 믿고 있다가 굶어죽었으며 거의 모든 공장기업소들은 자재와 원료가 없어 가동을 멈추었고 그야 말로 북한은 무너질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시기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스스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소녀의 어머니 혼자 짊어지었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어머니의 한쪽 어깨를 나누어 지게 되었다.

소녀에서 처녀로 자라났고 철도일군가족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던 철도를 들어가기 위해 뇌물도 주었고 그로 인해 철도기능공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총국산하 분국에 입사하게 된다.

굳이 처녀가 철도를 택한 이유는 고난의 행군의 여파로 철도에서 일하면 돈을 벌기가 쉬었고 직업상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처녀는 철도에서 자리잡았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역전보안서, 철도검열대, 승차보안원, 검열원, 경무원 )등을 알게 되었고 그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쉽게 돈을 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어느 사람보다도 마음이 여렸던 처녀의 아버지는 처녀의 가족은 굶지 않고 잘 먹지만 옆에 처녀의 아버지 친구집은 굶고 있자 집에 밥을 퍼서 먹여주고 매일 매일 음식을 가족들 몰래 그들에게 가져다 주었다.

사람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겨야 하지만 처녀의 아버지의 그런 작은 베품이 소녀의 가족에게 폭풍처럼 나쁜일이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자신이 드실 점심도 동정으로 가져다준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먹고 나머지가 생겨서 매일 퍼주는 것으로 비추게 되고 그로 인해 수입대 지출이 안맞고 남들은 끼니도 없어서 굶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지 매일 남의 식구들까지 퍼준다고 보안서에 신고를 하기에 이루게 한다.

솔직히 일찍이 다른 가족들보다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까닭에 일찍 장사의 길에 나선 것이 국가를 바라보지 않아도 굶지 않게 된 것인데 그로 인해 다시 보안서에서 처녀의 어머니와 처녀가 구류장에 갇히는 상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집을 수색영장도 없이 가택수색을 하고 집안에 있는 새 물건들은 모두 장사물건으로 취급받아 회수당하게 되고 어머니와 처녀는 육체적으로 고통받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인권침해라는 일반적 개념조차 몰랐던 처녀와 처녀의 어머니는 수 많은 매를 맞고 풀려나게 되고 제힘으로 살려고 노력한 것이 받는 대가에 너무나 억울하여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구류장에서 풀려나게 된 직후 처녀의 어머니는 우리가족은 다른 가족보다 조금도 잘 살면 안되고 그 것 역시 성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다.

처녀와 처녀의 형제자매는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과거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처녀와 처녀의 형제자매와 그 후대에게까지 그 영향은 미칠 것이라는건 알 수 있었다.

그때 처녀의 어머니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미래가 없고 우린 그 것을 감수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며 결혼 역시 그 것을 감안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자신들은 그런 고통을 감수할 수 있지만 그 것을 자식들이 똑같이 당한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프셨던 처녀의 어머니는 처녀와 처녀의 형제자매들을 앉혀놓고 너희들 스스로 이제는 운명을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그런 성분 때문에 힘들어 하지 말고 살지를 결정하라고 하셨다.

그 시절 한창 탈북이 이루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식량난에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고 모든 운명을 건 도박은 처녀는 하게 되었고 정말로 많은 생각끝에 중국에 사는 친척들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중국에 정착하던 처녀는 너무나 가족이 그립고 어린 나이에 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었고 고향이 그리웠다.

매일 매일 말도 모르는 곳에서 고생하는 것도 힘들고 그 보다 더 힘든 것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였다.

일년, 이년이 되면서 중국어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고 자기 의사표현을 하면서 처녀는 고모의 옷가게에서 옷을 파는 상인이 되었고 돈을 벌어서 고향에 나갈 생각으로 모든 것을 아끼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다.

