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이 기가 막혀
작성년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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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 기가 막혀!
- 림일
네티즌과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먼저 웃음도서 1탄 “평양으로 다시 갈까?”를 읽어주신 1만여 독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의아한 제목에 고개를 가로 젓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재밌는 제목이라고 웃었던 사람이 더 많았다.
작가들과 출판계에서 한권의 책을 쓰기보다 한 줄의 제목 짓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지난 일이 어서 솔직히 말하면 50여개의 가제 중에서 1개월간 고민하며 압축해 고르고 고른 것이 바로 “평양으로 다시 갈까?”이다.
다시 말해 제목을 역설적으로 지었다. 독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과감한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그 속에 어머니 품과도 같은 고향에 두고 온 부모처자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운 내 고향 평양에 대한 애정도 담았다.
처녀작 “평양으로 다시 갈까?”는 평양 출신인 나의 눈에 비쳐진 서울의 솔직한 모습을 진솔하고 순수하게 그리고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 북한 사람의 눈에 비쳐진 남한은 이렇게도 다르네요...
- 북에서 온 사람들은 서울에서 그렇게 살아가네요...
- 남과 북이 그렇게 다른 줄 미처 몰랐네요...
-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었어요...
내 책을 읽어본 사람들의 서평 또는 훈담 중의 일부이다.
이 자리를 빌려 “저자와의 만남”이란 이벤트에 연사로 초청해주신 교육부문을 비롯해 여러 기관 단체의 연수교육 관계자님들께 대단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린다.
아울러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 탈북자수기 코너에서 “평양으로 다시 갈까?” 라는 제목의 나의 수기를 읽어주신 8.000여 네티즌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웃음도서 2탄 “평양이 기가 막혀!”를 집필한 동기
평양!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환희와 실망의 명사로 널리 알려진 이름, 과연 그 곳은 언제까지 나의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할까. 가고 싶어도 가 볼 수 없는 그곳에 나의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딸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서울에서 이념과 사상에 앞서 고상한 인간의 한없는 고통스러운 감정까지 참아가며 오늘도 평양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솔직히 말하면 ‘웃음도서’가 시리즈로 집필될 줄은 저자인 나도 미처 생각을 못했다.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신선해야 들어 먹히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독자들로부터 게시판에 책이 재밌었고 제2탄도 집필했으면 하면 의견을 우연히 확인하였다. 그때 처음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독자들도 있구나 하는 감사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출간된 책(본문)에서 오타도 바로 잡아주는 대전의 어느 독자님의 게시 글에서 감동을 받았다. 또한 지난해 초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민족문화마당 세미나에서 분당에 사는 어느 독자님이 ‘책을 재밌게 보았어요, 다음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평양이야기를 써도 될 것 같네요...’ 라는 귀중한 조언에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그리하여 책을 쓰려면 이왕이면 무슨 시기가 절묘해야 하는데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바로 내가 평양을 사랑하고 웃음을 사랑하는 주제로 집필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평양을 떠난 지 꼭 10주년이 되는 지난 1996년 11월 6일을 기념하여 서울에서 평양사랑, 웃음사랑을 주제로 웃음도서 2탄 “평양이 기가 막혀!”를 탈고하게 되었다.
수개월간의 집필과 3개월간의 정교한 교정과 편집수정작업을 거처 마침내 얼마 전에 도서출판 맑은소리(대표 이석범)를 통해 세상에 탄생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 지에스북, 등 대형서점과 인터넷에도 동시에 출시되었다. 중앙일보(3월 2일) 사람들 면에 소개 되었고 연합뉴스에도 보도되었다.
림일은 서울에서 이렇게 삽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를 수료하고 지난 2002년 3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김정철 목사님의 주례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두었다. 나날이 커가는 두 아들을 지켜보며 가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울에 와서 5년간 독신으로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가정의 행복함과 소중함을 지금은 만끽하면서 산다. 그리고 그 소중한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겠다고 늘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
먹고 입는 것은 말고도 분유, 기저귀, 완구에서부터 교복과 학원비까지... 서울에서 두 아이를 키운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한 몸 바쳐서라도 내 두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떳떳하게 그리고 바르고 건강하게 키울 것이다.
결혼 후 대학에서 배운 전공분야인 컴퓨터그래픽디자인을 살려 서울 종로에 있는 광고물을 제작하는 자그마한 회사에서 일을 했다. 그 와중에 처녀작을 집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지금은 설립 20년 경력의 중견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영업부 일도 함께 하느라 보편적으로 주 5일 근무제이지만 나에게는 재밌는 일이다. 신간출간 기획부터 표지디자인 교정, 그리고 거래처 영업실적체크까지 출판계통의 일은 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그리고 높은 책임성과 사명감이 요구되는 직업중의 하나라고 느꼈다.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책을 보고, 더 많은 말을 듣고, 항상 연구하고, 자료를 기록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창작해야 하는 나의 직업은 꾸준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잠시라도 게으르면 도퇴하기 쉬운 치열한 경쟁사회인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두 세배는 해야 한다.
힘든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아내와 두 아들이 기다리는 단란한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그 기쁨이 하루에도 열 백번 ‘평양에서 서울로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과 새 책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다음날 아침을 꿈과 희망을 맞이하게 한다.
내가 본 일부 탈북자들
언젠가 고향에서 온 40대 후반의 탈북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림일씨 성공했네요. 대학도 나오고 안정된 직장에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거기에 사회적인 명예도 가지고... 나도 림일씨 처럼 20대에 왔어도 뭔가 해보는 건데...’
