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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사이버닥터가 권하는 "마라톤 인생" - 김지은

작성년도 : 2004년 66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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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닥터가 권하는 "마라톤 인생"

- 김지은

 

 

프롤로그

 

인생은 마라톤이다.

 

첫바퀴를 빨리 돌았다고 해서 종착점에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 속력을 낸다고 하여 남보다 먼저 결승테잎을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이 처음부터 마지막 도착점까지 꾸준한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변함없이 달려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의 삶이 순조롭고 성공적이기를 희망하며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기 마련이다. 더욱이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을 새로운 정착지로 정한 탈북자들은 어느 누구보다 인간다운 삶을 갈구해 왔고 오늘의 이 생활을 위해서 사선을 넘어가며 갖가지 풍상고초,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만큼 이곳에서의 삶에 기대도 크기 마련이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고 하던가?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의 첫걸음은 좌절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 잡은 인생

 

처음 느끼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내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보는 것마다 신비스러웠고 자유롭고 또 편해 보였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앞으로 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마냥 행복한 일이었다. 꼭 돈을 많이 벌어서 통일이 되는 날 당당하게 고향에 돌아가야겠다고 다짐도 여러 번 하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노라는 계획보다는 아무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한국사회에서 막 첫걸음을 내딛을 때가 2002년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시기였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무료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할까 하는 막연한 고민으로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거주지 배정을 받고 난 후 꼭 보름째 되는 날이던가? 인근 교회를 나가면서 알게 된 어느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무슨 일 하며 지내느냐고 묻길래 아무일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좋은 곳을 소개 해줄테니 한번 나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와 보면 재미도 있고 또 요즈음의 한국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눈에 배울 수 있으니 무료하게 집에 있지 말고 바람이나 쏘일 겸 나오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고 답답했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깊이 하고 같이 따라가 보았다.

 

앞에서 뒤가 보이지 않는 큰 사무실에 많은 사람들이 둥근 원탁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200명은 족히 넘어 보였고, 한결같이 말쑥하게 차려 입고 단정하게 보이는 것이 꽤나 근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너무 좋은 곳에 온 것 같아 이 사람들 속에 섞여 열심히 배워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을 받고 설명을 듣고 하다보니 세상에 이렇게 이상적인 직업도 있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지. 왜 실업자가 늘어나고 생활고에 자살한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나야말로 한국생활 시작 보름만에 이런 신통한 일자리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 잡은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소위 '다단계 판매'였다. 나는 점점 그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 황홀함과 오묘함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뛰어 들었다. 당시 담당형사님을 비롯하여 평소 나를 알고 생각해주는 주변 분들이 위험한 일이니 하지 말라고 충고하였으나 그런 소리가 쉽게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그때 나는 북한에서 의사생활한 경력을 살려 의사고시를 준비해서 한국에서도 그냥 의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의사고시를 보기 위해서는 시험공부에 바쳐야 하는 시간이 문제였고,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직장생활은 사실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시간도 자유롭고 일정한 기간만 노력하면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는 직업을 알게 되었으니 의사고시 준비에도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얻을 것만 같았다.

 

절망의 늪, 그리고 한가닥 빛

 

하지만 스스로 행운을 잡았다고 믿고 있던 사이 어느덧 정착금을 모두 날려 버리고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그만 쇠잔해져서 거의 폐인이 될 지경에 이르렀고, 더 이상 버틸 돈이 없어서 결국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사고시를 위해 통일부에 자격인정신청을 내게 되었는데, 북한에서의 대학졸업자격은 인정되지만 교육수준과 체계가 다르다보니 의사고시를 치를 수 있는 자격까지는 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교육부에서는 의과대학의 본과에 편입해서 공부를 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지만 등록금이 문제였다. 국가에서 등록금을 지원해 주는 것도 나 같은 경우에는 나이제한에 걸려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 대학공부 7년에 의사생활 8, 이렇게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투자했건만 정작 여기 와서는 아무 것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부끄럽고 억울하기만 했다.

 

통일부로, 교육부로, 다시 보건복지부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해결책을 호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정부당국을 한없이 원망하였지만, 모든 것이 다 아직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단계라서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였다. 수중에 돈 한푼 남지 않은 처지에 마지막 한가닥 희망이었던 의사고시마저 좌절되고 나니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훗날 통일이 되었을 때 고향에 돌아가면 학교동창들이 "너는 남조선이 좋아서 가더니만 의사자격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살았었냐? 그래 뭐가 그리 좋더냐?"하고 질책을 한다면 과연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두고 온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미안하였으나 그 시점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뿐 이었다.

 

구겨진 자존심을 그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아직 받지 못한 정착금은 누구 앞으로 입금시켜 달라는 유언장까지 써놓고 모든 방문을 꼭 잠그고 마지막을 조용히 맞을 준비를 하였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찾을 후배 탈북자들은 나처럼 실패하지 말고 당당하게 이 세상에서 제 몫을 찾고 부디 희망스런 앞날을 개척하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온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러다보니 문득 지금 이 순간보다도 더 힘들고 암담했던 지난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북한에서 일주일을 넘게 굶었던 기억, 아직도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을 그곳 사람들에 대한 죄스러움, 3국에서 한국행만을 고대하며 온갖 고생을 마다 않는 우리 탈북 동포들... 그들에 비하면 너무도 행복한 조건인데 내가 배부른 투정을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뉘우침도 들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 주저앉을 수는 없어. 그깟 자존심 하나 때문에 어렵게 얻은 새 인생의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어. "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나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용케도 새로운 희망의 빛을 발견해 낸 것이다.

