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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이젠 당당히 경쟁하고 싶다 - 김성민

작성년도 : 2000년 73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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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당당히 경쟁하고 싶다 - 김성민

 

 

19993월에 귀순하여 이 곳에서 생활한 지도 어림잡아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 땅은 내가 품고 있던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며 서서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경쟁속의 공생, 그리고 돈... 그 속에서 첫 일 년 동안은 나는 한 마리의 작은 개똥벌레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그 한계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나름대로 성실히 살아가는 자신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드디어 적응교육이 끝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며칠되지 않아 이발소에 처음 갔다. 머리를 자르고 나니 목이 말라는데 마침 이발사 아저씨가 물을 가져다 주길래 맛이 이상해 뱉어 버릴까 생각했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꿀꺽 삼켜 버렸다. 쭈욱 소리나게 물컵을 다 비워 버렸는데 그러한 나를 바라본 아저씨가 놀라다 못해 비명을 질러댄다. "그건 가그린인데..."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기를 좋아했고 즐겨했지만 나는 싫었다. 더욱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설명해 줄 때는 나는 깔보는 것 같아서 치욕스러운 감정까지 치솟는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남들과 똑같은 사람인데 내 스스로도 알 수 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기가 왜 그리 창피했을까 "물 한 고뿌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이 왜 그런 눈길로 바라보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뜨기가 일 수였고 말씨가 좀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엉뚱하게도 중국 조선족이라고 대꾸해 버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북한의 문화어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것도 반백의 대학교수님이 내게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아는 길도 물어 가라고 했는데 모르는 것을 물어 보는데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냐"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참으로 불쌍한 인생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인생이야"라고 하셨다.

 

그리고 보니 주변엔 온통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배추 값이며 김치 값이며 새로 오른 소주 값이며 도대체 아는 것이 없었다 코스닥이 어쩌고 주식이 어쩌고 세상은 떠들썩한데 수퍼마켓 아줌마의 계산대 앞에서 계산서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카드를 빼액 그어 버린 나는 또다시 무지의 갑옷을 뒤집어 쓰는 격이었다

 

< 무엇을 할 것인가 >

 

어느 날 주변의 분과 언성을 높여가며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 사람이 던진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 속에 꿈틀거린다. "그렇게 잘 난 네가 한국에 와서 똑 부러지게 해 놓은 일이 뭐냐" "왜요, 컴퓨터도 다룰 줄 알고 승용차 면허증도 땄습니다"

 

말이 안되는 소리일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그 같은 질문에 냉가슴을 앓는다. 모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의 졸업증도 받은 적이 있다. 현재는 대학생이며 신문의 고정란에 시를 기고하기도 한다. 탈북자들의 작은 모임을 이끌고 있고 케이블 TV의 고정 출연하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 환경속에서 내가 못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반발하면 할수록 "해 놓은게 뭐냐"는 질타의 목소리는 더욱더 아프게 가슴을 파고든다. 무엇을 해야 내가 해 놓은 것이 이것이다 라고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을까

 

< 대학원에 입학하다 >

 

이제는 생활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음료수 하나를 마셔도 어디에 좋은 지를 물어보고야 마시고 아무리 까다로운 상품이름도 꼭꼭 암기해 둔다.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전화도 "탈북자 김성민입니다"로 시작한다. 이젠 탈북자임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것은 못사는 동네에서 태어난 수치심을 유발시키기 보다는 현재의 처한 환경을 발판으로 남보다 높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내가 모르는 것이 이것이다 라고 이야기할 때 훨씬 성숙해 가는 자신을 느끼곤 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싶던 때 나를 불안하게 하던 온갖 공상들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 목표가 정해진 것이다 그 목표를 안고 대학원을 찾아갔다. 탈북자는 특차모집에 참가하란다. "부디 일반전형으로 해 달라"고 고집을 부렸더니 학과장님께서 그 이유를 묻길래 "이제 경쟁하고 싶은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드렸다. 외국어 시험 논술과 면접을 통한 61의 경쟁에서 나는 이겼고 목표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천금같은 1년 또 다른 1년의 소중함을 위하여 오늘도 성실하게 살자는 내 삶의 좌우명처럼 살아가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한 다.

 

200011월 김성민

 

 

2004-11-18 00:17:40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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