과찬의 말이지만 어딘가 실망을 느꼈다.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알고 있는 성공한 탈북자들 가운데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하는 허광일 선배님, 국민연금관리공단에 근무하는 진광호씨, 농협에 근무하는 김송남씨를 비롯해 성직자로서 성공한 류대열 목사님과 강철호 전도사님 등이 있다. 모두 나와 같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온 사람들이다.
물론 화려한 명함을 가진 사람들만 성공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위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멋진 그리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다.
나이가 들어 취업이 안 돼 부부가 함께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탈북자도 있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가족을 위해 추운 밖에서 노점을 하는 후배도 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일감이 있고 없고 하는 직업소개소도 열심히 나가는 선배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아래 사람들이 더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능력이 안돼서 혹은 나이가 많아서 혹은 운이 안 따라서 번듯한 명함을 가지지 못했지만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늘 힘찬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1997년도에 서울에 왔고 나보다 이전에 온 선배들 중에 지금도 뚜렷한 일자리 없이 세월아 네월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서울에 온지 3년도 안 돼 내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
문제는 한국에 온 시기는 단지 시간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길고 짧고 가 성공과 실패를 말해주지 않고 꾸준한 자기 노력만이 모든 것을 증명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숫자에 불과 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 나이이다. 20대에 와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60대에 와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화려한 명함을 가진 동료들과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선후배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뭔가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승진하려면 두말할 필요 없이 피나는 경쟁을 해야 하고 포장마차에서 호떡을 팔아도 자기만의 특성을 개발해야 잘 되는 법이다.
피나는 노력! 어쩌면 자본주의에서 살려면 생명체와도 같이 느껴지는 이것 없이는 실업자가 되고 실패하기 쉽다. 다시 말해 성공한 사람들에게서는 불평과 불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불평을 할 시간이면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아직도 일부 탈북자들 중에 사소한 것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정착금이 또 줄어든대...” “동에서 주는 생계비도 깍인대...” “어디서 무엇을 준대...” 기타 등등...
물론 어려운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오죽 힘들면 그럴까?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와서 언제까지 주는 것만 받으며 살수 없는 탈북자들이고 이런 말들은 결국 정착에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도전하세요!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사회를 치열한 경쟁사회라고 한다.
그리고 그 치열한 경쟁을 승패로 이끄는 것이 정보라고 본다. 기업이나 개인이나 소중한 정보 하나가 운명을 좌우지 할 만큼 정보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이 사회에서 아무 연고 없이 삶의 터전을 꾸려가는 우리 탈북자들에게 좋은 정보는 말 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이다.
더 좋은 정보를 알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 정보검색은 필수요, 거기에 발로 뛰는 노력까지 있어야 만이 성공의 가능성이 보일 듯 말 듯 하는 치열한 경쟁시대가 바로 오늘이다.
내가 10년 전에 서울에 정착할 때와 지금 사회에 첫 발을 딛는 탈북자들의 심정을 가만 살펴보면 다른 것이 있다. 그때는 1년에 고작 50~60명 안팎의 탈북자들이 사회로 나왔기 때문에 서로간의 교류하는 정보가 없거나 적었다.
그러나 지금은 1년에 1,000여명의 탈북자들이 사회로 나온다. 당연히 정보교류에서도 광범한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또 제3국에서도 남한에 대한 정보, 특히 남한의 탈북자정책까지도 환히 파악하고 들어오는 실정이다.
그런데... 내가 보건데 일부 탈북자들 중에 이렇게 이론적으로는 박식하게 정보를 알고 오지만 정작 취업활동에서는 너무나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각만 말짱하지 실지 행동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속담에 “돌다리도 짚어보고 건너가라”는 말도 있다. 물론 옳은 말인데 그 돌다리를 짚어 보는데 너무나 우물쭈물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시간이 돈이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그만큼 돈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돈을 까먹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패인과 절망의 벼랑 끝으로 가는 속도를 높여 줄뿐이다.
대한민국! 따뜻한 온정의 손길도 있고 훈훈한 미담도 많은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사회이다. 가만히 골방에 들어 앉아있으면 누가 돈 1전도 가져다주지 않는 살벌한 사회이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는 북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만 골방에 들어앉아도 먹고 살 돈을 주었던 시기가 잠시 있었다. 그때는 1년에 1~2명씩 38선을 넘어온 사람들뿐이었다. 옛말로 된 과거의 일이다. 과거에 안주하지 말고 냉혹한 현실을 파악하고 적응해야 한다.
일단 취업의 눈높이를 자기 적성에 맞게 맞추어 놓고 좋은 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실지 부딪고 경험하세요. 자기 이미지나 금전적인 손해가 아니 되면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믿져야 본전이란 말이 있잖아요.
주눅 들지 마세요. 여기 남한 사람들 우리와 꼭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이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뭔가 있지요. 풀뿌리를 캐먹으면서도 모진 고문과 고통 속에서 이겨낸 강인한 생존정신이 있지요. 사슬과 총구 앞에서 검증한 그 투철한 생존정신을 부디 버리지 마시고 그 정신으로 여기 한국에서 도전하세요.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는 꼭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사선을 넘어온 용감한 우리 1만여 탈북자들 모두가 활짝 웃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펜을 놓습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꼭 성공하십시오.
2007년 3월 9일 서울에서 림일 씀
2007-03-09 17:47:28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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