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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내가 찾은 자유의 의미

작성년도 : 2016년 51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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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가득한 소래포구의 밤은 더없이 아름답다. 늘 지나던 길이고 밤이지만, 지금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포구 야시장을 가득 메운 형형색색의 등불들과 근처에 솟아있는 아파트단지의 하얀 불빛들까지 내겐 보이는 모든 것이 그저 곱기만 한 살아있는 풍경이다. 반쯤 내려진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엔 풍경들의 냄새는 물론이고 삶의 얘기들까지 섞여있는 듯 느껴진다. 그렇게 난 지금 생전 처음, 나만의 자동차 드라이브를 하는 중이다. 이게 자유라는 건가... 이게 살아있는 기쁨이며 행복이라는 건가...

 

46개월...숨막힐 듯한 공포에 진저리를 치며 압록강을 넘고, 초조와 불안 속에 제3국을 거쳐 오기까지 더하면 5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모든 것이 다르다. 환경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은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예전의 나는 그대로이겠지만, 지금의 내 인생은 확실히 달라졌다. 내게 맞는, 내가 원하던 삶으로...

 

차를 사고 첫 번째 드라이브라면 보통은 경치 좋은 교외로 떠나는 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난 매일 출퇴근 하며 보던 소래포구 쪽을 택했다. 거기에 시간도 밤이다. 소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난 조심스럽다. “새터민들 대부분은 불면증이 있다. 그건 북한을 떠나고자 결심을 하면서부터 어쩌면 필연적으로 시작된다. 예상되고 익히 들어왔던 수많은 위험과 돌발변수들이 끝없는 상념과 걱정들을 만들어 낸다. 또 막상 여정을 떠난 뒤로는 불안과 두려움이 역시 잠을 막는다. 도착해서는 어떨까. 무사히 원했던 땅을 밟았으니 쉽게 잠들 수 있을까. 그럴 줄 기대했지만, 깊게 잠드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서도 아니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또 다른 걱정 때문도 아니다.

 

뜻 모를 불안. 한순간의 꿈처럼 깨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지 않을까. 행여 긴장을 풀면 한 마리 새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문득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이 몹시 낯설어지는 새로운 불안과 그에 따른 불면증은 꽤 오래 지속된다.

 

탈북, 지금은 흔하고 쉽게 얘기들을 한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아서, 또 그들만의 절실한 이유로 자신이 태어난 땅을 버리고 새로운 조국을 찾는다. 그런데 그게 과연 쉬운 결정일까. 그 여정은 만만한 길이던가. 아니다, 우리 자신들에게 그 일은 어떤 영화나 소설보다 더한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치유되지 않을 이별과 상실의 흉터를 가슴에 남기고 승리한 자신만의 진짜 인생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 찾은 자유고, 새 인생이니 내겐 아직도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많이 늦은 나이에 온 나로서는 맘이 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럴수록 난 단 하나의 일상이나 풍경도 놓치지 않고 내 자유 속에 온전히 담으려고 하는 것이다.

 

조금은 한적한 포구에 차를 세우고, 전망 좋은 카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꽤 비싼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여전히 고운 밤풍경을 바라본다.

 

내가 살던 곳엔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커다란 항구가 있다. 남포항. 하지만 그 항구는 밤이 되면 사라진다. 드문드문 최소한의 보안등만 켜져 있을 뿐이고, 간간이 들고 나는 선박들의 불빛만이 그 무거운 어둠속을 표류한다. 예전고난의 행군시절엔 불 꺼진 항구와 더불어 주거지역과 일반 상점들도 저무는 해와 함께 사라졌다. 항구뿐이 아니라 도시 전체 아니, 나라 전체가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이다. 위성사진으로 찍은 야간의 한반도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밤에 한반도는 반도가 아니라 남한만이 존재하는 섬처럼 보였다. 물론 그 어둠 속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군수공장들. 거긴 어떤 상황에서도 24시간 돌아간다. 결국 그 어처구니없는 목적들이 저 깊은 어둠의 원인인 것이다.

 

나는 그런 어둠 속에서 태어나 40년 가까운 세월을 살았었다. 처음부터 그런 줄 알았고,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북한의 옛 지도자들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충성해온 우리는 또 어떤가. 그 눈물겨운 충성을 체제나 지도자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쏟았다면 어땠을까. 딱 절반만이라도... 이 시간에도 내가 살던 곳엔 불빛이 귀할 것이다. 불빛이 귀하니 숨소리도 작고, 스스로 어떤 원죄를 짊어진 양 위축되기만 할 것이다. 주변의 빛이 잦아들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희망이라는 빛은 흐려진다. 그저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 있을 뿐이다. 그게 과연 인간의 삶이던가. 조국이나 체제도 결국 인간이 만든 건데, 우린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만 있었다. 인간 자신의 본능과 본성을 애써 억누르면서...

