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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경계하라! 점잖고 간부 티 나는 사람 - 김정현

작성년도 : 2004년 537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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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라! 점잖고 간부 티 나는 사람

- 김정현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안남도 남포시 천리마구역에서 온 김정현(가명)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싶지 않지만 요즘 많은 탈북자들이 속속 오고 있고 또 앞으로도 많이 올 것을 생각하여 비록 부끄럽고 창피스러운 일이지만 참고 될까하여 적습니다.

 

제목에서도 밝혔지만 점잖게 생긴 사람, 간부 티 나는 사람을 경계하십시오. 한마디 더 붙인다면 별로 살갑게 대해 줄 이유가 없는데도 자기 살점이라도 떼어줄 것 같이 하는 사람, 자신은 잘 살기 때문에 몇 십 만원 때로는 몇 백 만원은 돈으로 알지 않는다는 희떠운 소리를 하는 사람, 너희들은 북에서 왔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니 돈은 자기한테 맡기고 자신이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철저히 경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배가 나오고, 깜장 조끼를 입고, 개화장을 짚고 다니는 사람이면 모두 지주인 것으로 알게 하는 북한식 교육을 따르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그런 사람한테 철저히 기만당하고, 부푼 희망과 포부를 안고 왔던 땅에서 자살까지 할 뻔했던 저로서는 실로 피눈물의 교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남포시 천리마구역에서 왔고 그곳에서 큰 공장기업소 자재지도원을 하였습니다. 저는 처와 자식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정착금도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게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영구 임대주택 보증금을 내고 또 그 돈으로 텔레비전이며 냉장고 등 가정 집기들을 사고 보니 남은 돈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믿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사업수완을 과신하였던 것이지요.

북에 있을 때 저는 상당한 사업수완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 누가 가도 해결해 오지 못하는 자재를 저만 가면 척척 해결해 왔으니까요. 공장 간부들은 물론 같은 동료들 속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하는 일이 공장을 위한 일이 아니고 자신과 가정을 위한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대한민국은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꿈을 펼쳐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니 남은 돈은 적어도 마음은 든든하였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정착교육기간이 끝나고 사회에 나온 며칠 뒤부터 일이 비틀리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을 탈출할 때 기차에서 뛰어내려 다친 상처가 도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가 병으로 입원하자 아내가 고생하였습니다. 두부공장에도 나가고 식당에도 나가고 소 갈곳 말 갈곳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제가 입원해 있었으니까 북한에서 살던 대로 살며 한달에 10만원을 가지고 생활했습니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고 비록 몇 푼 안 되는 돈이었지만 차곡차곡 모으니 적지 않은 돈이 모였습니다.

 

아내가 그렇게 일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병원에 누워있자니 실로 안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래 그때마다 나가면 큰 돈을 벌어 아내를 기쁘게 해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드디어 병원에서 퇴원하고 일을 시작할 기회가 왔습니다. 여러 가지 사업을 생각해 봤습니다. 정말 생각하는 것마다 금방 뭉칫돈이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아내가 손끝에서 피가 터지게 번 돈이라 떨리기도 했습니다. "앉은뱅이 강 건너 듯 벼르고"만 있는데 어느 날 저한테 귀인이 나타났습니다.

 

비록 호프집에서 안 사람이지만 삼촌이 강원도 어디에서 큰 재벌을 한다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생긴 것도 점잖게 생겼고 완전히 간부 티가 나는데 사업수완도 이만저만이 아니게 보였습니다. 그는 돈도 꽤나 많아 보였습니다. 한 두 번 교제하여 알게되면서 식당 음식값은 거의 그가 냈으며, 그의 안내로 여러 큰 요정에도 다녀보았습니다. 그는 북에서 왔다고 저를 몹시 동정하였으며 의형제까지 맺자고 하였습니다. 사실 털어 보아야 먼지밖에 날 것이 없는 저한테 그렇게 잘 대해주니 처음부터 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끝내 어느 날 저는 그에게 고충을 이야기했습니다. 뭔가 사업을 하여 아내의 수고에 보답하고 싶은데 어디다 손을 댔으면 좋겠는지 모르겠다고. 그러자 그는 역시 너그럽게 웃으며 "돈이란 그렇게 쉽게 벌려 하면 안 된다. 준비를 잘하고 구체적으로 타산해 본 다음에 해야 한다. 절대 쉽게 덤벼서는 안 된다." 그는 일약 횡재하려는 나를 만류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를 믿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에게 달라붙어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는 바쁜 사람이라는 것 차라리 달마다 얼마씩 도와주겠으니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 등으로 저를 진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끝까지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그는 마침내 자기가 하고 있는 사업에 동업자 형식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은 서해안 어느 어촌에서 각종 젓갈원료를 가져다가 가공을 하고 포장을 하여 시장에 납품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는 일 같았습니다. 이윤은 동업형식이니 투자한 것만큼 나누기로 했습니다. 단번에 있는 돈을 전부 투자하고 싶었으나 그가 오히려 만류하며 "그렇게 덤비는 것이 아니라 해보면서 괜찮으면 차츰 더하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못 이겨 그렇게 했는데 실제로 돈이 괜찮게 들어왔습니다. 사업에 재미를 본 저는 주택 전세금까지 찾아 투자했습니다. 잘만 되면 한 두 달 뒤엔 돈더미에 올라않을 것이 확실했으니까요. 그는 저 보고 "아무튼 통이 커서 일할 재미가 있다"고 치하까지 하며 돈을 가지고 젓갈을 접수하러 어촌에 갔습니다. 그는 사흘 후에는 돌아오겠다고 하였지요.

 

저와 아내는 실로 부픈 가슴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흘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저는 그가 살던 집에도 가보고 그의 삼촌이라는 사람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삼촌이란 사람은 그런 사람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저처럼 사기 당하고 그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안 다음에는 실로 죽을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한테 부탁하여 수면제를 사다놓고 아내와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저의 행동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아내는 잠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사다놓은 수면제를 보았고 아내는 억이 막혀 바라보다 와락 저를 붙잡고는 울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우리 북한에서 여기로 올 때 무엇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에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요. 그렇게 사람 못 살 세상인 북한에서도 살았는데 여기서 못살 이유가 뭐예요. 두부공장이면 어떻고 식당이면 어때요. 억척같이 일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저는 아내의 절규에 머리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단번에 큰 돈 벌 생각을 경계하십시오. 그리고 멋지고 잘생긴 사람 간부 티 나는 사람을 경계하십시오. 한 푼 두 푼 뼈를 깎아 버는 돈, 그 돈이 바로 자기 돈입니다. 뒤늦은 것이지만 제가 찾은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12월호 수기

 

 

2004-11-19 04:05:35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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