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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작성년도 : 2006년 65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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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 푸른바다

 

 

한밤중 소스라치듯 놀라 깨어보니 2시도 안 넘은 한밤중이었습니다. 먹구름이 감도는 음산한 하늘을 바라보니 내 마음 역시 저 하늘과 다를 바가 없군요.

 

불현듯, 또 언제나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향생각에 잠 못 드는 이런 밤이면 가만히 라디오를 켜놓고 한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때로는 비 내리는 한강가에 홀로 서서 괴로우나 슬프나 정겨웠던 고향생각에 홀로 눈물짓기도 합니다.

 

인생은 이런 것이겠지요. 늘 혼자서 늘 그리워하며 사는 것이겠지요. 바쁜 하루 일에 지친 몸과 마음에 침대에 쓰러지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고향과 가족생각에 한밤을 모되기며 지새우는 것이겠지요.

 

이른 새벽이면 어머니가 짓던 구수한 밥냄새와 학교준비에 바쁜 어린동생의 발걸음소리가 사무치게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홀로 길거리를 거닐 때면 친구들과 어깨 겯고 거리를 누비던 그 시절이 뼈저리게 그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갈앉은 맘을 달래려 공원의 벤치위에 앉았다가도 다정히 팔짱끼고 걸어오는 연인들 모습에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사무쳐 눈물지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너무 여려서일까요? 이 자유의 땅에 와서 너무도 해이돼서 사는 것일까요? 이렇게 아무렇게 자기감정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자유도 사무치게 그리웠던 나에게 이런 자유만 있으면 그 무엇도 바라는 것 없을 것 같던 이 마음에 아마도 새로운 욕심이 생겼나봅니다.

 

저에게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천진난만한 꿈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유명한 밴드 가 되어 노래 부르고 싶었던 시절도 있었고요, 지금도 때로는 낡은 기타를 타며 고향의 향수를 느끼기도 합니다.

 

제가 아마 소학교 3학년 때였나 봅니다. 전국적으로 진행된 글짓기 경연에 참가하고 싶어 그토록 밤을 새우며 나름대로의 유치한 글을 쓰던 때가 말입니다.

 

지금도 저희 집 제방에는 그때 타온 문학상장과 메달이 걸려있을 테지만 지금처럼 그때일이 허구스럽고 진실스럽지 못한 적으로 느껴진 적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에는 50년분 단의 역사가 말해주는 슬픔이 있었습니다. 베적삼하면 남북한 어디서나 지금은 구경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지만 나또한 그걸 처음봤을땐 너무도 신기하고 놀라워 손에 놓을 수 없었던 옷이었지만 그 옷은 우리민족모두가 안고 있는 분단의 역사를 안고 있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해방전 산골에서 사셨던 저의 고조할머니는 너무도 먹고사는 것이 어려워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여기 호남 벌의 어떤 농부에게 시집을 보냈답니다. “너라도 벌방에서 이밥을 먹고살 어라이런 맘에서 보낸 딸이었지만 그때 울면서 떠나던 딸의 모습을 보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답니다.

해방이된 후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3.8선이 막히면서 이루실 수 없으셨고 그때 겨우 푼전을 모아 자식들의 옷을 지우시면서 할머니는 멀리 시집보내신 딸을 잊지 않으셨답니다.

 

그렇게5년이 지나고 6.25가 터지고 할머니와 온가족은 피난길에 올랐답니다. 그러나 늙으신 몸에 그 어려운 피난길을 결국 할머니를 노상에서 쓰러지게 만드셨고 할머니의 보짐속에서 나온 마지막 유물은 바로 그 시집보내신 딸을 주시려고 만드신 베적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숨을 거두시면서 고조할머니가 하신말씀이 이 옷을 꼭 희봉이에게 전하라는 말씀이셨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그 옷을 저의 아버지에게 맡기시고 돌아가셨고 저희 아버님조차도 그 옷을 전해드릴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이 가슴 아픈 남북분단의 현실도 너무도 어렸던 저의 가슴엔 응어리로 남았었고 그 응어리로 표출된 글을 낳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글도 분단의 장본인을 미제와 남조선괴뢰라는 정치적 색채가 부여되지 않고는 제대로 이어질 수가 없었고 결국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12살 북한소년들의 이념을, 나아가서 남북분단의 장본인을 왜곡하는 그런 글이 되고 말았던 겁니다.

 

물론 제가 남한에 온 후에야 그 글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고 돌아가신 고조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죄를 짓는 일인 것임을 알았지만 지금도 저의 마음은 늘 무겁기만 합입니다.

 

처음 여기 왔을 때 고모할머니를 찾고 싶고 고조할머니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안다닌 곳이 없었습니다. 고모할머니가 시집가셨다는 고장이며 구청이며 시청으로 하여 안다닌 곳이 없건만 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저는 이 땅에 와서도 고조할머니의 마지막 마음마저 전해드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셨으면 고향생각에 눈물 흘리실 고모할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네요. 닿으면 지척일 고향을 새라면 날아서라도 갈 고향을 가지 못하는 그런 분단의 아픔이 어찌 저희 한 가정뿐이겠습니까.

 

근데 그 아픔을,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겪으셔야했던 그 아픔을 이제는 저희들이 겪고 있습니다. 실향민 2세가 되어 멀리 북한이 바라보이는 임진강가에서 때로는 타향의 강가에서서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땅을 보며 솟구쳐 오르는 오열에 떨기도 합니다.

 

가족들이 모여 즐기는 설날이면 조상님들의 묘소를 돌보며 인사드리는 추석날이면 멀리 임진강가에서 고향하늘 우러러 절을 하며 통곡하기도 합니다.

 

저는 고향생각이 소스라칠 만큼 지겹기 도합니다.

저는 고향생각이 죽도록 싫어져 제 몸을 혹사하기도 합니다.

 

나도 실향민 2세가 되어 앞으로 생기게 될 나의 아들딸에게 저 강너머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가 계신단다. 이렇게 얘기해줘야하는건 아닐까요?

 

사진 한장 없는 가족들의 얼굴을 말로써 그려주며 눈물짓는 건 아닐까요?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온 그 시절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과연 이 땅의 분단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하고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인간이 자신의 권력욕과 안락을 추구하기위하여 수많은 실향민과 가족의 생이별을 만들어놓은 자가 누구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이 무엇인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가족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다정했던 친구들이 얼마나 그리운가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 수많은 북한국민들중에서도 내가 어떻게 선택받은 인간이었는지를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할지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내가 고향에 하루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7000만 동포의 원쑤이며 증오의 대상인 김정일을 하루빨리 없애는 날이 나의 모든 소원과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고생하실 나의 삼촌들을, 헤어진 이 아들을 그리워하며 밤을 새우실 부모님들을 만날 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두 함께 만나서 기쁨에 울고웃을 날을 떳떳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살아야할지 알 것 같습니다.

 

2006719일 푸른바다

 

 

2006-07-19 14:24:36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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