 

드라이브,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나만의 시간. 이게 진정 자유일까. 내가 원했던 인생인가. 난 아직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46개월. 제때 밥 먹을 틈도 없이 쉼 없이 적응해 온 시간이었다. 이제 좋은 직장을 얻었고, 주거도 안정됐다. 작지만 튼튼한 차도 마련했다. 곧 좋은 사람도 만나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친구들도 얻을 것이다. 이미 반환점을 돌아선 새 인생의 준비, 1막이 끝나고 본격적인 2막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내 자유의 가치와 내가 원했던 인생의 참모습은 2막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2막을 가기 위해 지금 돌아봐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야시장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있다. 먼 아파트단지 창마다 가득하던 불빛들도 많이 잦아들었다. 이제 하루를 온전히 마감할 시간. 그들 속에 있는 나 역시 나만의 하루를 정리할 시간이다.

 

하나원을 나와 자립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남산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새벽부터 두 가지의 일을 하고 몹시 피곤한 날이었지만, 문득 서울을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에서 올라갔던 길이었다.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곳, 내가 소속된 곳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명, 현대사회, 미래, 이곳에 비해 내가 살던 세상은 얼마나 초라하고 작은 곳이었던가. 그리고 이 거대한 문명과 빛들을 그들은 어떻게 우리에게서 감추고, 거짓으로 치장을 할 수 있었을까. 볼수록 믿기지 않고 헛웃음만 나왔다. 자정이 훨씬 넘는 시간까지 난 피곤도 잊은 채 남산에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문명을 만들어 낸 이들이 하루의 수고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 저 많은 웅장한 건물들을 세우고 저 눈부신 불빛들을 만들어낸 이들의 휴식. 부럽다기 보다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들은 문명을 만들고 있었고, 우린 문명을 파괴할 무기를 만들고 있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핏줄의 민족인데, 어떻게 저리 다를 수가 있을까. 과연 그건 체제와 지도자들만의 차이였을까.

 

인간 자신. “이나 체제 대신 자신에게 좀 더 충성하고 집중했다면, 우린 우리가 가진 본능을 깨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 자신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누군가에 의지하고 그들의 말만을 따랐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닐까.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원망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나 역시 내 본능에 귀를 기울였고, 그렇게 나를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 발전된 한국의 모습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 당당히 섞일 수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꼈다. 그날 남산자락을 걸어 내려오면서 내가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이며 내 스스로의 선택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주차장에서 피워 문 담배 하나가 다 탈 때까지도 내 눈은 여전히 소래포구의 밤풍경에 머물러 있었다. 이 담배도 조만간에 끊기는 해야 한다. 피우는 것도 점차 불편해지고, 나 역시 건강을 생각해야 되는 나이가 되었으니. 40년 가까운 북에서의 시간과 지난 46개월의 시간. 구지 저울추에 달아보지 않아도 내 진짜 시간은 후자의 시간이고 그만의 가치와 무게를 가진다. 그렇기에 내 남은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샀다. 호사는 아니지만 날 위해 한 잔 정도는 해줘야 하는 날이다. 첫 드라이브 기념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얘길 나누고 싶은 사람을 위해...

 

나의 아버지... 아버진 아직도 북에 계시다. 모셔올 방법은 분명 있었고 준비까지 했었다. 그러나 당신이 원하질 않으셨다. 한국의 진짜 모습, 북한 체제가 해왔던 거짓말들, 아들을 통해 그 얘기를 들으셨으니 사실에 대해선 믿으실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겐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하셨다. 조국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 아버진 끝내 그걸 넘어서지 않으셨던 것이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소주 한잔을 따랐다. 앞에 계시지 않은 아버지지만 얘길 하고 싶었다. 근데 생각만으로도 벌써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이럴 땐 역시 소주 한잔이 제격이다.

