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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용서

작성년도 : 2007년 65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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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예은

 

 

어렸을 때 우리엄마는 나를 끔찍이 사랑해주셨다. 항상 맛 있는 거 있으면 나 먼저 챙겨주시기도 하고 내가 해달라는 것이면 다 들어주신 자상한 분이었다.

 

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자 그날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엄마가 우리 형제 다 버리구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게 되였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이었었고 그날부터 나는 동생과 함께 굶었다. 배에서는 자꾸만 쪼르륵 소리가 나건만 집안에는 먹을 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10일 정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우리는 장마당으로 나갔다. 꽃제비들이 수없이 많았고 나도 이제는 거지가 되고 꽃제비가 되였다. 남들이 밟고 지나간 옥수수알과 국수 부스러기 그리고 생선뼈다귀 등 먹을 수만 있는 것이라면 더럽던 상관없이 다 주어먹었다.

 

밤이 되면 집으로 가고 싶었으나 반겨주는 사람도 따뜻한 구들목도 없었기에 역전에서 신발을 벗어 베고 쪽 잠을 자기를 그 몇 번. 어떤 날은 역전에서 자지 못하게 하여 쫓겨날 때가 있어 추운 밖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다. 세수는 언제 하였는지 얼굴에 때가 끼고 터 갈라져 있었고 머리는 또 언제 빗어보았는지 제멋대로 엉켜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허기진 배를 이끌고 국수 사먹는 사람들 뒤에 서서 행여 국수 물이라도 주지 않을까 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국수를 먹고 있던 아줌마가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울 엄마였다. 내 주제도 말이 아니었지만 엄마 역시 꽃제비가 다 돼있었다. 예전에 그렇게 예쁘던 우리엄마가 아니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엄마는 나를 보더니 조금 당황한 척 하더니 국수물 한 모금도 남겨주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마도 다른 집 엄마들은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내 가슴 속에는 울컥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래도 제자식인데 이럴 수도 있나 싶었고 그날 나는 아무 용기도 주워먹을 기운도 못 내고 어느 구석에 가서 실컷 울었다.

 

그 후로부터 나는 동생과 함께 어떤 남자의 도움으로 중국을 오게 되였고 누군가 물으면 난 엄마가 죽었다고 했다. 엄마얘기만 나오면 내 마음은 한없이 힘들었고 슬펐다.

 

2004년 드디어 한국 행을 밟게 되였고 모든 것이 희한하기만 했다.어느 날 티비에서 꼭 한번 보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거기서도 사람들은 엄마를 용서해주었다.

 

나는 중국이나 한국에 있으면서 엄마를 그리워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티비를 본 그날 저녁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이불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엄마를 용서하고 싶다. 지나온 일은 못 견디도록 가슴 아프지만 그 모든걸 다 잊고 나는 엄마를 용서하고 싶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 엄마가

 

북한에 있는 우리엄마 이제 연세도 많으시고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너무 마음이 아파온다. 이 좋은 한국땅에서 내가 만든 흰쌀 밥도 실컷 지어드리고 싶은데 이제 만날 수도 없으니 나는 어쩌면 좋을까. 혹시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평생 가슴속에 아픔을 지고 살아야 한다니

 

엄마를 용서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아직도 엄마를 사랑하고 싶다.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엄마 사랑해하고 말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좋으나 나쁘나 그래도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시길래 오늘의 용서가 있는가 싶다.

 

!!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진다.

 

20071222일 예은

 

 

2007-12-26 02:45:49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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