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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견습공에서 과장까지 - 김태수

작성년도 : 2002년 513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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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공에서 과장까지

- 김태수

 

 

1999년 중국으로 탈북하여 그곳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가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다른 탈북동포들보다 좀 나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에 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된 일이었다.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남한에 입국하여 2년간 생활한 지금은 그전과는 사뭇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며 지나간 세월의 인생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남한사회 적응하기

 

사회적응교육 과정을 마치고 정부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 내 보금자리를 꾸리던 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남한사람들도 몇 년을 일해 돈을 모아야 이만한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송구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서 그만큼 이바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여러 가지 일들에 직면하다보니 자신감도 많이 사라지고 막막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취업부터 시작해서 관공서에서의 일처리, 대인관계 등 뭐 하나 내 스스로 딱 부러지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중국에서는 남한도 사람사는 데고 같은 말 쓰는 곳인데 못할 것이 뭐 있겠나?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듯 싶었다.

 

직장이 없다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주로 친척들이나 주위에 사는 탈북동포 뿐이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이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도 되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텐데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시간이 더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취업을 하면 나아질 것 같았다. 회사생활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접하면서 사회를 알아가는 것이 빠른 길이라 생각했다.

 

취업관문을 뚫어라.

 

막상 직장을 구하자고 나서보니 날 오라고 기다리는 곳은 없었다. 북한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그만한 지식으로 남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전자부품을 만드는 회사와 연락이 닿아 면접을 보러 갔다. 근사한 일자리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면접에 임했지만 내게 돌아온 일은 전자부품이 생산되면 하자가 없는지를 검사하는 품질검사원 견습공이었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장대하리라라는 성경말씀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직장생활 적응하기

 

회사에 출근하던 첫날 아침, 출근길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지하철과 버스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직장인으로 그들과 같이 아침을 여는 주인공이 된 것 같아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을 시작하며 내가 다짐한 스스로의 원칙이 하나 있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사실 전자공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배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용어였다. 거의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어 동료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운영하는 야간학교가 있었다. 업무수행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외부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전자공학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고 업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생활도 점점 익숙해져 내 능력을 펼쳐볼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었고 승진할 기회도 주어졌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사회에 정착해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과장으로 승진하던 날

 

2년간 열심히 회사생활에 진력한 덕분에 과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정말 기뻤다. 과장이 됐다는 기쁨보다 견습공에서 시작하여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조그만 중소기업의 과장자리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나의 노력과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지금은 회사의 중요 프로젝트를 맡아 추진하고 있다. 책임감도 생기고 꼭 잘해내리라는 다짐도 많이 한다. 하지만 내가 이 사회에서 살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 그 보상이 있다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얻어진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을 위해 정진한다면 결국에는 원하던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요새는 가족들과 주말에 드라이브도 즐기고 외식도 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탈북할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생활이다.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만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내 일에 충실하고 이 사회에 일조해야 함을 알고 있다. 나의 남한사회 정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듯 나 또한 그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새로운 업무지식도 쌓고 대인관계도 넓혀 가며 이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동화할 때까지 열심히 살 것이다. 견습공 시절의 어려움을 잊지 않고 생활한다면 회사에서도 더 인정받을 것이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장대할 것을 꿈꾸며 나의 남한사회 적응은 오늘도 계속된다.

 

2002.12 김태수 씀

 

 

2004-11-19 04:03:57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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