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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지난 세월을 후회하지 않을만큼 열심히 살아보련다 - 곽경일

작성년도 : 2000년 619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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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을 후회하지 않을만큼 열심히 살아보련다

- 곽경일

 

 

나는 황북 금천군 문명리에서 21녀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군에 입대하여 1군단 민경대대에 근무하던 중 강릉 잠수함 사건으로 떠들석 하던 해인 199610월 남한으로 귀순하여 지금은 이 사회의 직장인으로, 그리고 처와 자식을 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사회적응 교육을 받을 때는 모든 것이 생소하여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적응교육을 마칠즈음 담당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우리가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다. 목마른 사람을 물가에 데려다 줄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물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각자의 몫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다.

 

수개월간의 정착교육을 마치고 정부의 배려로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취직하였다. 주변에서는 아직 나이가 어리니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더하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야간대학이라도 진학하여 공부하기로 하고 우선 경제적으로 빨리 자립하기 위해 취직을 선택했던 것이다.

 

회사에 출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겪은 일이다. 회사동료들은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아침에 한 잔, 점심전에 한 잔, 점심 식사후 한 잔, 이런 식으로 하루에도 5-6잔 정도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나도 동료들이 사주는 대로 거절하지 않고 그 쓰디쓴 커피를 마구 마셔댔다. 그러자 며칠 지나지 않아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더니 급기야 며칠을 뜬 눈으로 보내야 했다. 자연히 눈이 충혈된 상태로 출근하는 때가 많아졌다. 이때마다 동료들은 사정도 모르고 "혼자 외로워 술을 많이 마셨구나"하면서 점심시간에 해장국을 사주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주 부딪히는 것은 언어 문제였다. 회사내에서 영어나 한자용어를 많이 사용하다 보니 영어와 한자를 모르는 나는 눈뜬 소경이었고 귀 열린 귀머거리였다.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책상에 않아서 손톱만 깎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런 한심한 나의 모습을 보던 부장님은 영어와 한자 자습서, 민법과 업무관련 규범집을 한아름 안겨주며 "한달간 시간을 줄테니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다. 이에 자극을 받은 나는 낮에는 일을 배우고 밤에는 한자와 영어공부를 하며 1개월을 보냈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으로 이윽고 내게도 업무가 주어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의 돈을 취급하는 대출업무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업무였다. 회사에서 나를 믿고 맡긴 일이었기에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다. 실무교육을 받고 곧바로 업무를 시작하였는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민원인들과 대출 상담을 해보니 업무내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막히는게 많았다. 그리고 대화도중 나의 북한식 말투때문에 민원인들이 이상항 눈초리로 보는 경우가 허다했고 심지어 상담을 기피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틈나는 대로 공부해가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한 번은 실수로 거액을 대출해주는 일이 벌어졌다. 대출금을 환수하느라 일주일간 서울시를 누비고 다녔는데 결국은 대출금 전액을 환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 내가 환수를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물러설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업무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민원인들과의 상담도 원활히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대출업무가 어느정도 정상궤도에 오르고 일정기간이 지나자 나에게 새로운 징수업무가 주어졌다. 돈을 체납하고 있는 사업장의 재산이나 금전을 압류하여 공매하는 징수업무는 체납 사업장 사용주와 마찰을 항상 대동하는 업무이다. 한 번은 6개월 이상 체납된 회사의 차량을 압류하여 견인하는 과정에서 사장이 화염병을 들고 자결한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견인을 막은 적도 있었다. 결국은 경찰이 동원되어 정리가 되었지만 한동안 씁씁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싶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였다. 노사문제였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대립뿐만 아니라 노조원과 비노조원과의 대립도 있었다. 이러한 대립속에서 동료들과 우애를 다져 나갔으며 식사를 하면서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해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을 대할 때 계층적인 면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다가갈 때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일에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증을 서주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까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보증에 대한 부담도 그만큼 늘어나기 마련이다. 보증 때문에 유능한 직원들이 법원의 압류통지를 받아 급여가 차압되고 가정이 파탄되어 떠나가는 모습도 가끔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몇 명의 사람들에게 보증을 부탁받았으나 거절한 적이 있지만 어쨌든 보증문제는 어느 교수님이 하신 "사람은 지식보다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사람은 말없는 장수와 같다"는 말씀처럼 지혜를 발휘하여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올해로 이 곳에서 생활한 지도 만 4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은 회사에서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으며 회사의 배려로 야간대학도 다니고 있다. 그리고 결혼도 해 아이가 생겼고 어느덧 2살이 되었다. 이제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나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일과 때로는 힘든 상황이 닥쳐올 수 있겠지만 내 나름대로의 지혜와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더 나은 미래로 가기를 희망하고 갈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일궈온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통일이 되어 가족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날 부모님 앞에서 "지난 세월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일해 나갈 것을 다시 한번 더 가슴깊이 새겨본다

 

20009월 곽경일

 

 

2004-11-18 00:16:54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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