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遺稿) 3-꿈으로 보이는 7년 > 탈북민 수기

본문 바로가기

탈북민 수기

유고(遺稿) 3-꿈으로 보이는 7년

작성년도 : 2004년 470 0 0
  • - 별점 : 평점
  • - [ 0| 참여 0명 ]

본문

유고(遺稿) 3-꿈으로 보이는 7

 

 

유고 3

 

꿈으로 보이는 7

 

남광수

 

3. 인간 동물원 (2000. 2 2000. 5)

 

나는 대학을 그만두고 그냥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이미 결정한 그대로 나의 약혼식을 오는 216일로 그냥 하기로 하였다. 나의 회복은 예상외로 빠르고 순조로웠다. 수술자리도 다 아물고 이제는 밥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조금씩 뛰어도 아무 일 없었다. 나는 그때 당시 내 주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잊혀지지 않는 28일 저녁밥을 먹고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여기가 광수네 집입니까? 난 동무인데 광수만나러 왔습니다.” 방안에서 들어보니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있었기에 어머니가 들어와 누가 왔다고 알려 주 길래 나가보니 초면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 남광수, 리주혁이를 알지? 주혁이하고 무슨 일이 없었는가. 범죄 혐의로 너를 체포한다.” 그는 체포장과 자기 신분증을 꺼내 놓았다. 신분증을 보니 군검찰소 예심원이었다. 죄 지은 일이 없다고 우겨봤자 소용이 없는 일. 예심원이 권총을 꺼내며 도망치거나 다른 일이 발생하는 경우 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검찰소로 압송되어서야 구체적인 전말을 알게 되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기가 막혔다. 앞에서 말한 이주혁이가 나와 두 번 거래한 외에 또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여 여자들을 넘겨 보내는 일을 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여러 사람과 접촉하다 보니 거기서 사단이 났다. 물론 그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꼬리가 너무 길었고 일 처리가 깨끗지 못하였다. 결국 그는 꼬리가 잡혔다. 그러나 여우같이 약고 승냥이처럼 나쁜 심보를 가진 그는 보위부에서 일하는 자기 친척을 발동하여 자수라는 명목으로 자기와 이미 전에 접촉했던 모든 사람들을 몽땅 불어 버렸다. 북에서는 자수에 대해서는 관대히 처리한다는 정책이 있다. 그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는 묘하게 빠지고 대신 남들을 물어 메친 것이었다.

주혁이와 접촉했던 나를 비롯하여 5명이 모두 붙잡히여 갇히게 되었다. 아무튼 나는 지금도 그 너절한 인간을 저주한다. 그 인간에 의하여 나는 일명 인간 동물원이라고 부르는 안전부 구류장에 석 달 동안 갇히게 되었다. 실로 평상시에 가증스럽게만 여겨 오던 철창 속에 바로 내가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나한테 죄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죄를 짖게 한 장본인은 누구이며 그런 길을 걷게 한 사회는 또 어떤 사회인가? 법이 공정하다면 당연히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면이 있고 뇌물이 있으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도 빠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만 걸려든다. 나는 그것이 제일 분하고 억울하였다. 그래도 거기서는 어쨌든 끝까지 이겨내야 했다. 나 때문에 마음 썩이실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책임지지도 못할 사랑을 한 나 자신 때문에도 가슴아팠다.

처음에 나는 철장속, 구류장이 10개인 감방에서 5호 감방에 구류되었다. 당시 5호 감방에는 죄수가 모두 10명이었다. 도강죄, 구타죄, 협잡범, 강도범 모두 우악스럽고 포악스러운 자들인데다가 철창 속에서 91년 있은 자들이고 보니 피골이 상접하여 말 그대로 저승사자들 같이 보이었다. 위생 설비라고는 조그마한 수도꼭지 하나에 변기 한 개가 전부이고 바닥은 그 어떤 난방 설비도 되지 않는 나무 널빤지로 된 냉돌 바닥이었다. 먹는 음식이라는 것도 밀쌀에 통강냉이 그리고 거기에 메주콩을 섞은 반 공기 되나마나한 밥이 전부였다. 이런 걸 먹고 추운데서 떨면서 새우잠을 자고 목욕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다 보니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고 해도 얼마 견디기 힘든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은 구류장내 규율이었다. 두 줄로 맞추어 하루종일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졸거나 말했다가는 기합을 받았다. 기합이라고 하는 것은 계호원들(간수)이 때리는 매 외에 죄수들끼리 때리고 치게 하는 것을 말했는데 한 번 당하면 머리가 터지거나 모두가 지쳐 쓰러져야만 그만둔다.