 

집안은 평범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평양 옆에 있는 남포특별시였다. 그렇기에 굶주리거나 특별한 어려움은 없는 곳이다. 부유하지도 않고 특별한 직책을 얻지는 못했어도 거의 중산층 정도로 살 수는 있었다. 그런 가족을 이끌어 온 아버지 역시 평범했지만, 나하고는 뭔가가 늘 불편했다. 자라오면서 내가 유일하게 이해 못했던 한 가지. 아버지는 내 욕심을 엄하게 경계하셨다. 그게 돈 욕심이라든가 삐뚤어진 출세욕구라면 그럴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경계하신 내 욕심이란 건 그게 아니었다. 난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호기심도 많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욕도 컸다. 아버진 바로 그걸 막으려 하셨던 것이다. 이상하긴 해도, 공부 적당히 하라는데 거기에 반발할 아이들이 있을까. 나 역시 별다르진 않았다. 적당히 공부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결코 두드러질 일 없이 자랐다. 마치 아버지의 소망에 꼭 맞춘 것처럼. 사로청위원이라는 평범한 직책을 맡아 일을 하게 됐고, 그 평범한 일과 꼭 닮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가 후엔 사로청위원장까지 맡았다. 사로청원은 한마디로 북한의 청년층을 관리하는 곳이다. 19세에서 35세까지의 청년들을 관리하며 준비시켜, “에서 요구하는 사상정책을 교육하는 곳이다. 위원이든 위원장이든 결코 흥미로울 게 없는 일이고, 더는 나아갈 길도 없는 사실상 처음부터 끝이 정해진 일이다. 세상엔 많은 분야들이 있다. 기술도 다양하고, 학문들도 범위가 넓다. 한번 태어나서 사는 인생, 많은 걸 경험하고 싶은 건 누구나의 본능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도전하는 이들에게 오는 것이다. 아무리 체제가 달라도 그건 이치가 같은 것이다. 나 역시 답답하고 지루한 현실을 바꾸려고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남포사범대학에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명문이기에 거길 나오면 많은 기회가 열린다. 생활도 더 나아지겠지만,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발전이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공부하고 준비했다. 성적도 잘 나왔기에 입학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그걸 항의할 방법도 없지 않은가. 충격과 혼란에 빠져 방황하던 나에게 답을 준 건 아버지였다.

 

토대흔히 말해서 집안 배경과 집안의 출신 성분을 뜻한다. 나와 아버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할아버지도 아니었다. 바로 증조할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만 해도 억울할 판에 증조할아버지라니. 말문이 딱 막힐 일이었다. 연도조차 명확하지 않은 50년 대 중반, 증조부께선 정치범교화소에 수감되셨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형기를 다 채우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얘기. 그때서야 알게 된 집안의 어두운 비밀이었다. 그것이 나는 물론이고 우리 집안 전체의 미래와 한계를 미리 결정해 놓고 있었다. 당과 체제는 집요했고, 그 흔적은 운명적 낙인처럼 대를 물려가며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알고 계신 사실. 당신도 그런 얘기를 할아버지께 전해 듣고 그 한계에 맞춰 살아 오셨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우회적으로 그 한계를 강요하신 것이다. 그걸 벗어나보려 하다가 받게 되는 상처를 경계하셨던 것이리라. 자식인 내게 그 좌절을 겪게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화는 나지만 한편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 역시 나와 같은 좌절과 차별을 홀로 겪어보셨을 테니까.

 

우습지 않은가. 인민이 노력을 해서 조국을 위해 더 큰 봉사를 하겠다는데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걸 막아놓은 체제. 봉건시대의 신분제도와도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극단적인 비교를 하자면 우린 그 어느 때부터 태생적으로 상민계급이 된 것이다. 절대 양반이 되거나 벼슬을 할 수 없는 사회의 평범한 일반 구성원. 어쩌면 그 일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인간적인 본능과 열망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탐구할 자유, 노력해서 당과 조국에 더 큰 봉사를 할 자유 대신, 나 자신의 인간적인 삶을 추구할 자유로 변환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난 아버지와 멀어졌다. 한편으론 이해를 하고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내 원망은 종종 아버지를 향하곤 했었다. 그리고 본능으로 깨어난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배를 한척 가지고 있던 OO'형은 포부가 큰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일찌감치 선장의 꿈을 키웠고, 그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달랑 선원 두어 명을 거느린 연안 작은 배의 선장이 되었다. 일감이 부족하니, 모두가 아는 불법적인 거래와 운반을 주업으로 삼는 음지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꿈은 접은 지 오래 됐다고 얘길 했다. 누가 그의 노력과 꿈을 막고, 썩 자랑스럽지 못한 일로 인생을 낭비하게 했을까. 그의 집안, 역시 토대가 문제였던 것이다. 초급단체위원장을 하고 있던 OO’누님은 딸만 여섯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경영대학을 꿈꿨었다. 하지만, ‘토대의 문제는 그녀의 능력을 절반 이하로 갉아먹었다. 가까이 봐왔던 그녀는 수완과 판단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당의 핵심 간부를 해도 손색이 없을만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현실의 그녀에겐 그녀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단단한 벽이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물론 한국에서도 배경이 중요하고 돈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긴 그래도 기회는 주어지고, 그 이상의 노력이 더해지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지속적인 도전은 가능하다. 이 복잡하고 사람 많은 세상에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목표가 없는 삶, 꿈을 꾸지 못하게 하는 삶, 북한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자신의 한계가 정해져있다. 그런 곳에서 자유라는 이름은 무엇을 말하는가. 유일한 자유는 숨 쉴 자유밖에 없는 것이다. 자살은 조국에 대한 최대의 배신행위이므로.

