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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마음의 편지 - 황수정

작성년도 : 2006년 64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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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편지

- 황수정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비록 받아보지는 못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리움에 못잊어 또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해야만 내 마음을 달랠 수가 있으니까요. 지금 이 시각 이 순간에도 우리엄마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타향에서 앉으나 서나 엄마를 그리면서 이 시간까지 살아왔습니다. 아빠와 동생들은 목소리라도 들으니 좀 괜찮지만 엄마는 헤어진지도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딸을 보고 싶지도 않으신지요?

 

어떡하면 6년이라는 세월 단 한번이라도 찾아볼 생각도 안하시고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는지요? 이제는 마음속에서 이 딸을 지워 버렸나요? 설마 아니긴 하겠지만 한 번씩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엄마를 너무 너무 원망하게 됩니다. 책임지지도 못할 자식 왜 세상에 낳았는지.

 

집 떠나 6년이라는 세월 이제는 이 작은 가슴에 상처도 아닌 피멍이 맺혀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고향이 그립고 부모형제 그리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것을 뼈속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에 계시다가 북한으로 북송되어서 지금은 원산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참 연락하기가 힘들고도 힘듭니다. 오늘도 회사에서 근무 중 갑자기 어머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저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옛날의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식에게 정도 많으시고 학교에서나 어디서나 뒤 떨어질세라 그 바쁜 속에서도 학교에 찾아오셔서 선생님과 상담도 많이 하셨죠.

 

저는 그때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다른 애들 엄마들은 터프하게 하고 다니셨지만 어머니는 젊으시고 패션스타일도 너무 멋있게 하고 다니셔서 애들이 엄마를 보면 너의 언니라고 부르고 했지요. 정말 그 말 듣기가 너무 싫어서 어머니가 미웠어요.

 

다른 애 엄마보다 아름다우신 우리엄마를 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는지...정말 저는 불효자식도 이런 불효자식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 몸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껴안아 주시고

추울세라 더울세라 따뜻이 보살펴 주시던 어머니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 주시던 어머니

그리움에 목메입니다.

 

뒤늦게 후회하여도 소용없는 것, 지금에 와서 어머니와 저의 청춘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으니 제 가슴이 더욱 미워집니다. 너무나 가슴이 메여와 뭐라고 글을 쓸 수가 없네요.

 

가슴이 아프고 미여지도록 그리움에 사무칠 때면 한잔 술에 나의 맘을 위로하며 살아 왔고 항상 나의 곁에서 끝없이 이야기 해주고 돌봐주고 인도해주던 여러 사람들에게서 부모님들과 형제들의 애정을 느껴보았습니다.

 

한번은 회사에서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간적 있었어요. 북한에 있었다면 상상도 못하는 여행이였어요. 보트를 타고 산호섬이라는 곳에 들어가는데 끝이 안 보이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 낙하산을 타는 사람들, 가족들끼리 바나나 보트 타는 사람들, 등등 많았어요. TV와 그림으로만 보았던 것들인데 이것이 꿈인가하고 황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 보는 순간 아~하고 감탄을 하면서 저는 문뜩 머리 숙였는데 제 눈앞에 저는 좋다고 흥얼 거리면서 콧노래 부르고 그 바다 밑에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우리가족들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손을 더듬거리면서 다시 주변을 살펴보니 환상의 느낌이였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슬픔과 그리움을 마음속에 묻고 살아야 하나요. 지금까지 흘린 눈물 합치면 두만강을 이룰 것 같습니다. 고향땅이 그립습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 마음속 항상 자리 잡고 있는 내 고향, 나의 태가 묻힌 그 땅, 가랑바지 적시며 뛰어 놀며 내가에서 소꿉놀이 하던 그 땅, 네가 무엇이기 때문에 그리도 못잊어 하는지... 가슴쓰리고 아립니다. 지금은 조국의 반역죄, 아니 우리집안의 불효자식인 나, 내 마음은 오늘도 슬프고 괴롭습니다.

 

이제는 제 나이 26살 성인이 되었습니다. 할머니 품에 안겨서 응석 부리던 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제법 회사생활도 하고 누가 뭐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앞으로 저의 인생을 어떻게 개척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걸음마 떼면서도 "아버지 원수님 고맙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말을 배우고 항상 세상에서 부러움 없는 아이라고 외치면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남조선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라고 외치고 총칼을 겨누고 있던 남조선, 바로 그 땅에 살려달라고 찾아 왔습니다.

 

저는 지금에서야 우리가정이 겪는 비극, 아니 한반도 모든 인민들이 겪는 이 가슴 아픈 비극이 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고 김정일의 만세만 부르던 제가 민망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니! 저는 암흑의 땅에서 인간의 권리도 모르고 길가의 조약돌 마냥 버림 받던 저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벽돌 한 장 들어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오직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는 대한민국의 고마움에 목이 메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문화체제가 다르게 살아온 이 땅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저는 항상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힘과 용기를 얻어 하루빨리 통일의 그날만 기다리면서 열심히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우리가족이 상봉하는 그날에 넓은 가슴에 이 딸을 포옹해 주시려면 건강히 계셔야 합니다. 비록 하고 싶은 말 밤을 새워가면서 장편소설을 쓸 것 같지만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어머니 사랑합니다.

 

2006218일 불효자식으로부터 황수정

 

 

2006-02-21 17:42:31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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