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욕보인 죄 - 최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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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욕보인 죄
- 최명식
보안서 구류장바닥은 차디찼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머리를 숙인 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나는 종시 답을 찾지 못하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아마도 내겐 3년 아니면 5년 징역형이 선고 될 거다. 지은 죄를 생각하면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봐준다고 하고선 벌써 보름째 아무 소식이 없다.
그 동안 겪은 구류장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두 번 조사를 받았는데 두 번 다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러면서도 결코 뱉을 수 없는 말, 끝까지 지켜야만 할 비밀이 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젠 좀 힘에 부친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버티기는 무리다. 포악한 보안서원을 이기기에는 내 의지가 너무 약하다.
이제 세 번째로 불려나갈 때가 온다. 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앞니 모두가 건들거린다. 구둣발에 채여 벌써 어금니 두 대가 나갔다.다시 한 번 채이면, 주먹 한 대라도 맞으면 아마 견뎌낼 이가 없을 것 같다.
나는 두려운 눈길로 창살 너머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언제 내 이름을 부를지 두려워 몸이 떨린다.
함북 명천탄광 화약고 보위대원으로 입직해 총을 메고 보초를 서게 됐을 때 나는 무척 기뻤었다. 깨끗한 보위색 제복을 입고 거리를 다닐 때면 마치 꿈이라도 이룬 듯 어깨를 잔뜩 치켜세우고 다녔다.
지하에 내려가 석탄을 캐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은 하늘에 닿는다. 또 보위대엔 아무나 들어오는가? 선발된 자에게만 차례지는 명예, 그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러던 내게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문제는 그 오그라질 믿음이라는 데서 터졌다.
하루 두 끼 안남미로 지은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보초를 서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뭔가 ‘보충식사’가 따로 없으면 도저히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또래 대원들은 매일 농장으로 나다니며 먹을 것 사냥을 했다. 나중엔 배포가 커져 축산반 거위나 오리, 또 가정집 닭이나 토끼, 심지어 개까지 마구 도둑질해 외진 곳에 있는 보위대로 끌고 왔다.
보위대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위수구역에 철조망을 치고 있어 일단 어떤 물건이든 예까지 끌어오기만 하면 신성불가침이다. 그러다보니 이 도둑행각이 점점 집단적으로 조직화 돼 갔다. 그만큼 우리 식탁은 풍성해졌다.
어떻게 알았는지 탄광의 중급 간부들이 구수한 고기냄새를 맡고 보위대로 슬금슬금 기어들었다. 나중엔 당위원회 부원, 청년조직, 직맹 조직책임자까지 드나들었다. 간부들 중 가장 자주 들린 사람이 바로 초급당 부비서 임철수다.
군 특수병종 제대 후 성분이 좋은 덕에 정치대학 추천을 받아 졸업한 후 탄광 초급당위원회 부비서로 발령 받은 사람이다. 성격도 남자다워서 무척 호방했다. 도둑질한 고기에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취기를 대고 은근히 부추기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비서 등을 믿고 대원들이 더 기승을 부리며 밤이슬을 맞은 것 같다.
아무튼 그 불똥이 순진했던 내게도 튀었다.
그때까지 나는 절대 도둑질만은 안한다며 단 한 번도 밤이슬을 맞지 않았다. 그러나 대원들의 성화가 불같았다. 공짜음식 얻어먹는 것도 염치를 알아야 한단다. 누군 뭐 좋아서 이 짓 하는 줄 아냐며 나를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나는 제복을 벗으면 벗었지 그 짓은 절대 안한다고 뻗댔다.
어느 날 보위대장이 내게 다가와서는 모나게 굴지 말고 대원들과 잘 어울리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당에서 다 뒤처리해 줄 거라는 말도 했다. 그가 말하는 당이란 곧 부비서 임철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난 금방 알아차렸다. 콕 찍어 말은 안했지만 대장의 말은 남과 같이 도둑질을 하라는 거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임철수라면 믿을 수 있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게 한참 높은 직위에 있지만 함께 먹고 마시며 인간적으로 친해진 사람이다. 특수병종에서 군 생활을 하며 익힌 기묘한 동작들을 우리 보위대원들에게 보여주며 손수 가르치기까지 한 멋진 사람이다. 그가 정말로 봐준다면 무엇을 주저하랴. 그의 눈 밖에 나기가 어쩐지 싫었다.
나는 그날 밤으로 통 크게 혼자서 개 잡이를 떠났다.