중국에서 2년을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은 처녀는 중국위안화 1만원 이상을 모을 수 있었고 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잘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압록강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갔고 처녀는 그 때 자신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2년간의 자유 세상을 맛본 처녀는 더 이상 어린 처녀가 아니었고 북한정권의 속임수에 스스로를 선호위장하면서 믿지도 않는 정권에 충성하며 살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북한에 도착한 첫날 티비속에 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도 너무 낮설었고 그 어느 나라보다 힘들게 살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우리는 세상에 부럼없고, 세상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민족이라고 하는 거짓선전에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이 처녀는 자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는 이 정부에서 살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녀는 다시 가족과, 고향을 다시 떠나오게 되었고 스스로는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렇게 다시 중국으로 돌아 온 처녀는 다시는 북한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살게 된다.

하지만 북한의 탈북자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던 처녀는 다른 탈북자들이 그런 불안감에서 해방되려고 일명 자유를 찾아서 한국으로 간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얼만간의 고민을 거쳐 한국으로 가려고 결심하게 된다.

물론 이미 중국인의 국적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공안만 지나가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스스로 놀라는 그런 삶이 싫어졌던 이유도 작용했다.

그 결심이 앞으로 소녀에게 어떤 가시밭길이 될지를 모르고 소녀는 앞으로 펼쳐질 밝은 미래만 생각하고 한국행 브로커를 만나게 되었다.

한국으로 데려간다고 하던 브로커는 중국의 조선족이었는데 이번에 같이 갈 사람은 10명이며 지금 여비가 모자라서 못떠난다고 하였다.

무조건 한국에 잘 도착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소녀는 자신이 중국에서 벌었던 중국위안화 15천을 스스럼없이 내놓게 되었고 도착해서 남보다 적은 돈을 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소녀의 바램과 달리 소녀와 그 일행 10명은 중국무장경찰에 체포되게 되고 소녀의 밝은 미래는 순식간에 어두운 지옥으로 변하게 되었다.

중국감옥에서 7개월간 중국변방대에게 북한의 탈북자라는 이유로 외국인취급은 고사하고 도망자라는 모욕과 그로 인해 수 많은 인권침해를 당하게 되는데, 그 예로 도문변방대는 탈북민들을 겉옷도 못입게 하고 내복바람으로 감옥안에서 살게 하며 그런 생활을 7개월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어두운 지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너무나 기가 막히고 힘들었고 스스로 살기를 포기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살다가 체포된 것도 아니고 한국행을 선택하였다가 체포되었으니 북한정권이 그 처녀와 그 일행에게 어떻게 대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북송버스에 올랐고 보위부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20대에 목숨이 위협받는 불안을 느끼게 되었으며 삶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고향보위부로 호송된 순간부터 스스로 거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였던 처녀에게 그래도 같이 이 난관을 가야 할 고향 동료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10명의 일행 속에서 우연히 같은 고향의 고향언니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처녀와 그 언니는 그 순간부터 삶의 기로를 같이 걷는 동행자가 된 것이다.

40여일 동안 수 많은 매를 맞고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처녀는 다시 삶의 용기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밖에서 눈물로 딸의 안녕을 바라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큰 용기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동행자로 같은 고통을 겪었던 고향언니 가족은 모두가 행방불명 되어있었고 그 소식을 들은 고향언니는 스스로 모든 삶을 포기한 듯 보였다.

자기는 누구도 들여다봐줄 사람도 없고 그로 인하여 자신은 살아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속 불안이 스스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것이었다.

같은 구류장 감방에서 6개월간 같은 그릇에 밥먹고 수저도 구분없이 써왔던 처녀와 고향언니는 두 번의 재판(일반사람들은 재판을 한번받고 감옥에 가는데 이들은 공개재판을 한 번 더 받느라고 재판을 두 번받게 되었다)도 같이 받게 되었고 감옥들어가서 신체검사를 같이하게 되었다.

신체검사결과 고향언니는 양쪽 폐가 개방성결핵으로 옮는 결핵이며 옮는 결핵이라 같은 감방에서 6개월간 같이 생활한 처녀도 세밀히 검사하게 된다.