나도 말을 잘 듣지 않아 여러 번 기합을 받았다. 내가 처음 5호 감방에 들어섰을 때에는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었는데 그 중에는 아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그도 나와 비슷한 일로 구류된 사람이었다. 식사시간이라 일명 개밥이라고도 하는 음식 아닌 음식들이 인원수에 맞추어 들어 왔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에는 또 거기 구류장다운 격식이 필요하다. 밥그릇을 앞에 놓고는 감방장이 계호원에게 선생님. 5호 감방은 밥 먹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고하고 간수가 먹거라.”할 때에만 먹는다. 먹으라는 말이 없을 때 먹으면 밥을 모두 빼았기거나 또 열 명 모두가 철창에 매달리는 기합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절차를 밟아 먹기 시작하는데 정작 나도 먹자고 보니 음식이 구역질이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하여 아는 사람을 주려는고 하는데 허약자 같이 생긴 감방장이 나보고 밥을 자기한테 내놓으라고 하였다. 새 죄수가 들어오면 마땅히 한 두끼쯤은 오랜 죄수들과 감방장에게 밥을 고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괘씸하게 생각되었다. ‘내가 왜 내 밥을 그에게 주어야 하나?,

야 임마. 밥 보내라는데 뭘해? 이 새끼 빨리 보내지 못하겠어 죽구싶어 안달이났는 모양이네.” 맙소사. 저 허리 부러진 승냥이 같은 자식이 나보고 큰소리 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 형님아. 형님은 허약자 같은데 소화를 시키지 못해. 그리서 이 밥은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겠어.” 이렇게 대꾸하고 내가 아는 사람 앞에 밥그릇을 놓아주었다. 순간 모두가 왁하고 손잡이도 없는 숟가락들이(참 구류장 안의 숟가락들은 모두 자루를 잘라버려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으로 무슨 흉기를 만들 수 있다는가?) 밥그릇에 몰려들어 서로 밥을 먹겠다고 실갱이가 벌어졌다. 실제로 먹이를 놓고 싸우는 승냥이들 같았다. ‘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이 누구인데? 그들도 따져보면 나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참으리라 생각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다 먹고 앉을 자리를 찾는데 밥을 바치라고 하던 감방장이라는 자식이 나를 제일 쿠린내가 나는 변기통 옆에 앉으라는 것이었다. 새 죄수는 오면 처음에 당연히 변기통 옆에 앉으며 다른 새 죄수가 들어 올 때까지 바닥 청소와 변기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청소야 모두가 돌아가며 하는 것이 순서지. 새사람이 들어왔으니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하자.” 우정 삐뚜렁 소리를 하여 약을 올려 주었다. 그러자 간방 죄수들 중 건강해 보이는 한 놈이 나섰다. “고 새끼 그거 말짼 새끼구나. 이 새끼 너 좀 죽어 보겠어.” 그러자 감방장이 다가와 앉아 있는 나를 발로 걷어찼다. 한대 맛을 보면 내가 수그러들 줄 알았던 모양이다. 허약 같은 늑대 새끼가 나를 때리다니, 일어서면서 한 대 먹이고 발로 걷어찼다. 물론 그는 헛개비같이 벌렁 나가 넘어졌다. 감방이 때리고 치고 받는 소리 때문에 쿵쿵거렸다. 그러자 곧 간수가 다가와서 고함치더니 무작정 나보고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권총 소재대를 뽑아 세차게 후려치는 것이었다. 몇 대 맞았더니 손등이 단번에 피가 터지고 시퍼렇게 부어났다. 그것이 나의 첫 구류장 입소식이었다.

이런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나는 먹고 자며 심문을 받아야 했다. 심문에서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였고 때로는 정당성까지 운운하며 수그러들지 않았다.

남광수, 너는 리주혁이와 공모하여 2차에 거쳐 조선 여성 5명을 들을 중국에 넘겨주고 인민폐로 도합 400여원을 리주혁이한테 넘겨주지 않았는가?”

나는 중국으로 간 일이 없다. 더구나 여자 5명을 중국에 팔아 넘겼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주혁이 부탁을 받고 보초나 서 주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인민폐로 100원을 가졌다. 그 외에 한 일이 없으며 있다면 그것은 주혁이가 꾸며낸 거짓말이다. 나는 인심매매란 말만 들어봤지 실천한 일이 없다. 정 그렇다면 리주혁이와 맞대면이라도 시켜달라. 나는 죄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을 한다고 때리고 그러다가 힘이 진하면 또 가두어 놓고 우리의 사건 처리는 나 하나 때문에 석 달이라는 긴 기간 이어졌다. 이 기간에 나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보고 듣는 것도 많았다. 이 해가 나의 아버지 환갑되는 해이다. 320일로 예정된 아버지 환갑이 나의 체포로 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무슨 기분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철창 속에 넣고 환갑상을 받겠는가. 우리 아버지는 그 시기 심장병으로 고생하셨다. 그러면서도 아들을 살리겠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없는 살림에도 뇌물을 주었다.

내가 부모님들과 애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0330일 나의 생일날이었다. 나는 그 때 병원에 있었다. 아버지는 병 보석으로도 나를 석방시키려고 하도 애쓴 덕에 석방까지는 되지 못했지만 잠시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아침에 부모님들과 동생들, 그리고 애인이 나에게 면회를 왔다. ‘! 그때 그 참담했던 심정을 어찌 말이나 글로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들은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위로해 주고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아침에 면회 왔을 때 왜 내가 그들한테 따뜻한 말 한 마디도 해주지 못하였을까? 다시 못 볼 줄 알았더라면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웃음이라도 보여 주었을 것을 그때에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불만스러워 역겨워만 보였던 것이다.