한국과 달리 북에서는 개를 사슬에 매어두지 않는다. 제멋대로 먹이를 찾아 헤매는 개를 잡기란 사실 묘기만 알면 식은 죽 먹기다. 고깃덩이 하나만 있으면 된다. 마침 부엌에 거위고기 토막이 있어 나는 그것을 비닐봉지에 조금 싸들고 나섰다. 내 손엔 고기봉지 말고도 민지가 있는 낚시도 있다.
자정이 지난 밤, 마을에 오자 쌀쌀거리며 돌아다니는 개가 보였다. 정전이라 괴괴한 주변엔 인적도 없다.
나는 혀끝으로 소리를 내 개를 부르며 고기덩이를 부수려 뜨려 조금씩 던졌다. 15kg쯤되는 큰 개다. 개는 으르렁 거리면서도 코끝에 감쳐드는 고기냄새에 이끌려 조심조심 다가온다.
나는 될수록 인자한 표정을 짓고 개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개는 힐끔거리면서도 정신없이 고기를 주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조금 더 던졌다. 이번엔 아예 땅에 떨어지기 전에 냉큼 받아먹는다.
바로 요 때라고 생각한 나는 줄을 손에 단단히 움켜쥐고 낚시에 고깃덩이를 끼운 다음 그것을 개에게 던졌다.
텁, 날아오는 고깃덩이를 싫어서 안 받을까? 개는 받아 물자마자 씹지도 않고 꿀꺽 통째로 목구멍을 넘긴다. 한마디로 이건 머저리 개다. 하기야 사람도 먹을 것이 없어 쩔쩔매는데 개가 어찌 배고프지 않으랴.
꿀떡 배속 깊이 삼키고는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지금 무엇을 삼켰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슬슬 줄을 잡아 당겼다.
이쯤 되면 개는 찍소리 못 내고 당기는 대로 졸졸 따라온다. 왜 그러는지 그건 내가 개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날 밤, 숙소엔 또다시 환성이 터졌다.
대기 근무조가 있어 즉시 개를 잡고 솥에 넣고 끓였다. 물론 존귀하신 부비서님에게 아침식사 초청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 식사시간이 되자 농장청년 대여섯이 몽둥이를 들고 보위대로 올라왔다.
보초소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알아 볼 새도 없이 우르르 몰려든 청년들이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솥뚜껑부터 열어젖혔다. 무두기 담겨 있는 개고기를 보는 순간 그들 얼굴엔 냉소가 어렸다.
“최명식이 누구야? 좋게 말할 때 나와 봐!”
그 중 하나가 소리쳤다. 보위대장도 없는 때라 누가 제지 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나는 속이 섬뜩했다. 그건 내 이름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모두 제대군인 같아 보였다. 대적하다간 우리 같은 것은 당장에 박살낼 기세다.
나는 나설 엄두를 못내고 못 박힌 듯 움직이지도 못했다.
소리친 사람이 다시 빽 소리쳤다.
“다 알고 왔어. 여기 장갑에 이름이 적힌 것이 안보여? 새끼들 화약을 지키랬지 도둑질을 해? 안 나와?”
아이쿠, 나는 그제야 장갑 한쪽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개를 꼬시는데만 정신이 팔려 줄에 이은 낚시를 꺼낼 때 장갑을 벗던 일이 그제야 생각난다. 제복과 함께 내준 장갑이어서 모두 안쪽에 이름을 써 놓은 것이 이렇게 도둑질 증거로 발견되다니!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 길로 나는 보안소로 끌려왔다. 우악스런 청년들에게 엉덩이를 채이면서도 언젠가 보위대장하던 말이 생각나 그런대로 위안은 되었다.
그러나 웬걸 보름이 지나도록 모진 매를 맞으면서 버텼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다.
담당 보안서원은 내게 도둑질한 고기를 어느 간부가 와서 먹었냐고 따졌다. 나도 들은 말이 있어 그것만은 끝까지 지키리라 다짐하며 입을 봉했다.
그러나 날짜가 갈수록 재판을 받고 판결을 받는다고 생각하자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동료에 대해 서운한 감정까지 소용돌이쳤다.
분명 일이 터지면 뒤를 봐 준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건 뭐야? 여러 차례 도둑질한 놈들은 멀쩡하고 어쩌다 한 번 손댄 내가 잡혀 그간 없어진 것 모두를 책임지고 혼자 감방에 가게 생겼다. 이런걸 보고 똥 싼 놈은 도망가고 방귀 뀐 놈만 잡힌다고 했던가? 비는 하늘이 내려주고 절은 부처님이 받는다지만 그와는 정 반대로 재수 없는 나락에 떨어져 버린 내 신세가 참으로 가긍했다.