하지만 처녀는 결핵에 감염되지 않았고 검사를 담당했던 의사도 놀라운 결과라고 장군감이라고 놀리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20대 중반의 나이에 교화소(교도소)에 들어갔던 처녀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하셨던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살아나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감옥에 발을 들이는 순간에 그 결심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를 알게 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또다시 살기를 포기한다.

처녀는 스스로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죽기를 바랬고 신입반에 들어간 순간부터 남들 모르게 단식투쟁을 하며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다 일주일 뒤 비공식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게 되고 제발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못된 생각을 버리라고 하셨고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어서 돌아오기 위해서는 스스로 용기를 내라고 하셨다.

그 당시 편지 한 장이었지만 처녀에게 그 편지는 삶의 등불과 같았고 딸 대신 자신을 감옥으로 보내달라고 하신 아버지의 얼굴과 감옥으로 떠나는 딸을 바래주시면서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던 어머니의 얼굴, 불편한 몸으로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가면서 먹으라고 간식을 사주던 동생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지나갔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처녀는 다시 음식을 먹으려고 하자 이미 여러날 음식이 들어가지 않고 물만 먹었던 처녀의 위는 음식을 거부하고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있었다.

감옥이 지옥이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런 소녀의 상태를 알아본 사람들이 옥수수콩밥을 가지고 죽을 만들어 처녀에게 주었고 그로 인하여 처녀는 다시 살 수 있는 몸으로 되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병이 깊어 질대로 깊어진 고향언니는 더는 일어나지 못했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국땅에 남겨둔 사랑하는 딸을 그리워 하며 차가운 감옥에서 눈을 감았다.

북한의 교도소는 지옥 중에서도 생지옥이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하며 그것은 자기들이 생존의 침해를 받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죄를 짓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상황과, 그렇게 만든 국가를 원망하였다.

밖에서 성한 사람도 수없이 굶어죽었던 북한 땅에서 생지옥인 교도소에서 형기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 상황이 더 험악했고 보리고개에는 매일 적게는 한명에서 여러명씩 세상을 원망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 속에서 처녀는 뒤에서 열심히 뒤바라지를 하신 어머니와 가족들이 있어 살아서200592일 대사령을 받아서 나올 수 있었고 고향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고향땅은 그 처녀가 그리던 고향 땅이 아니었고 이미 감옥 갔다왔다는 감투를 뒤집어 쓴 그 처녀는 이미 고향에도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매일 매일 감시와 멸시 속에서 처녀는 다시 고향을 떠날 생각만 하게 되었고 그 처녀에게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200512월 청진에 사는 처녀의 고모부가 환갑잔치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고향을 떠날 수 있는 구실이 생겼고 그처럼 바라던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길은 죽을수도 있는 목숨을 내놓고야 갈 수 있는 길이었고 그 길에 나선 처녀를 보며 부모님들은 이 길에서 너는 목숨을 내놓아야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고 처녀 역시 살아서는 통일되기 전에는 고향땅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이번에도 잡히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눈물을 흘리시면 그런 살아서는 너를 다시 못보겠다고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의 얼굴과 언제나 누나 뒤에서 작게만 느껴졌던 동생도 눈물을 흘렸고 그 속에서도 넌 살아서 네가 꿈꾸는 곳에 갈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처녀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행복만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처녀에게 그 정권은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가혹함을 주었고 목숨도 내놓아야 하는 처절함을 주었고, 인간에게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교훈을 주었다.

그렇게 처녀는 사랑하는 부모 형제와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뒤로하고 다시 눈물의 강 두만강을 제일 추운 겨울에 넘을 수 밖에 없었다.

두만강이 얼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강입구에 도착한 처녀는 강이 아직 얼어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갈등도 하지만 이길 아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추운 강을 넘을 수 있었으며 중국쪽에 도착하였다.

중국쪽에 도착하여 강에 나오자마자 옷몸은 순식간에 얼었고 한걸음 옮길 때마다 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 주변에 개가 짖었고 그 소리에 처녀는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