 

난 결국 아버지에게 북한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진 침묵으로 답을 하셨다. 그런 아들을 잡을 수도 없고 보낼 수도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버진 끝내 자신이 살아오셨던 방식을 고수하셨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익숙함이 당신을 너무도 단단히 묶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원했던 그 자유라는 의미에 대해서 이미 영영 잃어버리셨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떤 체제이길래 한 인간의 자유 개념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을까.아들은 목숨을 건 위험한 여정을 무사히 헤치고 진정 원하던 삶을 찾았다. 아버진 어떠실까. 감시 대상이실 테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해도 마음속으론 아들의 도전과 승리에 흡족해 하실 것이다. 꼭 그러셔야만 한다. 그게 그나마 아버지의 쓸쓸한 인생에 한 가지 보람이 되어야 하므로. 아버지...

 

술은 다 비워졌다. 나도 이젠 오늘을 마감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많이 늦게 찾은 진짜 인생. 늘 그렇겠지만 내일은 나의 남은 인생 그 첫날이다. 말장난이 아니라 그건 의미가 다르다. 그렇게 난 남은 시간들 속에서 하루하루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고 내 자신에게 집중할 것이다. 이런 난 욕심이 많은 걸까?

 

한국에서는 전에 볼 수 없던 많은 것이 보인다. 그리고 더 넓고 자세하게 보인다. 북에서는 결코 느끼거나 볼 수 없던 것들. 세상을 보는 눈과 인생을 보는 눈. 낡고 왜곡된 체제에 갇혀있는 몇 천만 중의 하나가 아닌, 60억 지구인 중 하나인 나 자신의 인생으로 삶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점차 한계에 달하고 있다. 북한 주민 모두를 한꺼번에 질식시켜 버릴 것 같은 거짓과 왜곡의 포장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 급속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오늘 아침에 본 뉴스는 놀라웠다. 외국에서 외화벌이 식당을 운영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다. 그건 나로서도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다. 외국에 나가 일을 할 정도면 그들은 북한체제의 중심에 있는 핵심 인물들이다. 비록 종업원 일을 하지만, 그들의 토대(배경)는 탄탄하고, 그 가족들은 체제의 중심에 있는 소위 엘리트 집안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이 단체로 체제를 버리고 한국을 택했다. 외국에선 방송이나 인터넷의 접촉이 훨씬 용이하다. 그만큼 북한과 남한에 대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철저한 교육을 받고 세뇌가 깊어도, 거짓으로 억압된 인간의 본성을 막는 건 한계가 있다. 나나 그들이 북한이라는 조국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북한체제가 처음부터 온갖 거짓으로 우리를 배신해왔던 것이니까. 어떤 안정과 달콤한 보장도 자유라는 가치를 넘어설 순 없다. 그들 역시 그걸 깨달았기에 나처럼 자유를 택한 것이다.

 

완연한 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다. 겨울이 추울수록 봄은 풍성하다. 난 혹독한 겨울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다. 악착같이 봄을 준비했고 이제 그 봄 속에 당당히 들어설 것이다. 치유할 수 없는 상처들은 분명 있다. 남아 계신 아버지, 그리고 아직 거기 남아 있는 내 인생 전반의 흔적들. 그건 내가 죽는 그 날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부분이다. 그렇게 될 내 삶의 어떤 보상. 늦게 꺼낸 용기와 선택으로 잃어버린 40여년의 시간. 나머지 시간은 그런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변과 나누고 주고받으며 함께 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한 집중은 계속 유지할 것이다. 어떻게 온 길이고, 어떤 소중한 것들을 버렸고, 또 누군가는 남겨야만 했던 길이다.

 

술을 마셨음에도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이유다. 아직 조심스럽기에 지금 현실의 많은 것들을 수시로 확인해봐야 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잠들기 전에 하는 생각들. 나도 어느덧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문제, 재테크, 내 발전을 위한 계획, 여가, 우습지만 조금 이른 노후계획까지. 나름 뿌듯한 내 모습과 내일에 대한 벅찬 기대들. 쉽게 잠들지는 못해도 피로는 적은 불면이다.

 

다음엔 내 자유를 싣고 좀 더 멀리 드라이브를 가봐야겠다.

 

20169...어느 가을의 길목에서...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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