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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정착의 지름길은 실력을 닦는 길 - 이규창

작성년도 : 2004년 78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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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의 지름길은 실력을 닦는 길

- 이규창

 

 

나는 북한에서 23년간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후 남한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남한에서의 17년은 흐른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617월 평남시에서 태어난 나는 유년시절을 보낸 후 노동당의 소환에 의해 금성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대남침투 임무를 담당하는 중앙당 작전부에 배치되었다. 3년동안의 고된 남한침투 훈련을 받고 8312월 이미 남한에 침투해 있던 공작원을 접선하여 북으로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고 부산 다대포에 침투하였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대포에서 국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된 이후 한동안 나는 당에 대해 원망은커녕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남한 수사기관의 조사에 저항했다. 그런 내가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남한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부터였다. 저마다 어디론가 움직이는 생기있고 밝은 모습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가족끼리 손에 손을 잡고 행복해 하는 모습들...그들의 모습에는 수령도 당도 사상도 없었다

 

사회적 생명체인 인간에게 당과 수령과 사상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배웠는데 남한사람들은 무엇으로 행복을 찾는가? 자유민주주의를 몸으로 체득하면서 내 자신이 임무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었고 이 땅에서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했다. 8710월 정부의 은전으로 사회에 배출된 후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국민은행에 입사할 수 있었다. 사상이라는 에너지와 당의 조작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이 사회를 잘 모르는데서 오는 혼란이었다. 지금은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사회적응 교육과 직업교육을 체계적으로 잘 시켜주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시스템이 취약했던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스스로 실력을 키워 남한사람들과 당당히 겨뤄보자. 공정한 경쟁에서 이기는 순간이 내가 진정으로 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급한 대로 서울 신설동에 있는 모 입시학원에서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얻어 독파하기 시작했다. 쉽게 터득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워낙 북한에서 배운 것과 내용이 틀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체계적인 실력배양의 필요성을 절감한 나는 국민은행의 배려를 받아 88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의욕 한 가지만으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학업진도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쟁쟁한 학우들과 실력으로 겨루기에는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그로부터 4년후 졸업할 때까지 나의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지식 거렁뱅이에 다름 없었다. 교수님은 물론이고 조교,학우,후배 등 닥치는 대로 붙들고 질문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 입학 초기에는 학업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일부러 동생뻘 되는 같은 학과 학생에게 술도 사주고 당구도 같이 치며 어울리려고 노력도 했다. 눈물겨운 노력끝에 세무회계,관리회계,중급회계 등 전공과목 학점을 무난히 취득할 수 있었으나 회계학원리 과목은 결국 F학점을 받았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경리학원과 써머스쿨까지 다니면서 기어이 실력으로 학점을 취득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대학생활 4년동안 학점과의 투쟁에서 살아남고 보니 어느 정도 자신감과 함께 전공분야에 대한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대학공부를 마치고 921월부터 국민은행에서 정식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4년간 아무 걱정없이 공부만 할 수 있게 해준 국민은행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직장동료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드디어 올 것이 왔다. 944월 국민은행 고시라고 불리는 승진시험이 다가왔던 것이다. 3,500여명의 응시생 중에서 단 250명만이 선택되는 난관중의 난관, 내가 이 땅에 첫 발을 디디면서 스스로 약속대로 남한 사람들과의 동등한 경쟁을 통해 진정으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격을 검증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난다 긴다하는 직장 동료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어려운 시험,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6개월 전부터 필수과목인 여신(대출),수신(예금),외환(무역)과목과 선택과목인 일반상식 공부에 돌입했다. 업무시간에는 짬짬이 퇴근후에는 독서실에서 밤 12시까지 귀가후에는 새벽 2시까지 휴일에는 하루종일 책과 씨름했다. 얼마나 기본서를 읽고 또 읽었던지 나중에는 내용을 줄줄 욀 정도가 되었다

 

드디어 시험날이 다가왔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공부한 덕에 시험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얼마나 손이 떨렸던지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였다. 1년 같은 일주일이 지나간 후 받아 본 합격자 명단에는 내 이름이 당당히 올라 있었다. 직장 선후배들과 동료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축하인사도 뿌리치고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때 그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시험을 통해 내가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임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고 또 직장에서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별 어려움없이 생활해 오고 있다. 직장생활과 함께 여러 모임에 참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애경사에는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기도 하고 금융,부동산,주식 등 경제에 관한 한 남한에서 태어난 보통사람들 보다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기도 하는 그러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정도면 정착에 성공한 셈이 아닌가?

 

나는 우리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탈북자들에게 먼저 실력을 배양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일단 대학이나 직업훈련기관에 들어간 후에는 동료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것을 권한다. 탈북자임을 내세워 학업을 게을리 한다면 스스로 패배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희망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힘 닫는데까지 노력하고, 통일된 후에는 북한의 행정체계를 우리의 행정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북한지역의 군과 리 및 면 단위 행정기관을 순회 지도하는 행정지도관이 되고싶다. 그리고 이러한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2000.6 이 규 창

 

 

2004-11-18 00:15:48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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