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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수기

중국에서 다시 바라 본 고향 - 박부성

작성년도 : 2003년 680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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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다시 바라 본 고향

- 박부성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들뜬 마음으로 공항 가는 버스에 앉아 한여름의 아름다운 자태를 마음껏 뽐내고 있는 저 멀리 산과 들을 바라보노라니 너무나 감회가 새롭다. 북한에 있었다면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일반사람으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허황된 꿈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된 지금은 해외여행도 꿈꿀 수 있다. 방학을 맞아 그동안 틈틈이 모아 두었던 돈으로 해외여행길에 올랐다. 참으로 꿈만 같다.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발전하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티켓을 끊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하며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바로 2년 전 짧았지만 위험했던 탈북생활을 청산하고 기쁜 마음과 한편으로는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자유를 찾아 밟았던 그 대한항공 비행기에 오늘은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어깨에 힘 좀 주고 다시 밟아본다.

 

창 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나의 지난 정착생활 2년을 되돌아 보았다. 희망, , 고생, 좌절, 기쁨, 행복이라는 단어들이 서로 엉키어 눈가에 촉촉한 것을 묻히기도 하고 또 입가에 엷은 미소도 흐르게 했다. 그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건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게다.

 

중국 땅에 도착하여 내 발자취가 스며있는 탈북생활의 현장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그때의 그 위험했던 순간들을 회상해보았다. 당시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어려울 때 내게 하룻밤의 잠자리를 제공해 주셨던 나이 드신 조선족 내외분을 찾아 감사의 인사도 드렸다. 그분들은 여전히 인자하신 모습으로 내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잘 살라며 격려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택시를 타고 내가 숨어살던 곳, 온갖 설움이 베어있는, 북한땅이 멀리 보이는 그곳으로 갔다. 두만강이 가까워 올수록, 북한의 산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흥분되는 마음을 겉잡을 수 없었다. 산림이 꽉 우거진 아름다운 대한민국 산과는 달리 벌거벗고 구차하게 누워있는 산만 봐도 그곳이 북한 지역임을 금새 알 수 있었다. 맥을 같이 하는 한반도의 산과 들의 모습이 남과 북에서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 민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 했다.

 

두만강에 도착하여 바로 강 건너 바라보이는 곳은 내가 어릴 적에 잠시 살았던 소꿈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다니던 학교, 오고가던 오솔길,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손잡고 뛰어다니던 동네와 그 주변건물들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학교 뒷동산이 아주 벌거숭이가 되었다는 것과 총을 든 북한 군인들이 눈에 많이 띤다는 것이었다.

 

아래로 좀 걸어 내려가니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가 있는 동산이 멀찌감치 보였다. 저도 모르게 무릎이 꺽이면서 눈물이 정처 없이 흘러내렸다. 다시 살아와 주시기만 하다면 할머니께서 그렇게 소원하셨던 대학생이 된 이 손자의 장한 모습도 보여드리고 할머니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건만... 속으로 이러게 다짐 할 수 밖에 없었다. "열심히 살아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통일이 되는 그 날 떳떳하게 할머니를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이런 생각에 눈물을 흠치는 나의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조선족 안내자는 내가 탈북자였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그 무슨 대단한 애국자라도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쌍안경으로 북한쪽을 바라보고 있던 조선족 안내자가 오늘이 무슨 북한 명절날인지 사람들이 가득 나와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며 논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북한 명절날이 아닌데 싶어 그쪽으로 뒤따라 내려가 쌍안경을 들여다보니 일요일을 맞아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강뚝에 쌓인 모래더미를 처리하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중장비 몇 대면 뚝딱 해치울 일을 아직도 이런 식으로 처리하고 있다니 갑자기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갑자기 옛날로 돌아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그날 하루동안 본 장면들을 하나씩 되짚어보았다. 그다지 기분이 상쾌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렇게도 해보고 싶었던 해외여행이 아니던가? 내가 이곳 중국에 왜 왔는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마음의 짐을 다 풀어놓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북에는 내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난 지금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지만 북에는 고생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통일이 될때까지 이런 내 마음의 짐은 거두어 지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삶의 현장에서 힘차게 뛰어야한다. 내가 통일을 위해 거창한 먼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통일을 위해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034월 박부성

 

 

2006-02-27 13:19:33

출처 :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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