그날 오후 나는 갑자기 철수되어 구류장으로 끌려갔다. 이것을 모르는 부모님들과 애인은 저녁에 음식을 해 가지고 병원에 다시 찾아 왔다고 한다. 그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우리 어머니는 너무도 상심하여 기절하였고 사랑하는 애인도 너무 슬피 울어 겨우 진정시켜 돌아갔다고 한다. 감방으로 돌아와서도 가슴에 서렸던 불만은 가셔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히 같은 감방의 다른 동료들을 보고 시비를 걸어 싸움까지 하고 또 매는 맞았다.

재판을 받기 전에 죄가 확인된 죄수는 머리를 빡빡 깍는다. 정말이지 그곳은 인간 동물원이었다. 원래 동물원이라 하면 여러 짐승들을 가두어두고 구경시키는 곳을 말 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동물원의 동물들은 그 자신들이 살아가기는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던 동물원은 과연 어떠하였는가? 이와 바퀴, 빈대가 우글거리고 사람들 모두가 갈비뼈만 아롱아롱하고 눈 확이 푹 꺼져 들어간 원숭이 같은 몰골의 죄수들, 정말이지 산 채 세워놓고 인간골격 구조를 연구하기에 딱 적합하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서로 누워서 자는 것을 보면 우리도 과연 사람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반항심이 생겼고 복수의 심정이 저절로 불타 올랐다. 위생사업을 하라고 할 때면 모두가 벌거벗고 이 잡이를 하였다. 이가 몸에 어찌나 많은지 손톱들이 금방 새빨개진다. 머리를 깎은 사람, 긴 사람, 큰사람, 작은 사람, 모두가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몰골들이었다. 맞아서 퍼렇게 된 사람, 그런데도 뭐가 좋은지 때도 시도 없이 그냥 웃기만 하는 사람, 울기만 하는 사람 그곳은 정말 인간 동물원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이곳에 데려다 구경시키면 슬퍼하고 불쌍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우스워 눈물 흘리며 웃을 지도 모른다.

나는 그새 여러 가지로 머리를 깎지않았으나 재판을 받은 후에는 깍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00427일 드디어 재판을 받았다. 나와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던 동료 5명도 함께 형기를 받았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형사소송법 부칙 452, 인신매매 죄로 인정받고 한 명이 15, 2명에 10, 또 한 명에 13, 나는 6년으로 판결받았다. 재판이 끝나고 재판장을 나오니 다른 사람들의 부모 처자들은 음식 꾸레미를 해들고 찾아와 울며 불며 야단들을 하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우리 집 식구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나는 다른 집안 사람들이 해온 음식을 조금씩 갈라 먹었는데 그때의 그 서러운 마음을 어떻게 다 표현하겠는가? 구류장으로 돌아올 때 나는 마음이 서글퍼졌으나 복수해 보려는 심정은 배로 높아졌다. 동무들이 근심 어린 눈길로 바라볼 때 나는 아무 일도 아닌 척 웃었지만 속에서는 실로 피눈물이 흘렀다. ‘걱정 말고 잘 있으라 구류장 동창들이여. 언제인가는 오늘의 이 일들을 피눈물로 계산할 때가 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뒤늦게 우리 아버지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는 심장 출혈로 하여 422일 저녁에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실로 이 못난 아들을 위하여 하실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참으로 어머니의 무릎에서 숨질 때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뒤 늦게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종일토록 음식도 먹지 못하고 울었다. 정말 아들로서 나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가. ‘, 나의 아버지! 한 생을 수령과 당에 충실한다고 모든 것을 다 바치셨던 아버지.’ 숨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아들을 위하여 눈을 감으시지 못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나는 내가 받은 형벌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의 죄는 인신매매 죄가 아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권리이다. 그 권리를 가지지 못하면 인간은 인간이라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여 나는 정말로 제 나라에서는 어떻게 하여도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제 나라는 아닐지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보내 준 사람일뿐이다. 그런데 왜 내가 죄인이란 말인가. 내가 죄인이라면 그들을 자기 나라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게 한 사람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죄인은 우리 인민의 수 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신 수령이라고 떠벌리면서 인민들의 삶을 외면하는 김일성, 김정일이다. 수령이 망쳐논 그 땅에서는 더는 살 수 없어 타국으로 떠나가는 그들에게 편의를 보아준 내가 죄인이란 말인가. 물론 내가 법정에서 이런 말을 하였더라면 영낙없이 사형에 언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사실이다.

참으로 그때 나는 말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는 세상을 마음속으로 저주하였다. 하여 나는 200057일 드디어 암흑이 기다리는 인간 생지옥 조선의 오스벤찜 제12 교화소(함북도 회령군 정거리)로 끌려갔다. 거기서는 또 어떤 운명이 나를 기다릴 것인지

 

 

 

2004-11-19 21:00:03

출처 : 탈북자동지회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