 

되찾은 자존심

 

그후로는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기회가 있는 땅에서 열심히 살면 무엇을 하던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현실의 어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하니 한결 마음이 평온해 졌다.

 

주변의 소개를 받아 새로 시작한 일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서 사무를 보는 일이었다. 사실 회사생활에 대한 요령이나 규칙 같은 것을 전혀 몰라도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면 만사형통인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사무일이란 것이 평생 의사로 살아 온 내 일과는 거리가 먼 것인데다 막상 하는 일이 없이 아무도 시키지 않으면 그저 시간을 놀리고 앉아 있는 꼴이었다.

 

언뜻 들으면 참 회사생활 편하게 한다고 생각하겠으나 다른 동료들이 열심히 일할 때 따분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런 일은 없었다. 내 마음이 그러했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사장님이나 이사님들은 얼마나 나를 한심스럽게 보았을 것인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 부끄러워 할 것 없어"

 

처음에는 스스로 위로도 하면서 뻔뻔스럽게도 버티어 보았지만 이내 동료들 대하기가 부끄러워지더니 이내 회사에 나오기 싫어지고, 주위 사람들과 멀어지면서 눈치만 보게 되었으니 참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한번은 회사에서 계획하던 일이 잘 처리되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내가 맡은 일이 아니었는데, 사장님은 그것이 나의 잘못인 양 회사동료들이 다 있는 앞에서 호되게 무안을 주었다.

 

"이봐요. 팀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팀장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겠소?"

 

회사에서는 유일한 여직원인 탓에 평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폼도 내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황당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팀장이란 직분도 내가 달라고 해서 주었던가? 자기들이 감투를 씌워놓고선억울한 마음에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며칠간 깊은 고민 끝에 죽음의 문턱에서 스스로 다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기로 하였다.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눈물의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퇴근시간을 미루면서 업무부터 배우기로 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수첩에 하나하나 적어가면서 동료들에게 물어보려고 애썼다. 지나친 질문에 동료들이 귀찮다면서 나를 피해 갈 정도였다. 처음 듣는 외래어 하나하나, 전공과는 무관한 새로운 지식을 익히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자문하다 보니 어느덧 하나하나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나의 노력하는 새로운 모습에 사장님 이하 모든 직원들이 놀라워 하였고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동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그 짧은 한두달 동안 내가 익히면 무얼 그리 많이 익혔겠는가? 하지만 사장님께서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니 절로 의욕이 솟았다. 회사에서 그만 나가겠다고 하여도 아깝지 않을 사람이 이제는 나가겠다고 해도 사장님이 나가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1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인간 관계도 많아지고 회사 업무 외에 개인적으로 꼭 처리해야 할 일들이 속속 생겨났다. 꼭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에 애착을 갖고 회사일과 병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양심이 있고 회사의 녹을 받아 먹고사는 사람으로 어찌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겠는가?

 

고민 끝에 사장님께 사정 이야기를 하고, 회사일에 지장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사장님의 서운해 하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까운 사람을 그렇게 보낼 수야 있나? 회사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인데모든 시간을 마음대로 할애하여 줄 테니 여가시간에 얼마든지 개인 일을 보도록 해요"

 

나로서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사장님은 이어서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 잘 지켜보았소. 훌륭히 이겨내는 모습에 그만 감동했다니까. 이미 우리 회사의 보배덩어리가 되어있는데 쉽게 보낼 수야 있나?"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제 나도 여기서 무언가 이룬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환해지는 느낌이었고, 그런 나의 모습을 믿고 인정해 주는 주변 분들이 너무 고마웠다.

 

탈북동포들을 위한 처방전

 

지금은 전공을 살려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건강상담을 해 주고 또 틈틈이 한국생활에서 겪은 체험과 생각들을 일기형식의 글로 게시판에 올리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 인정받는 정식 의사자격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북한에서 널리 치료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민간요법 위주로 상담을 해주다 보면 의외로 호응이 좋다.

 

벌써 많은 고정팬들이 생겨나서 일일이 답장을 쓰기가 곤란할 정도이다. 또한 한국생활에서 느낀 점을 진솔하게 글로 올리고, 거기에 화답해 오는 사람들과 사이버공간을 통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렇게 사귀어 가고 있는 사람만도 벌써 수백명에 이르니 나는 더 이상 외로운 이방인이 아니다. 한번은 본의 아니게 '사이버 닥터'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기사거리가 되어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적도 있으니 이제 제법 인기있는 '돌팔이 의사'(?)가 된 모양이다.

 

나는 지금 가슴 가득 희망을 안고 산다. 희망이 나를 편안하게 하고 나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적어도 몇 년 전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노력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생각, 저녁이면 들어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끼니걱정 없이 부엌아궁이에 땔감걱정 없다는 것만으로도 큰 희망이다.

 

나머지 모자란 부분들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하나 채워가면 되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다 보니 요즘은 교도소에 위문도 가고, 장애인들도 돌보면서 함께 나누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힘겹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자살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발견해 냈던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너무 환해서 눈부신 아름다운 미래도 머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주변의 많은 탈북자들이 아직 대한민국의 체제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알량한 자존심 하나에 매달려 허송세월하며 스스로 위상을 깎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대한민국 땅을 밟은 것은 성공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향하는 기회를 얻은 것에 불과하다. 마라톤만큼이나 꾸준히 변함없이 가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노력하지 않은 채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데 있다.

 

탈북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처방전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존심 버리고 마라톤처럼 끈기있게 다시 시작하기"

 

우리 모두 희망을 갖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다시 시작해 봅시다.

 

200412월 김 지 은

 

 

2005-02-16 11:52:53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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