드디어 세 번째 취조시간이 왔다.
심문실로 나가자 담당 보안관이 파란 시선으로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게 두려워 고개를 숙였다.
“이 자식,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까지 버티면 난 네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알아서 해라. 앉아!”
조심스럽게 자리에 않는 내 엉덩이를 담당관이 사정없이 걷어찬다.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 자식 앉으라니까 진짜로 앉아?”
번쩍, 바른 눈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팔을 걷어 올린 담당관 이마엔 어느새 땀이 번들거렸다. 맞는 사람보다 때리는 사람이 더 힘든 듯 한참 노려보며 씩씩거리던 보안관이 제풀에 의자에 주저앉아 씨벌였다.
“오늘 바른 말 안하면 죽을 줄 알아.”
온 몸이 덜덜 떨린다. 뼈마디가 부서지 듯 저려왔다. 이제 무얼 더 바라고 이렇게까지 맞으며 버텨야 하는지 그 이유가 희미해졌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보안관이 묻는 대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도둑질 누가 시켰어?”
“보위대장이 시켰습니다.”
“네 놈 착한 줄 알아, 뭐라고 하며 시켰냐?”
“부비서가 뒤를 봐 줄 것이니 두려워 말고 하라 했습니다.”
“그래서 했냐?”
“네. 당에서 뒤를 봐 준다는데 안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해?”
번쩍 또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다시 벌떡 일어나 꼿꼿하게 섰다.
“이 새끼, 똑똑한 줄 알았더니 아예 먹통이네! 이 자식아 그러니까 그 부비서라는 양반이 너희들 잡아온 고길 만날 처먹었다, 뭐 그런 소리야?”
“네, 그래서 더 성수가 났습니다. 당부비서가 맛있게 드시니 바치는 마음이 즐거울 수밖에 더 있습니까? 당 일꾼이 죽으라면 죽어야지 않습니까?”
한 절반 얼이 빠진 내 목소리었다.
“말은, 야 그러는 놈이 당 일꾼을 불어?”
“네에?”
한참 뭐라고 조서에 써 넣던 보안원은 “됐어 나가!”하며 저 먼저 방에서 나가버렸다. 나는 영문을 몰라 호송원을 올려다봤다. 호송원 역시 경멸의 눈길을 보내며 내게 다가 왔다.
“너 몇 살이야?”
“스물 한 살인데요.”
“나이가 아깝다. 임마, 그래도 마지막까지 버텼어야지! 이 마지막 조서가 꾸며지면 보안서에서 너희 탄광에 통보할 거고, 그러면 당위원회 의견을 물어보고 참작할건데 어쩌냐? 뒤를 봐 줄 ‘엄마’를 욕보였으니 네놈 꼴이 뭐가 될까?”
탕, 무엇인가 내 정수리를 쳤다. 구류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내내 내 머리를 휘저은 것은 가슴 치는 후회였다. 호송원 말마따나 당은 어머니다. 죄가 있다면 알아서 해야지 그 죄를 어머니에게 넘겨 씌어? 그러고도 네가 스무 해 동안 주체교육을 받은 새 세대가 맞느냐?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한 것뿐이지만 나는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뱉은 말을 다시 주어 담을 수는 없다.
보름 후에 나는 3년 징역형을 받고 쓸쓸히 교화소행 열차를 탔다.
호송원 말처럼 아무도 나를 살펴주는 사람이 없었다.
2년 후 대사령(사면)을 받고 풀려나 다시 탄광으로 돌아 왔을 때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부비서던 임철수는 조동돼 다른 곳으로 갔다지만 알고 보니 군당 간부과 지도원이 됐다는 것이다.
내가 감옥에 간 이후의 일을 친구가 얘기해 주었다.
“그때 네가 말이야. 끝까지 비서 일만 말 안했더라면 감옥은 안 갔을 거다. 대충 한 달간 노동 단련대나 갔다 오면 되는데, 앞으로는 좀 눈치 있게 살아라.”
지난 일이라 좀 웃기긴 한다만 아무튼 사람은 ‘엄마’ 만은 팔지 말아야 한다. 맨날 회의 때마다 당은 어머니고 목숨 바쳐 옹호보위하겠다고 말하면서 매 좀 맞는다고 그 신성한 이름을 팔았으니 당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진정한 엄마라면 자식이 그랬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줘야 그게 진짜 엄마가 아닌가하고!
2015년 1월 최명식
2015-02-02 21:10:57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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